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20대 국회가 4.13총선 이후 3당체제로 새롭게 출범했지만 여전히 정국은 혼란스럽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이 ‘개헌’을 꺼내들며 정국을 흔들었지만 청와대가 요지부동인 이상 ‘찻잔속의 태풍’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개헌보다는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그중에서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국내 여야 통틀어 잠룡군 중 단연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1, 2위를 다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조차 문 전 대표의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당내 낙관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文, ‘야권의 이회창이냐’ ‘제 2의 박근혜냐’
문재인 대표의 ‘독주’가 무섭다. 문 전 대표는 지난 6월13일 네팔로 출국해 자원봉사활동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국내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부재한 가운데 실시된 여야 대선 후보 지지율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국내에서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1위를 달리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지난 5월말 국내 귀국해 차기 대권 도전 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잠시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반 총장이 출마한다고 해도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주류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야권내 강력한 경쟁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 안희정 충남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과 지지도 경쟁에서도 크게 앞서고 있다. 이는 과거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 이후에도 강력한 대선 주자로 남아 있던 한나라당 ‘이회창 대세론’을 연상한다. 야권 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안 대표와 손 전 고문의 경우 더민주당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낮다. 이런 점에서 당내 잠룡군 중 ‘페이스메이커’만 존재할 뿐 ‘흥행몰이’할 경쟁자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당내 경쟁자가 없다” 대세론 한계
안 지사의 경우 ‘불펜 투수론’에서 ‘선발 투수론’으로 대망론을 진화시켰지만 낮은 인지도에 국민들 입장에서 ‘범친노 후보’라는 점에서 문 전 대표와 차별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 시장의 경우에 당내 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해 경선에 나선다고 해도 승리가 쉽지 않다. 손 전 고문이 경선에 참여할 경우 비주류의 지지를 받아 ‘의미 있는 2위’를 할 수 있겠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불쏘시개’로 전락해 ‘경선 트라우마’ 극복이 넘어야 할 산이다.
당초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면서 당에서 ‘친노색’을 지우려던 김종인 비대위 대표 역시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당내외 잠룡군을 다 끌어모아 내년 대선에서 승기를 잡으려던 게 김 전 대표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을 비롯해 박 시장, 안 지사 등이 기대보다 ‘문재인 대세론’에 막혀 ‘맥’을 못추면서 ‘흥행 마술사’, ‘킹메이커’로 나서려던 김 대표의 존재감이 엷어지는 모습이다.
한편 점점 공고해지는 ‘문재인 대세론’은 오는 8월 말에 있을 전당대회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추미애, 김부겸, 박영선, 이종걸, 송영길 의원 등이 비주류 대표로 나설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내 ‘문재인이 추미애 의원을 낙점했다’는 말이 돌면서 김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송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도 출마에 부정적인 상황이다. 결국 문 전 대표가 밀고 있는 추 의원이 당 대표실에 ‘무혈입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재인 대세론’과 함께 야권 일각에서는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이은 패배가 악몽처럼 더민주당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말의 총선에서 ‘질 수 없는 선거’로 평가했다. ‘정권 심판론’도 거셌고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적 공분도 넓게 퍼져 있었다. ‘과반은 따놓은 당상’이라던 전망이 여의도에 퍼졌고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패배를 예감하고 ‘국회 선전화법’을 통과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패배했다.
2012년 야당 총·대선 패배 ‘타산지석’
같은해 치러진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박정희 후광’이라는 점을 집중공격한 문재인 후보는 ‘민주 대 독재’, ‘과거 대 미래’로 선거 프레임을 잡고 승리를 자신했다. 대선 직전, 미국 타임지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박 후보를 묘사한 것도 ‘호재’로 삼았다. 하지만 졌다. 역대 최고 수준의 대선 투표율(75.8%)을 보였지만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 두 번의 큰 선거에서 야당은 패했다.
두 번의 패배 이후 야당에서는 특히 친노 강경파를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들어 패배의 원인으로 삼았다. 한국의 유권자 분포가 배경이 됐다. 즉 지역적으로 영남의 인구가 호남의 2배가량 되고, 연령별로도 50대 이상 유권자 수가 많아 ‘유권자 고령화’로 야당의 승리가 쉽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분석도 이번 4.13 총선을 거치면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재차 ‘야권통합 없이 총선 없다’는 주장으로 대체돼 나왔지만 국민들은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줬다. 야당 내 두 주장은 이렇다 할 반성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문재인 대세론’과 함께 재차 낙관론으로 대체되는 모습이다. 이 낙관론의 핵심은 내년 대선에서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등 1여다야 구도로 치러진다고 해도 ‘10년 장기집권’에 지긋지긋한 국민들이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야권에 정통한 한 인사는 ‘문재인 대세론’처럼 위험한 낙관론적 시각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인사는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보다는 권력 의지가 강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약하게 보인다”며 “지도자 특히 대권을 거머쥐려는 인사는 스스로 권력 의지가 어느 후보보다 강해야지 등 떠밀리 듯 출마하는 모양새로는 안된다”고 전제했다. 나아가 그는 “대선 후보로서 언행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말춤 발언’부터 총선에서 ‘호남 선언’, 그리고 최근 가덕도 발언을 예로 들었다.
‘말춤 발언’이란 지난 대선에서 “투표율 77% 넘으면 광화문에서 말춤을 추겠다”고 한 문 전 대표의 약속이다. 하지만 75%에 그쳤고 당선자는 박근혜 후보였다. 야권 결집과 더불어 여권도 결집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결과였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77%가 넘었더라면 선거에 지고도 울면서 말춤을 췄어야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말춤발언’, ‘호남선언’ 불안한 文
‘호남 선언’은 지난 총선 직전, ‘호남이 지지를 안하면 정계은퇴하고 대선출마도 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문 전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공항 발언도 마찬가지다. 총선 직전 부산 유권자에게 “부산에서 더민주에 5석만 주면 이번 정부 내 동남권 신공항을 착공하겠다”고 했다. 결국 부산은 18석 중 5석, 경남은 16곳 중 3석을 몰아줬다. 그러나 신공항은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로 갔다. 문 전 대표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한 셈이다.
이 인사는 “문재인 대세론이 불안한 것은 문 전 대표뿐만 아니라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진 측근들 때문”이라며 “97년,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2012년 당내 경쟁자 없이 대통령이 된 박근혜 후보를 반면 교사로 삼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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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