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이 올해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선후보단일화→정권창출→범여권통합’이라는 3단계 플랜을 던지면서 대선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지난 4일 민주당 박상천 신임 대표가 예방을 한 자리에서도 재차 후보단일화를 강조했다. ‘과감한’ DJ의 행보를 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미 ‘교감’을 나눈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도 없지 않다. 동교동과 연청 등 과거 DJ의 핵심 조직들이 다시금 활기를 찾고 있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나라당은 당혹감 속에서도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자칫 섣부른 대응으로 호남민심이 이반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서울시장과 박근혜 전대표 진영은 그러나 내부적으로 대응전략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DJ의 범여권 통합을 위한 ‘촉매제’ 역할이 확대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나라당으로 전가될 게 뻔하다. 특히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이 전시장과 일대 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DJ의 정치개입 의도와 향후 한나라당과의 대치전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추적했다.
국민의 외면을 받아온 ‘여의도 정가’의 중심, 국회가 윤중로 벚꽃축제 덕분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때가 되면 찾아오는 국회 주변의 진풍경이다.
동교동도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목을 받긴 마찬가지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 ‘퇴역 정치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김대중 전대통령의 ‘가치’가 재발견되곤 한다. 그의 손아귀에는 아직까지 ‘호남민심’이라는 지역적 감정이 담겨 있다.
2007년 4월 현재, DJ는 2건의 선거를 앞두고 보이지 않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DJ의 차남 홍업씨의 재보궐선거 출마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DJ, 3단계 정권창출 플랜 제시
그동안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면서 불개입원칙을 고수해온 DJ가 최근 들어 다시금 범여권 통합의 ‘매개체’로 부상하고 있다. 범여권의 통합을 공개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것.
지난 3월 31일 CBS TV와의 특별대담에서 DJ의 발언은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범여권 통합이 지지부진하자, 3단계 정권창출 플랜을 민주개혁진영에 던진 것이다.
DJ는 통합신당이 불가능하다면, 우선 후보단일화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범여권이 통합신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날 대담에서 DJ는 “지금 당장에 단일 정당으로 가려면 지구당 문제도 있고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대선후보를 중심에 세워 선거를 치른 뒤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단일 정당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그는 특히, “한나라당 외에 단일 정당을 이루지 못한 다른 당들은 궁극적으로 ‘단일정당’으로 가야한다”면서 통합의 명제를 재차 부각시켰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하나의 ‘몸통’이었던 여권은 현재 열린우리당, 민주당, 통합신당모임, 우리당 탈당파 등으로 흩어져 있는 양상이다. 이들은 여전히 통합의 명분에 동의한다는 ‘물밑교감’을 주고받고 있지만, 대선 직후 곧바로 치러야 할 총선의 이해관계로 인해 논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게다가 범여권을 진두지휘할 ‘선장’이 마땅치 않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등 어느 곳에도 통합의 용광로에 불을 지필 인사가 없어 보인다. 대선이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렇다 할 차기주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통합 논의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다.
범여권 지지층도 ‘단일대오’ 형성이 어렵다는 ‘회의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표심이 한나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증거다.
이대로 시간이 흐를 경우, 한나라당에 정권을 고스란히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것은 DJ가 바라는 방향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라도 범여권의 정권 창출을 희망하고 있다.
DJ가 ‘단일후보’라는 차선책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DJ 입장에선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온 통일정책, 민주노선 등이 정권교체 이후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최대한 자신의 ‘치적’을 보호하고 다음 정권에서 정책이 계승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DJ의 ‘과감한’ 움직임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직까지 ‘권좌’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깊숙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 2월 노 대통령이 동교동을 비공개로 방문하고 ‘교감’을 나눴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올 정도로 DJ의 움직임이 의뭉스럽다.
민주당 박상천 신임 대표가 동교동을 찾아간 자리에서도 DJ는 또 한 차례 후보단일화를 주문해 주목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동교동 비공개 방문설
지난 4일 박 대표는 DJ를 만나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치면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계승하는 정당으로 낙인이 찍혀서 표가 안 나온다”면서 통합구도의 난맥상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DJ는 또 다시 ‘훈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DJ는 “단일정당이 최선이고, 안되면 단일후보로 가야 한다”면서 “국민은 대선에서 양대 축으로 나눠서 선거가 되는 것을 바라고 있는 만큼 (통합을) 해보다가 안 되면 단일후보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동교동계 멤버들은 DJ와 ‘동선’을 함께 하며 범여권 주요 인사들과 회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DJ의 ‘발언’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실제로, 과거 ‘정권창출의 산실’이었던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등의 조직이 버티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 관계자들은 통합정당이 아닌, 단일후보 전략이라도 현실화된다면 과거 세력들이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용호 연청 전사무총장은 “지금 현재 연청은 과거의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강화하거나 확대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DJ를 중심에 놓고 벌이는 범여권의 ‘당동벌이(黨同伐異) 작전’이 현실화되려면 극복해야 할 요소도 상당하다. 근본적으로, DJ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분명 존재한다.
민주당 관계자들조차 “(DJ가) 너무 깊숙이 (현실 정치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전남 무안·신안지역 재보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가 확정된 홍업씨의 지지율이 무소속 후보에 뒤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무등일보가 정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31일 무안·신안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무소속 출마 예정인 이재선 전무안군수가 24.2%로 1위를 차지했고 홍업씨는 20.0%의 지지율로 2위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홍업씨의 전략공천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지역 시민단체까지 나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공산이 크다.
DJ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은 더욱 싸늘하다. DJ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당동벌이 작전’의 대상이 한나라당일 수밖에 없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호남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터라,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DJ가 후보단일화를 주문하는 이유는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는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40%대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이명박 전서울시장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중순 치러질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DJ의 정치훈수 아래 세력이 규합되면 이것은 ‘반한나라당 연대’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이 전시장과 박근혜 전대표가 DJ의 ‘정치 개입’을 마냥 앉아서 지켜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DJ와 재격돌할 경우, 선거 판세가 ‘변질’될 수 있다면서 섣부른 움직임을 경계했다.
DJ 정치개입으로 대선판세 ‘변질’ 우려
안국포럼 조해진 공보담당은 DJ의 정치참여 부분과 관련, “이명박 전시장은 DJ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시다”면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적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선 캠프 내에서 DJ의 행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한나라당과 범여권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DJ 차남 홍업씨 국회 입성 가능할까
김대중 전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의 ‘국회의원 도전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전략공천을 하며, DJ의 의중을 전적으로 받들였을 때만 해도 홍업씨의 당선은 당연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선거 초반 여론조사는 민주당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줬다.
광주의 무등일보가 지난 3월 31일 정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두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인 이재현 전무안군수로 나타났다. 이 전군수는 24.2%를 확보한 반면, 홍업씨는 20.0%에 그쳐 2위에 머물렀다.
이에 앞서 목포 지역의 주간지 항도신문이 지난달 29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 전군수가 20.7%로 1위에 올랐고, 한나라당 후보인 강성만 목포과학대 초빙교수가 12.0%를, 홍업씨는 11.1%를 얻어 각각 2, 3위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홍업씨의 전략공천 방침이 오히려 ‘반발’을 사는 계기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홍업씨가 자칫 패배할 경우, DJ는 물론 민주당도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일 게 자명하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홍업씨의 당선을 자신하고 있는 분위기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 현재의 지지율은 뒤바뀌게 된다는 것.
한나라당 한 인사는 그러나 “홍업씨 공천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면서 “설사 당선이 될지라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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