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기’ 신뢰 잃어가는 중고차 시장
렌트, 전파사고이력 차량 거액에 팔아
법적 서류 전부 고지했으니 문제 없다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중고차 매매 사기에 애꿎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저렴한 매물을 중고차 온라인 사이트에 올린 뒤 고객에게는 다른 차량을 제공하거나, 사고이력을 은폐하는 등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사후 피해자가 법적 구제를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비용·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 관계자들이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해가는 통에 남는 건 겉만 멀쩡한 중고차와 날아간 비용뿐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김모(50)씨는 지난 1월 자신의 싼타페 차량을 몰고 경부고속도로 신갈 IC에서 천안 방면으로 진입하려다 고속버스와 충돌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IC 진입을 앞두고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가 돌연 핸들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빠르게 속도를 줄여 대형사고는 면했지만 구매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중고차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구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미세한 소음과 차체 떨림 등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며 어렵게 귀가했다. 김 씨는 즉시 보험개발원 ‘카히스토리’에서 자신의 차량에 대한 사고이력을 확인하고 적잖이 놀랐다. 김 씨의 싼타페는 지난 2013년 ‘렌터카’로 출시된 차량이었다. 당시 판매 가격은 2795만 3320원이다. 더구나 출시된 해 12월에 전부파손 사고이력까지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2840만 원에 구매한 것이다. 최초 출시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산 것이다.
김 씨는 계약무효를 위해 사고차를 판매한 해당 업체 N사 소속 A딜러(자동차매매업자)에게 사실 규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딜러와 해당 업체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했다.
이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김 씨는 그간의 차량 구매 과정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A딜러는 자신이 소속된 N사가 아닌 대구의 한 업체에서 이른바 ‘매매알선’을 통해 차량을 공수해왔다. 업체와 직접 거래한 게 아니라 한 단계를 더 거친 셈이다. 이를 근거로 중고차 업체는 자사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매 대금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김 씨는 A딜러가 김 씨에게 “구매가격 (2840만 원) 가운데 110만 원은 좋은 차를 싸게 샀으니 기분 좋게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씨는 흔쾌히 응했고 현금을 마련해 딜러의 계좌로 입금했다. 김 씨는 나머지 금액만 대출을 받아 완납했다.

육안 확인 어려운 서류
김 씨는 구매 당시와 180도 다른 판매자 및 업체의 행태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어느 누가 전손차를 사겠나. 단 돈 100만 원이라도 그런 차를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성토했다.
김 씨는 “딜러들을 믿고 구매한 선량한 소비자에겐 이렇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부지기수”라며 중고차 매매상사와 업체, 업자들의 부도덕성을 꼬집었다. 한 자동차딜러 역시 “렌트카 용도 이력에 전손이면 2800만 원은 비싸게 산 것이 맞다”고 확인해줬다.
특히 김 씨는 가짜 서류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매매업자는 사고 여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표’를 반드시 구입자에게 명시 및 전달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법적으로 사기 행위가 된다.
A딜러는 그러나 “계약 당시 계약자인 김 씨의 아들에게 모두 고지했고, 성능 점검표도 건넸다”고 반박했다. N사 관계자는 “김 씨가 구매한 차량은 우리 회사의 상품용 차량이 아니다”라며 “딜러가 대구에 있는 회사에서 ‘알선매매’한 차량이고 딜러는 더 이상 근무하지 않는다”고 재차 발뺌했다. 현재 해당 업체는 5월 말로 폐업한 상태다.
A딜러가 공수해 왔다는 대구 소재의 중고차 업체에 문의했다. 이 업체 관계자도 “문제 될 것 없이 처리했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나 김 씨는 “성능 점검표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흐리다”며 “알아볼 수 없으니 구색만 맞춘 가짜 서류를 보내준 셈”이라고 말했다.
A딜러는 110만 원을 현금으로 따로 받은 데 대해 “지방에서 차를 가져오기 위한 이전비 명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씨는 “중고차 가격이 신차보다 더 비싼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누락 많은 대출 신청서
김 씨는 차량 구매를 위해 이용했던 대출회사의 대출 신청서에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제시한 이 계약서의 일부는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전파된 차량을 판매하기 위해 딜러들이 고의로 사회 경험이 없는 아들을 상대로 ‘차량정보란’을 공란으로 하고 대출 신청서에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상품조건란’도 계약자가 직접 확인하고 기재해야 하는데, 대출회사 측은 이를 공란으로 두고 서명만 받았다고 김 씨는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아들은 상품조건을 알지도 못한 채 거액을 대출받은 셈이다.
김 씨는 “아들은 대출 신청서 작성을 위임해준 적이 없다. 이는 사문서 위변조 및 동행사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달 이에 대해 관계자들을 관할 경찰서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김 씨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전문 변호사 서한은씨는 “허위 매물이나 사고 이력이 있는 자동차를 무사고차량으로 속여 파는 매매업자들이 많은 상태”라며 “구매 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미리 차량의 사고이력 등을 조회한 뒤 신중히 구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jy-0211@ilyoseoul.co.kr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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