[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대표직 사퇴’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반대 진영에서는 안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위기 순간마다 ‘철수(撤收) 정치’를 한다고 대권 주자로서 ‘자질론’을 문제삼고 있다. 특히 당내에서는 구민주계를 중심으로 ‘안철수 대안론’, ‘손학규 메기효과’를 내세워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경쟁상대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 여권진영에서는 ‘안철수 불가론’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철수한 내막은 따로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 진짜 이유를 추적했다.

-새정치·호남·리더십 정무적 판단 동전 앞면
-구민주 vs 친안 vs 김한길계 간 ‘금전 문제’ 단초
‘총선 홍보비 파동’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권에 입문한 지 5년차 동안 벌써 4번째 후퇴다. 첫 번째는 2011년 9월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 선언 후 박원순 후보로 단일화 했을 때다. 두 번째는 2012년 11월23일 대통령 후보 불출마로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했다. 세 번째는 2014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재보선 참패로 대표직 사퇴를 선언했다. 대략 1년마다 정치적으로 선택의 순간마다 ‘사퇴’나 ‘양보’를 한 셈이다.
안 전 대표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듯이 대표직 사퇴이후 첫 공식 외부일정에서 자신의 사퇴 배경을 간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7월7일 인천에서 열린 인천경영포럼 조찬강연에서 “바둑에서 중요한 게 복기 아니겠나”며 “고수일수록 복기를 통해 내가 어떤 수를 뒀을 때 예상한 대로 됐는가 되지 않았는가. 그걸 통해 차츰차츰 실력이 발전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安 4번째 철수, “이번엔 다르다?”
4번의 물러섬을 통해 향후 자신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됐고 4.13 총선승리와 같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자신감도 묻어나는 발언이다. 또한 기존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치’, ‘오만한 정치’를 ‘책임지는 정치’로 신랄하게 비판도 하고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 존재하는 반대파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계기로 삼고 있다. 우선 이번 안 전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철수(撤收) 정치의 전형’이라며 정치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혹평했다. 특히 안 전 대표의 직접적 사퇴 원인이 된 ‘홍보비 파동’으로 인해 ‘새정치’와 배치된다는 부담감 역시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반대파에서는 정치적 지역 기반인 호남 민심의 악화도 사퇴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호남에서 민심이 악화됐다가 대표직 사퇴 후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안 전 대표가 자신의 대권 가도에 ‘홍보비 파동’이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대표직을 사퇴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여의도 내 호사가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대권 행보’나 ‘새정치’ 등 거대 담론 때문에 대표직을 사퇴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오히려 당내 계파별 갈등을 잠재우고 측근을 보호하기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단 20대 개원과 함께 터진 ‘홍보비 리베이트’ 파동은 국민의당에서 해명했듯이 ‘정치권의 관행’이고 업계의 관행인 측면이 강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회계처리와 이해관계자들의 ‘입막음’을 잘했기 때문이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한 전직 팀장은 “대선에서 우리부서에서 다룬 홍보비가 70억 원”이라며 “홍보업체들 간 입찰을 따기 위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학연·혈연·지연을 총동원할정도로 경쟁이 치열해 담당자들이 리베이트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신생정당의 경우 더하다는 설명이다. 국민의당의 경우 국고보조금이 나오기 직전인 3월은 그야말로 곳간이 텅텅 빈 상태였다. 한 당직자는 “월급은커녕 활동비가 안 나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국민의당이 힘들 때였다. 기존 정당보다 리베이트 유혹에 더 빠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이 오가는 만큼 믿을 수 있는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고 결국 왕 사무부총장의 친구나 김수민 의원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전적인 문제가 당표직 사퇴까지”
