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근절하라”했더니…경찰청, 사건 첩보 입수했으나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장은 정말 몰랐을까. 부산지역 학교전담경찰(SPO)-여고생 성관계 및 경찰 은폐 사건의 칼끝이 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장을 향하고 있다. 경찰청이 은폐 의혹과 관련,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비롯해 관련자 모두를 상대로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엄정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 그러나 경찰청 역시 이 사건을 사전에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강신명 경철청장의 책임론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로써 경찰관과 여고생의 부적절한 관계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경찰 내부의 은밀하고도 조직적인 은폐 라인의 ‘SPO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24일 한 전직 경찰 간부의 SNS를 통한 폭로로 학교경찰-여고생 성관계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경철청과 부산경찰청은 SNS 폭로가 있기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세간에는 둘 다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청 감사관실이 지난 6월1일 부산의 SPO가 10대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감사관실은 부산지방경찰청에 즉각 확인을 요청했고, 부산경찰청은 “성관계를 한 사실이 있고, 해당 경찰서가 SPO를 의원면직 처리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피해자가 고소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그때 알려 달라”며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찰청과 부산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은폐 시도를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의혹이 확산되자 경찰청은 부랴부랴 사건 진상 조사에 나섰고 급기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까지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강신명 경찰청장 역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강 청장은 6월29일 “부산 학교전담경찰관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어린 학생을 돌봐야 할 경찰관이 책무를 어기고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성관계 경위와 보고 과정에서의 은폐 의혹 등 관련한 모든 사안을 원점에서 철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강 청장은 “해당 경찰관 2명의 면직 처분을 취소하고, 퇴직급여도 환수조치하겠다”며 “성관계 경위 등 진상이 밝혀지는 대로 형사처벌, 행정처분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강 청장 역시 보고체계 관리 소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여 그의 거취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 조사 처음부터 ‘삐거덕’
일각에서는 은폐 의혹에 대한 경찰 조사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부산경찰청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던 날 두 경찰의 면직 취소와 은폐 의혹 전면 재조사 방침을 브리핑한 감찰과장은 지난 6월1일 연제서에서 문제의 한 경장이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은 뒤 사표를 내고 나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도 “피해자가 더 이상 조사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6월24일부터 28일까지 이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람이 조사를 한다는 자체가 논란이 되자 경찰청은 아예 ‘특별조사단’을 꾸려 사건을 조사하도록 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6월24일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교전담경찰관이 미성년 여학생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여기에는 담당 경찰서 2곳을 비롯해 추문 내용, 그리고 서둘러 해당 경찰관들을 의원면직 처리해 은폐했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공개됐다.
장 전 서장은 6월25일 올린 후속 글에서도 “이번 사건은 교육에 문외한인 경찰이 전문가인 교사를 제쳐놓고 학교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젊은 경찰관에게 사춘기 여학생의 상담을 맡기는 이벤트 시책을 시행해 우려됐던 일”이라며 학교 경찰제도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성범죄를 묵살하고 은폐한 강신명 경찰청장과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파면하고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실상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경찰청에 따르면 부산 연제경찰서는 A경장이 사표를 제출하기 하루 전 보호기관으로부터 A경장의 비위행위에 대한 전화 문의를 받았다. A경장은 다음날 경찰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표를 냈다. 그런 후 일주일이 지나서 A경장의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경장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퇴직금까지 챙겨 나갔다.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던 연제경찰서는 6월24일 전직 총경의 폭로글이 SNS에 올라오자 그때서야 A경장의 사표가 수리된 이후인 5월 24일에 기관통보를 받았다고 부산경찰청에 보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위보고였던 것으로 부산경찰청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 5월8일에는 부산의 또 다른 경찰서인 사하경찰서가 사건을 은폐하고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학교로부터 B경장이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통보받았으나 사하경찰서는 B경장의 사표만 받고 쉬쉬했다. 사하경찰서는 부산경찰청에 B경장이 개인 신상을 이유로 사표를 냈다고 허위보고했고, B경장 역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채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하경찰서는 한 발 더 나아가 6월24일 B경장의 사표가 수리된 후에 그의 비위행위를 알았다고 허위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폐될 뻔했던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부산경찰청장이 급기야 직접 나서서 사과하는 법석을 떨었다.
이상식 청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그동안 경찰을 신뢰해준 시민과 피해 가족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뒤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또한 잠적한 경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하고 소재를 파악해 부산경찰청 성폭력수사대에서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 경찰들에 대한 내사를 수사로 전환하겠다는 말이었다.
경찰 신뢰도 ‘바닥’
그러나 부산경찰청은 사전에 이미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은 더욱 확산됐다.
경찰은 그 동안 이 경찰들과 만 17세 이상인 여고생의 성관계에서 강제성이 없었다고 보고 현행 형법상 법적 처벌을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왔다. 또 정상적으로 퇴직되었기 때문에 징계와 같은 불이익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자 갑자기 입장을 틀었다. 이들 경찰이 위협을 했거나 대가를 제공하는 등의 불법 행위로 여고생과 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를 가리기로 한 것. 즉, 수사를 통해 강압성과 대가성 등이 드러날 경우 거기에 적절한 사법절차를 밟겠다는 뜻이었다.
이같은 경찰의 ‘사후약방문식’ 대처에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의 Y(48)씨는 “학교 경찰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번 사건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며 “어떻게 여학교에 남자 경찰이 배치될 수 있느냐”고 어이없어 했다.
또 다른 학부모 L(50)씨는 “딸애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냥 학교나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의 반응도 학부모와 별 차이 없었다.
용인 소재 중학교의 K(45) 영어교사는 “처음부터 이 제도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며 제도의 허점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학교 경찰과 학생이 서로 연락해서 만난다 해도 제3자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 경찰 제도는 지난 2012년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현재 전국에 1만1500 여개교에 10765명이 배치되어 있다. 경찰 1명이 10개 학교를 담당하는 셈이라 일손이 턱 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스쿨 폴리스 선발은 대부분 일선 경찰 중에서 면접만으로 선발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동안 경찰에서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서 남자의 경우 대부분 키가 크고 잘생긴 경찰 위주로 추천해왔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들이 유혹의 손을 뿌리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을 경찰이 스스로 조장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활동 내용 또한 학교 폭력 사건 수사보다는 예방 교육이나 상담 등에 치중하고 있어 형식적인 제도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
이에 따라 현재의 학교 전담 경찰관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경찰청장은 앞으로 남자학교에는 남자 경찰관을, 여자학교에는 여자 경찰관을 각각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젊은 경찰보다는 연륜 있는 경찰을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장 전 서장은 이번과 같은 추문이 부산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해 주목을 끌었다.
장 전 서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에서 밝혀진 두 건 이외에 다른 곳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거나 학생들이 신고하지 않은 사건들도 있을 것이라는 암시로, 향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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