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검찰의 사정칼날이 재계 전반을 겨냥하고 있다. 올 상반기 동안 재계는 대우조선해양과 롯데그룹,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 등 검찰 수사 소식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면 전환용을 넘어선 재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포스코, CJ, 효성 등에서 시작된 검찰의 칼날이 정치권 이슈와 결합된 움직임이라는 시선이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설도 심심찮게 나돈다. 이에 일요서울은 2016년 상반기 동안 검찰과 재계 사이에서 벌어진 흐름을 정리해봤다.
대우조선·롯데·정운호·최은영 등 줄소환
남상태 20억 원 비리…수사 확대 신호탄?
안팎으로 시끄러운 롯데…비자금 드러나나
검찰 움직임 놓고 대기업 살생부 현실화 긴장
검찰의 사정 칼날이 가장 곤두서 있는 곳은 대우조선해양이다.
우선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대우조선해양 경영 비리와 관련해 사장급으로는 처음으로 남상태 전 사장을 구속했다. 수사 결과 남 전 사장은 20억 원이 넘는 횡령, 배임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검찰은 2008년 무렵 남 전 사장이 회삿돈 50만 달러를 빼돌려 유럽에 위치한 협력업체 해외지분 취득에 사용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또 남 전 사장은 협력업체에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부당 수익을 거뒀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남 전 사장은 대학동창인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정모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부산국제물류(BIDC) 지분을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인 디섹(DSEC)을 통해 차명으로 취득하고, 수억 원대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또 사업 진행 과정에서 BIDC를 중간업체로 선정해 12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대우조선 감사위원회 등이 제출한 진정서에 포함된 의혹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이 진정서에는 2010년 오만 선상호텔, 2007년 당산동 복합건물 매입 사업 등에 대한 비리 의혹이 제기돼 있다.
오만 선상호텔 프로젝트의 경우 사업계약을 이사회 승인 없이 체결하고 공사비 등을 허위로 지급하다가 400억 원 상당의 손실을 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남 전 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창하 디에스온 대표는 인테리어 업체로 선정돼 과다한 공사비를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대우조선 당산동 빌딩 신축공사에서도 이 대표 회사를 시행사로 두고 원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수십억 원의 부당 이득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 외에도 대우조선해양의 홍보대행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업계 평균을 웃도는 20여억 원을 계약비로 책정했다는 의혹이 있다. 특히 홍보대행사 대표가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과 친분이 두터운 박모씨라는 점에서 수사 범위가 산업은행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은행도 수사 대상 오르나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의 수사 확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남 전 사장과 재임기간이 겹치는 민유성,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수사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민 전 행장(현 나무코프 회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강 전 행장은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산업은행의 경영을 맡았다.
이들은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민 전 행장은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발탁됐다. 그는 파산 직전의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다 정치권의 질타를 받고, 2011년 사임했다.
강 전 행장은 이 전 대통령과 소망교회를 함께 다닌 친이계 인사로 불린다. 그는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당시 최중경 기재부 1차관(현 공인회계사회 회장)과 함께 외환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해 미국 등으로부터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또 고금리 예금을 무리하게 많이 팔았다는 이유로 감사를 받고, 자진사퇴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 결과가 남 전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으로 확대돼 이명박 정부 당시 정·관계 실세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대우조선해양의 비리경영 수사 후폭풍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부실감독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금감원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적발할 기회를 두 차례나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이 2013회계연도와 2014회계연도 회계감사보고서를 대상으로 장기공사계약의 수익 인식 문제와 영업이익 부풀리기를 테마감리 주제로 정했으나 대우조선해양을 테마감리 대상 기업에 선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분기별로 장기공사계약 때문에 영업이익 변동성이 큰 50개 기업을 추출해 분식위험도가 높은 순으로 6개 기업을 선정, 테마감리를 실시하면서 정작 그 대상 업종인 조선업에 속하면서 해양플랜트 수주로 장기공사계약 규모가 업계에서 가장 커 영업이익의 변동성이 높고, 회계절벽 우려가 높았던 대우조선해양은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대우조선해양의 2013회계연도 재무사항을 보면 장기공사계약에 따른 미청구공 사금액이 전년 말 3조1935억 원에서 1년 만에 5조5830억 원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금감원이 2014년 12월에도 2015년 테마감리 대상에서 대우조선해양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미청구공사금액은 7조736억 원으로 불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 의원은 “만일 2년 전에 금감원이 대우조선해양의 회계감사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감리했다면 대규모 분식회계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신영자, 오너가 중 첫 소환
롯데그룹도 대우조선해양만큼 검찰 수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이어 10일에는 롯데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롯데건설 등 계열사 10여 곳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롯데그룹 본사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자택,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집무실 등 17곳에 투입된 검사와 수사관은 200여명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재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롯데그룹에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시선이 짙다.
