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색즉시공, 내 사랑 싸가지, 신부수업, 키다리 아저씨’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 카멜레온 같은 연기를 보여준 하지원. MBC TV ‘다모’의 채옥으로 출연하면서 ‘다모폐인’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하지원이 이번에는 영화 <형사 듀얼리스트>에서 조선의 여형사 ‘남순’으로 돌아왔다. 이제 겨우 스물 여섯 살인 하지원이 지난 2000년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벌써 10번째 작품이다. 호러퀸과 로맨스의 여주인공 등 연기의 한계를 과감히 떨쳐버리면서 성숙한 여인과 도발적이고 섹시한 모습, 한편으로는 소녀처럼 청순하고 발랄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는 하지원. 그가 가진 얼굴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화려한 비주얼의 극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명세 감독의 신작 <형사 듀얼리스트>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가짜 화폐가 유통되는 근원지를 찾기 위해 열혈 여형사 남순(하지원)과 남순의 파트너이자 베테랑 형사인 ‘안포교’(안성기)가 베일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자객 ‘슬픈눈’(강동원)을 쫓는 과정에서 화려한 대결과 슬픈 사랑을 그린다는 내용의 무협물이다.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영화의 영상미 부분에서는 “역시 이명세 감독”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명세 감독은 과거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아름다운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을 정도로 영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도 감독은 여형사와 자객의 사랑, 한 마디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적과의 애절한 사랑’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다.
물론 짜임새 있는 구성보다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 화려한 비주얼로 승부했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파격적이고 다양한 색채의 의상, 하지원과 강동원의 가슴시린 러브스토리가 관객을 사로잡아 버린다. 여기에 하지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가 내용의 볼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원은 그 어느때보다 다치고 까지는 부상이 잦았을 정도로 힘든 촬영을 했다고 한다. “집에 와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 여성의 신체 구조상 안되는 무리한 액션장면이 많았거든요. 근육통에도 시달렸고 목에 부상을 입기도 했죠.” 그는 난이도 높은 액션을 위해 ‘선무도’와 ‘탱고’ 등을 익히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액션연습을 하는 투지를 보였다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여성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중성적이고 파워풀한 하지원식 액션을 완성했다.
다모의 ‘채옥’과 완전히 달라
언뜻 팬들은 이번 역이 조선시대 여형사라는 사실만으로 과거 다모 ‘채옥’의 캐릭터와 똑같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하지원이 맡은 조선의 여형사 ‘남순’역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의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모의 ‘채옥’은 끌어안아주고 싶던 여성스러운 캐릭터였던 반면, 형사의 남순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막무가내 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지원 역시 “형사가 ‘다모’의 원작을 빌려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슷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정작 연기할 때는 다모의 캐릭터는 잊었을 정도로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소란스럽고 털털한 남순의 캐릭터는 채옥을 기억하던 ‘다모폐인(다모의 골수 팬들)’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만난 하지원. 하지만 하지원이 사랑하게 된 슬픈눈은 바로 자신이 쫓아다니던 범인이었기에 애써 그 마음을 감추고 만다. 강동원 역시 하지원과 서로 마주칠 때마다 사랑의 감정이 조금씩 싹트고 있음을 느끼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슬픔에 빠진다. 이 둘의 사랑은 베드신이나 감동적인 화해의 장면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목에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게 되는 ‘칼시위 대결’에서 절정에 이른다. “몸과 몸, 마음과 마음, 감정과 감정의 대결을 그린 피 없는 무덤”이라는 이명세 감독의 말처럼 감독 특유의 영상미학이 잘 드러난 이들의 ‘한판 대결’은 한 편의 슬픈 시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엮어놨다.
김민주 kimm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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