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량 끝에 올려놓고 시험해보겠다는 최 감독…고별전 승리로 마감
차이나머니 국가대표급 선수 및 지도자들 싹쓸이…흔들리는 K리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FC서울을 진두지휘하며 정규리그 2위까지 올려놓았던 최용수 감독이 돌연 중국진출을 수용하면서 K리그 전체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물론 최 감독은 ‘큰물에서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 남겨진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은 한국축구계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비록 황선홍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스타감독을 내줘야 하는 K-리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독수리’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KEB하나은행 FA컵 16강전 안산무궁화FC와의 경기에서 윤주태의 연속골에 힘입어 2-1 승리로 고별전을 마쳤다.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 감독은 “경기 내용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는 경기였다. 팬들이나 저에게 유종의 큰 선물을 준 선수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눈물을 흘린 적은 없지만 마음은 슬프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또 “1994년 첫 월급 110만 원을 시작으로 이 FC서울에서 청춘을 다 바쳤다. 아직도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여전히 FC서울의 남은 경기들이 신경 쓰이고 반사적으로 이곳에 출근할 것 만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포터스를 비롯해 관중들도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의 영웅 최용수’라는 현수막을 걸고 최 감독의 도전에 응원을 보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시즌 중에 떠나서 미안하다. 하지만 기회를 놓고 싶지 않았다. 저를 벼랑 끝에 올려놓고 시험해보고 싶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로써 최 감독의 서울FC 인연은 끝이 났다. 그는 오는 7월 1일 장쑤 쑤닝 감독으로 취임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게 됐다.
최 감독의 중국행에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김성재 수석코치가 동행한다. 여기에 울산 코치와 괌 남자 청소년 대표팀, 여자대표팀 감독을 지난 김상훈 코치가 합류할 예정이다.
연봉 35억 거절이
더 비상식
이처럼 최 감독은 도전을 위해 일보 전진한다는 심정을 전하며 팀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함도 남아 있어 박수갈채만을 보내기엔 K리그가 무기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감독의 중국결정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장쑤의 러브콜에서 시작된다. 정확하게 1년 전인 지난해 6월 20일 장쑤는 최 감독에게 연봉 11억 원, 계약기간 2년 6개월의 영입제안서를 내밀었었다.
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고 곧바로 연봉은 20억 원으로 올랐다. 당시 구단주인 허창구 GS그룹 회장의 재가도 떨어졌지만 최 감독은 ‘의리’를 선택하며 잔류했다.
그러나 1년 사이 장쑤 구단이 주인이 바뀌면서 투자규모가 달라졌다. 장쑤는 중국 굴지의 가전유통업체 쑤닝 그룹에 인수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클럽이 됐다.
당장 쑤닝 그룹은 지난 겨울 이적시장에서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던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알렉스 테세이라와 조, 미드필더 하미레스 영입에 10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투자효과는 곧 반영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중국 슈퍼리그 16팀 가운데 중위권인 9위에 머물렀던 장쑤는 올 시즌 광저우 헝다, 허베이 화샤싱푸 등 막대한 자금력을 쏟는 팀들과 우승경쟁을 하고 있다.
다만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해 자존심의 상처를 입자 루마니아 출신의 댄 페트레스쿠 감독을 경질하고 차기 감독 선임이 나섰다. 물론 장쑤의 시선은 최 감독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제안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번 최 감독의 영입 조건은 최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장쑤는 최종적으로 계약 기간 2년 6개월 연봉 300만 달러(약 35억 원)를 제시했다. 기본 연봉의 총액이 무려 87억 원에 이르고 각종 수당 등을 합치면 연간 500만 달러(약 58억 원)가 넘는 엄청난 몸값이다.
더욱이 장쑤는 최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독소조항을 계약서에 넣지 않았다. 통상 중국 구단들은 몇 위 이하로 떨어질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건을 삽입한다.
결국 최 감독은 이 같은 조건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감독 평균 연봉은 추정치 2~3억 원선이다. 최고액이 4억 원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 감독은 2년간 장쑤에서 활약하면 약 70억 원을 손에 쥐게 된다. 이는 국내에서 5억 원씩을 받아도 14년을 감독으로 보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돈 때문에 장쑤 행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구단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축구계 관계자들은 최 감독이 돈 때문에 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며 “안 가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여기에 지난해 최 감독이 서울과 3년 재계약을 한 만큼 서울 구단의 결정이 우선이었지만 구단 측도 장쑤의 영입 조건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허 구단주 역시 최 감독의 도전을 존중한다는 뜻을 전해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 건너 불구경
다만 돈 문제를 떠나 최 감독의 지도력이 인정받으면서 K-리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국외로 유출되는 자원을 놓고서는 한국프로축구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불고 있는 차이나머니는 한국축구계를 강타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축구굴기 정책으로 인해 중국 슈퍼리그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축구시장에서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인근에 위한 K리그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최근 K리그 클럽들은 지갑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보다 수준 높은 K리그의 정상급 선수들을 중국으로 데려가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에 올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수비수 전북 현대 김기희가 상하이 선화로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여기에 K리그 최고 스타 감독인 최 감독마저 장쑤로 행선지를 바꾸면서 K리그 이탈행렬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머니파워를 앞세워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세계적 명장들을 영입하고 있는 중국 프로축구는 한국 국가대표 수석코치를 지낸 박태하 감독이 2014년 중국 갑급(2부)리그 옌볜FC를 맡아 올해 1부 승격을 이끈 이후 올해만 한국인 지도자 4명을 영입했다.
지난 1월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항저우 뤼청을 맡은 것을 필두로 장외룡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과 이장수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이 각각 충칭 리판, 창춘 야타이 지위봉을 잡았다.
결국 선수를 비롯해 지도자급까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K리그는 당장 흥행을 비롯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 프로 축구를 뒤덮은 심판매수 의혹 등으로 지난 시즌 우승팀 전북 현대가 흔들렸다. 또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며 곧 상벌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보여 최강희 전북 감독의 거취에도 변동이 생길 것으로 전망되는 등 K리그는 안팎으로 이어진 악재에 치명상을 입었다.
도전 천명에도
결정 시기 아쉬워
축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최 감독이 좋은 조건으로 해외로 진출한다는 점에 대해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칭찬하기에도 뒷맛이 씁쓸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단장은 “모양새가 썩 조아 보이진 않는다”면서 “의리를 택해서 남겠다고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팀을 맡았으면 그래도 한 시즌은 끝내주고 가는 것이 구단과 선수단에 좋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또 한 단장은 “이제 정규시즌의 40% 가량을 소화하지 않았나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FC는 최 감독의 빈자리를 황선홍 감독이 채우기로 했다. 황 감독은 오는 27일 취임식을 갖고 FC서울 제 11대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취임식을 치른 뒤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서울의 훈련장 GS챔피언스파크에서 선수단 상견례 및 첫 훈련을 진행하고 오는 29일 열리는 K리그 클래식 17라운드 성남과의 홈경기를 갖는다.
이와 함께 최 감독과 같이 중국으로 떠나는 김성재 수석코치를 대신해 황 감독과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강철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현장복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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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