하지만 문제는 입찰에서 떨어진 업체와 이를 연결한 당직자 다 같은 식구가 아닌 이상 한쪽은 활동비가 나오는데 못 받은 쪽은 배고픔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구민주계로 분류되는 홍보 담당 당직자 Y씨다. Y씨는 박선숙-김수민-왕주현으로 이어지는 안철수 측근들만 독식하는 체제에 열을 받았고 외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급기야 이를 인지한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같은 부서 당직자까지 가세하면서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이는 결국 ‘구민주계의 안철수 죽이기’ 음모론으로 증폭됐다. 가뜩이나 민감한 돈을 담당하는 홍보 부서에 친안파, 김한길 사람, 구민주계 등 계파별 당직자 간 골이 깊었는데 홍보비 리베이트 건은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게 여의도 정설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관련 당직자와 일부 인사들만 인지하고 있었다.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비례대표 순번 14번인 임제훈 전 조직사무부총장의 귀에 들어가면서 더 복잡해졌다는 후문이다. 임 전 사무부총장은 김한길 사람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김 대표의 ‘몫’으로 당직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전만해도 국민의당 비례대표 7번 이하는 국회입성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높았기에 주류세력조차 김한길 사람이 후순위를 받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홍보비 리베이트 파동’이 비례대표 김수민, 박선숙 사무총장으로 불똥이 튀면서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할 경우 14번이 승계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임 전 사무부총장 측근들은 사건을 더 키웠고 급기야 중앙선관위 회계 감사에 걸려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박선숙 사무부총장과 비례대표 7번을 받은 이태규 전 정책네트워크 부소장 갈등설까기 가세하면서 국민의당은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건관련자들은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폭탄 돌리기’로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장 안철수 전 대표는 사건 초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받았다”, “검찰의 수사를 예의주시 하겠다”며 자신감과 함께 야당 탄압으로 치부했다. 이상돈 최고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정치자금법으로 영장 청구하고 기소하면 검찰은 망신당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김수민 의원이 “당의 지시로 허위 계약서 작성이 이뤄졌고, 브랜드 호텔(김수민 대표회사)과 B사, S사 사이 이상한 계약 관계를 왕 전 사무부총장이 주도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왕 전 사무부총장을 구속했고 사무총장인 박선숙 의원을 17시간 불러 조사했다. 결국 측근·참모들의 ‘책임 떠넘기기’가 박 사무총장으로 수사망이 확대되자 6월29일 안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둬 ‘홍보비 파동’을 잠재우려 했다.
정치권의 일반적인 해석처럼 ‘새정치’나 ‘호남민심’, ‘대권행보’에 대한 부담이나 ‘철수정치’의 일환이라는 정치적 해석과는 거리가 먼 단순히 신생정당이 겪게 되는 금전적인 문제를 아무도 책임을 지지않으면서 눈덩이처럼 커져 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됐다는 해석이다.
기존 정당이었다면 사건 초기에 ‘실무자 선에서 끝날 사안’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계파 간 갈등에 측근·참모까지 날아갈 지경에 이르자 고육지책으로 안 전 대표가 ‘백의종군’ 심경으로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는 게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뿐만 아니라 여의도 선거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상황이다.
2012년 진심 캠프 ‘돈’ 가장 터부시
이에 대해 안철수 전 진심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2012년 대선에서 진심 캠프에 일할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며 “당시 선거 3禁 정책으로 캠프에서는 ‘네거티브’, ‘돈’, ‘조직’을 구태선거의 전형으로 보고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인사는 “그동안 선거의 기본으로 알고 있던 세 가지를 캠프에서 금지하자 기존 정치판에서 활동하던 손학규계 및 민주당 출신과 안철수 측근들과 갈등의 골이 심했다”며 “특히 돈 문제는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결국 안철수식 새정치로 운영되던 국민의당이 ‘조직’과 ‘네거티브 전략’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용인을 하면서도 정작 선거에 제일 필요한 ‘돈’에 대해서 터부시하는 문화가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에 ‘대표직 사퇴’까지 불러오게 된 진짜 원인이라고 이 인사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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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