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 神 정운호 “허점 파고들어 ‘貪慾’ 키웠다”
로비의 神 정운호 “허점 파고들어 ‘貪慾’ 키웠다”
  • 송승환 기자
  • 입력 2016-06-24 20:35
  • 승인 2016.06.24 20:35
  • 호수 1156
  • 1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중취재 각종 非理로 점철된 서울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

20092011년 당시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 운영

서울시·시의회·감사원 지적에 최고가 입찰로 바꿔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정운호(51·구속)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서울 지하철 상가에 매장을 늘리고 영업망을 장악하기 위해 편법(便法)을 동원한 정황이 2010년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여실히 드러났다. 정 대표가 당시 부실한 지하철 상가 운영·관리상 허점을 파고들어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1010서울지하철 상가 임대사업 비리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서울메트로 직원과 계약업체 관계자 등 14명에 대한 수사(搜査)를 검찰에 의뢰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를 통해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이 각종 비리(非理)로 점철됐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서울메트로 담당 직원들이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고 입찰정보를 빼돌리거나, 친인척 명의로 상가를 낙찰받아 불법 전대(재임대)로 수억 원을 챙기는 등 사례가 적발됐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하상가 운영 과정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성행하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치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200912월 서울역 등 70개 역사 내 매장 100곳을 묶어 임대하는 명품 브랜드점 임대사업사업자로 A사를 선정했다.
 
당시 지방계약 법규상 수익사업은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결정해야 했지만, 메트로 담당 부서장이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해 A사를 사실상 밀어줬다.
 
메트로가 진행한 최고가 입찰의 낙찰률은 평균 256%에 달했지만, A사는 감정가의 106%에 불과한 가격에 낙찰됐다. 5년 임대료로 186억 원을 내기로 계약해 최고가 낙찰을 가정했을 때보다 100억 원 이상의 특혜를 A사가 받은 것으로 감사원은 추산했다.
 
지하철 상가 사업에 눈독을 들인 정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진출을 확대하려 노력한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정 대표는 A사에 매장 인테리어 공사비 등을 지원하면서 매장 운영권 일부를 양도받았다. 메트로와 A사의 임대차 계약에는 매장을 직영·위탁 운영해야 하고, 전대나 운영권 양도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이런 규정을 위반해 사업운영권을 사실상 네이처리퍼블릭에 넘긴 것이다.
 
명품 브랜드점 임대사업은 계획 단계에서 통신기기 30, 액세서리 70곳 등으로 매장 업종을 제한했다. 해당 업종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메트로는 20099월 입찰 공고를 내면서 자본금 5억 원기준만 갖추면 업종에 제한없이 누구나 응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애초 매장 운영에 참여할 수 없던 화장품 업체인 네이처리퍼블릭이 지하철 상가를 장악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게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A사는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을 따내기 위해 20098월 급조된 회사라는 사실도 감사 결과 드러났다. 대표를 제외하고 직원이 1명뿐이었지만, 38명이 근무하는 것처럼 서류를 거짓으로 꾸며 제출했다. 메트로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 530일 정 대표와 홍만표(57·사법연수원 17·구속기소)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홍 변호사가 20119월 지하철 매장 임대 사업과 관련해 서울메트로 관계자 등에게 청탁한다는 명목으로 정 대표 등 2명으로부터 2억 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미 구속된 브로커 이민희 씨(56·구속기소)에게도 서울메트로 관계자 등에게 로비해 네이처리퍼블릭의 지하철 역내 매장을 늘려 달라며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수차례 9억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정 대표가 지하철 매장 임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092011년 당시 구체적인 계약 조항을 어떻게 확정할지 협상하는 과정에서 메트로와 유착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애초 공고 내용과 달리 업체에 유리하도록 특혜조항을 넣거나, 업체에 불리한 조항은 빼는 게 이 시기 협상 과정에서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협상에 의한 계약을 통해 화장품 매장 운영권을 따낸 M사는 입찰 공고에서 역사 매장에 동일 업종 입점도 가능하다고 정했던 것을,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동일 업종의 입점을 제한하도록 해 지적을 받았다.
 
이런 사례들이 알려져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서울시, 시의회, 감사원 등으로부터 잇따라 나왔다. 이에 따라 메트로는 현재 모든 매장 임대 사업 계약 방식을 최고가 입찰 방식으로 바꾼 상태다.
 
한 서울시의원은 지하철 매장 임대사업 초기에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이 진행된 곳이 많았고, 여러 비리가 개입될 소지도 많았다면서 여러 사업장에서 문제가 터져나와 시의회 역시 이 부분을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009S사를 내세워 지하철 매장에 화장품 매장을 냈지만, 20117월 계약조건 위반으로 메트로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다. S사가 계약 해지에도 역사에서 매장을 철수하지 않자 메트로는 법원에 명도소송(明渡訴訟·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낙찰 받고 대금을 지급한 후 6개월이 경과됐음에도 점유자가 자진해 집을 비워주지 않을 때 낙찰인이 관할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을 냈다.
 
홍 변호사가 로비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 바로 이때다.
 
홍 변호사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협상 실패의 책임을 명분으로 20118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에서 물러나 퇴임했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퇴임 후 한 달 만에 곧바로 청탁 로비에 나선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홍 변호사가 메트로를 운영하는 서울시 측 고위 관계자와 접촉해 명도 소송 등에서 정 대표 측의 입장을 관철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해 서울메트로가 진행한 매점 입찰에서 경쟁업체보다 30%가량 높은 금액을 써내고 이를 따내 주목받기도 했다.
 
서울메트로의 역사(驛舍) 매장들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매장마다 월평균 500600만 원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인 수익뿐 아니라 많은 시민이 오가는 곳에 매장이 있어 브랜드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songwin@ilyoseoul.co.kr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