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는 최고의 프리미엄
연예인들을 소개할 때 ‘서울대 출신 연예인’, ‘명문대 출신 가수’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소위 ‘SKY’로 불리는 대학과 관련된 연예인이 등장하면 반드시 출신 대학이 소개되는데, 올 미스코리아 진 역시 연세대 출신이라는 사실로 더욱 주목을 끌었다. 명문대 출신 연예인들은 매사에 면죄부를 받는 특권을 누리며,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항상 ‘그럴만한’ 일로 무마된다. 또 연기력이나 가창력 논란에서도 교묘히 피해가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타공인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태희에게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3년여 전 예쁘장한 외모로 연예계에 얼굴을 내비취던 그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막강한 백그라운드를 등에 달고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성과 미모’를 갖춘 ‘퀸카’의 표본으로 자리잡은 그는 ‘연예인은 예쁘면 된다’는 관례를 깨고 ‘엘리트 연예인’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즉 ‘머리가 나쁘다’, ‘겉멋만 든 날라리’, ‘무식이 철철 넘치는 부류’, ‘외모 다듬기만 열중하는’ 등과 같은 연예인에 대한 비하적인 인식을 한 순간에 뒤집어버린 것. 또 연영과처럼 예체능 계열만이 연예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깨뜨렸다. 김태희 열풍이 가라앉기도 전에 연예계에는 또 하나의 ‘인물’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세계적인 명문 스탠퍼드대 영문학 석사과정을 조기 수석졸업한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
그의 등장은 불량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합가수에 대한 논란을 잠재워버림과 동시에 ‘명문대 출신도 딴따라한다’는 신선한 인식을 몰고왔다. 이들은 모두 명문대라는 최고의 프리미엄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 가수에서 기획자로 변신한 이수만(서울대 농대)과 심형래(고려대 식품공학과)는 명문대 출신다운 기획력과 발상으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입지를 굳힌 인물로 꼽힌다. 또 가요계의 영원한 카리스마로 통하는 신해철의 박학다식함과 연예인 답지않은 철학적 논조는 서강대 출신이라는 백그라운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명문대 꼬리표’ 부작용도…
소위 ‘대학물’을 먹지 않은 연예인이 거의 전무한 요즘에는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한다. 명문대 간판은 이유막론하고 대중들로부터 추앙받을 수 있는 특혜를 부여하고 있으며 ‘싸구려’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지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긍정적인 기제로 활용된다. 때문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는 연예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그러나 명문대 꼬리표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질과는 상관없이 출신대학이 평가기준이 되거나 고정이미지로 굳혀지는 경우도 있다. ‘음악을 하기위해 공부했다’는 타블로의 경우, 본인은 ‘스탠퍼드’ 출신임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음악은 물론 말과 행동까지 그는 그 꼬리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 의미없이 내뱉는 농담조차 뭔가 심오한 철학(?)이나 ‘지성인의 여유’정도로 여겨지기 마련. 음악보다는 ‘스탠퍼드 출신’의 가수라는 것이 관심을 끈다는 것도 문제다. 김태희 역시 정갈한 엘리트 역에는 제격일 수 있으나, 반대의 경우에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천박하고 보잘것 없는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엘리트’라는 선입견이 깔려있는 한 사람들은 그가 맡은 역할에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 또 이들은 영어실력이나 집안환경, 수능점수, 학창시절 성적 등 연예생활과는 실질적으로 상관없는 것들로 주목받거나 연예인다운 끼나 재능보다 ‘학벌’을 무기로 삼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무시할 수 없다.
# 비명문대 출신은 서러워…
명문대 출신 연예인과 그렇지 않은 연예인을 대하는 언론이나 대중들의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가수 박진영이 데뷔했을 당시 그의 ‘보잘 것 없는’ 외모에도 불구, 사람들은 연대출신이라는 그의 빵빵한 학력에 주목했으며, 그의 튀는 의상이나 돌출행동, 성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방식, 파격적인 가사 등도 ‘엘리트 가수의 자기표출’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가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한낱 ‘날라리’로 치부되기 안성맞춤이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는 숱한 외설논란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연예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명문대 출신이 아닌 연예인들의 야한 옷차림이나 천박한 말투, 개방적인 성의식 등에는 ‘술집출신’, ‘나가요’, ‘삼류’ 등 과거전력을 의심하는 식의 공격성 발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특히 ‘무식함’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인기 여성그룹의 K양은 한 프로그램에서 장미를 뜻하는 영어단어 ‘ROSE’를 ‘LOSE’로 적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또 한국의 마돈나 김XX은 ‘닭’을 ‘닥’이라고 썼다가 사회자의 “김XX씨 장난하지 마세요”라는 말에 “아, 맞다”하고는 ‘닦’이라 고치는 바람에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또 cyber lover를 ‘시버리버’로, exit를 이그젝트로, beautiful, rocal 등을 못읽어 쩔쩔매는 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되기도 했다. 이들이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었다면 위의 사건들은 ‘고단수 유머’로 간단히 넘어갔을 터. 그러나 이들은 ‘연예인은 어쩔 수 없다’는 비하성 발언과 함께 ‘머리에 X만 들었다’는 식의 모욕적인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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