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은밀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내 안의 은밀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 정소현 
  • 입력 2005-06-14 09:00
  • 승인 2005.06.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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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우들의 변신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장르는 아마도 ‘공포영화’가 아닐까 싶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의 공포감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앵글에 담아내는 작업이다 보니 노련한 연기력과 변신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필수.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영화배우 김혜수(35)는 연기경력 20년의 베테랑 연기자답게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 소화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는 7월 1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분홍신’을 통해 더욱 짙어진 연기 색깔을 발산하고 있는 김혜수를 지난 8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만나봤다. 영화 ‘분홍신’(감독 김용균·제작 청년필름)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욕망을 자극하는 매혹의 분홍신 그리고 그 분홍신이 가져올 저주를 담은 영화로, 분홍신을 탐내던 여자들이 분홍신을 신게 되자 발목이 잘려 죽게 된다는 내용. 영화에서 김혜수는 30대 초반의 안과 전문의 선재 역을 맡았다. 유일한 취미가 ‘구두 모으기’고, 가족이라곤 그녀의 딸인 태수 하나다. 엄마나 아내라는 것 말고 그냥 여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인물. 우연히 주운 분홍신 하나에 집착하면서 무서운 악몽과 환상에 시달리게 된다. 딸 태수에게까지 원혼의 기운이 엄습하자 분홍신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감독님과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 때문에 ‘분홍신’을 선택했어요. 장편 공포영화는 처음이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죠. ‘공포’라고 하는 상황 자체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제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기대도 크죠.(웃음)”

‘분홍신’이 본격적인 공포영화로는 첫 도전인 김혜수는 지난 20여년의 연기생활 중 가장 고난의 시간을 보냈노라고 털어놨다. 원혼에 쫓기면서 원혼의 실체를 파헤치는 역할인 탓에 터지는 형광등의 깨진 잔해들과 비처럼 쏟아지는 핏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탁한 공기와 먼지에 시달린 지하철 터널 장면을 3일 내내 찍고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그러나 김혜수의 연기가 놀라운 것은 이런 외적인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당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욕망을 억누르다가 분홍신에 매혹돼 내부에 숨어있던 욕망을 어렵게 끄집어내는 여자. 그 미묘한 감정은 공포에 갇혀 절망하거나 반대로 광기에 휩싸이는 기괴한 모습으로 발전한다. 한 톤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감정을 김혜수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표현했다. 다른 공포 장치를 쓰지 않더라도 김혜수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울 정도다.

창백하게 억눌린 내면과 극단적인 탐욕을 오가는 주인공 선재의 캐릭터를 너무도 완벽하게 소화해낸 모습. 특히 노메이크업과 짧은 헤어스타일은 영화의 서늘한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동시에 섹시미의 대명사격으로 자리잡은 그녀의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루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어쩌면 제겐 그것이 ‘연기’겠죠. ‘분홍신’처럼 제 안의 숨은 욕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그건 장담 못하겠는데요.(웃음) 그만큼 욕망이란 건 무섭고도 강렬한 본능인 것 같아요.” ‘분홍신’을 통해 그동안의 화려함과 당당함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 김혜수. 그녀는 이미 분홍신을 통해 깊게 내재돼 있던 욕망의 발견을 경험한 듯 보였다. 영화가 개봉되는 순간 외모의 변화를 압도하는 그녀의 연기변화에 기대가 모아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정소현  coda031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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