이 같은 롯데그룹의 수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 관한 수사가 발단이 됐다. 정 전 대표가 이끌던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하는 과정에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불법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신 이사장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 전 대표로부터 네이처리퍼블릭 입점 청탁과 함께 10억∼20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일 신 이사장은 롯데그룹 오너일가 중 처음으로 피의자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별관에 들어서면서 “검찰에서 모든 사실을 다 말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 전 대표와의 금품거래 여부와 브로커라고 알려진 한모씨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신 이사장에게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을 직접 지시했는지와 롯데그룹 비자금 등에 대해서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입점 로비 의혹으로 시작된 수사가 롯데그룹 차원의 비리 의혹 수사로 확대된 것이다.
검찰의 롯데그룹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는 ▲신동빈 회장이 그룹이 진행한 인수합병(M&A)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는가 ▲그룹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여부 ▲신격호 총괄회장 소유한 부동산을 통한 비자금 조성 여부를 파악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크고 작은 각종 M&A를 추진 및 성공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과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로 오너 일가가 불법적인 이익을 얻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부동산 부자로 알려진 신 총괄회장의 부동산을 각 그룹 계열사들이 구매하면서 시세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매입한 정황이 감지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제2롯데월드 인·허가 특혜 의혹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MB정부로부터 받은 특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해당 계획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고 있다.
로비·횡령 추가…사면초가
롯데그룹 수사의 발단이 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도 평탄치 못한 상반기를 보냈다.
앞서 정 전 대표는 지난해 100억 원대의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4월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서울구치소에서 정 전 대표를 접견하던 중 폭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재계 안팎에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폭행과 다툼의 이유를 설명하던 중 불거진 ‘착수금 20억 원’과 ‘성공보수 30억 원’으로 인해 전관예우와 법조 브로커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정 전 대표를 다시 구속기소하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추가시켰다. 원정도박 수사 과정에서 로비를 벌인 혐의와 횡렴혐의가 추가된 것이다. 횡령 혐의에는 지난해 1~2월 네이처리퍼블릭 법인 자금 18억 원과 자회사 에스케이월드 법인 자금 90억 원 등을 빼돌린 내용이 포함됐다.
이렇게 빼돌려진 자금 중 13억 원가량은 마카오, 필리핀 등 원정도박에 사용된 정황이 확인됐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제수인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하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 신청 사실을 미리 알고,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 97만 주를 27억 원가량에 전량 매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최 전 회장은 10억여 원의 손실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지난달 8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재소환 돼 10시간 넘게 강도 높은 보강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앞서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만큼 최 전 회장의 증거인멸 정황을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 최 전 회장에 대해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혐의가 인정되지만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기각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해왔다.
이와 더불어 검찰은 최 전 회장뿐만 아니라 그가 주식 매각 직전 통화했던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도 재소환해 조사했다. 또 산업은행과 삼일회계법인 실무진도 잇따라 참고인으로 불러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이고, 삼일회계법인은 산업은행의 실사 기관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올해 초 한진해운을 예비실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자율협약 신청 발표 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산업은행과 삼일회계법인 등에서 해당 정보가 최 전 회장에게 새어나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최 전 회장에 대한 보강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검찰 시민위원회를 열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살생부’ 현실화에 떠는 재계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가 재계 전반을 덮치면서 ‘다음 타깃은 OO그룹’이라는 식의 ‘대기업 살생부’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포스코, CJ, 효성 등을 시작으로 재계를 겨냥한 수사가 올해 상반기에도 계속되면서 이 같은 추측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하루에 한 곳씩 수사대상 기업들이 나오다 보니 ‘1일 1사’라는 말도 나왔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기업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사정이라기보다는 재계 길들이기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또 검찰이 실적을 위해 과거의 자료들을 다시 꺼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전방위 기업 수사로 경제살리기 분위를 해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전방위적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 관련 주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탔다. 각 계열사마다 최소 2%에서 6%가량 하락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다음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반면 이 같은 검찰 수사를 독려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수사를 벌려놓기만 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비리 혐의를 밝혀낼 필요가 있다는 시선이다.
다만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이 MB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곳이 많아 수사 대상 선정에 대한 의혹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이 레임덕을 의식한 움직임과 전임 정권 기업에 대한 카드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측은 “기업범죄가 초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CJ, 효성,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롯데그룹 등이 MB정부에서 특혜 의혹이 있는 곳이란 점에서 해당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