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노인에 맞고 산다

도움 받을 제도 모르는 경우 많아…홍보 절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노노 학대’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60대 이상 노인이 80~90대 노인을 상습 폭언·폭행 심지어 살해하는 참담한 현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 대부분이 아들, 딸, 며느리 등 가족으로 밝혀져 그 충격이 더하다. 전문가들은 친족 주변에서 발생하는 노노 학대 특성상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과 신속한 신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취약한 사회제도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적극적인 홍보까지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례 1. 치매를 앓는 이모씨(여·66)는 오랫동안 남편(73)으로부터 심한 폭언과 폭행을 당하며 살았다. 남편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강했지만 치매환자인 이 씨를 혼자 감당하기는 버거웠고, 그 스트레스는 거친 언행과 폭력으로 돌아왔다. 함께 사는 둘째 딸은 지적장애 1급으로 아버지의 학대행위를 말릴 수 없었다. 다행히 이 모습을 요양보호사 실습생이 발견해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남편을 설득해 피해자 이모씨를 장녀와 함께 살도록 조치했다.
#사례 2. 전남에 사는 한 아버지(96)는 아들(67)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학대행위자인 아들은 중도장애인으로 평소 우울증과 알콜중독으로 인해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참다못한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고소했다. 다만 아들이 처벌 받는 것은 원치 않고 단지 따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른 자녀들은 아버지를 부양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학대행위자인 장남에게 부양을 전가했다. 장남이 재학대방지 서약서를 작성하고 자녀들까지 중재에 참여한 끝에 분리거주가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내년쯤 ‘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노인 비중 14% 이상)’ 진입이 유력할 만큼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이에 따라 노인학대도 급증하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노인이 노인에게 폭언, 폭행, 방임하는 노노 학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노인학대 하면 젊은 층으로부터만 당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지만 최근에는 가해자의 연령층 또한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5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노인 10명 중 4명(41.7%)이 노인에게 맞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에 10명 중 1명꼴(12.9%)로 발생했던 노노 학대가 10년 새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더구나 학대행위자가 아들(36.1%), 배우자(15.4%), 딸(10.7%), 며느리(4.3%) 순으로, 친족에 의한 학대가 약 70%에 달했고, 노인학대가 일어나는 10곳 중 8곳 이상이 가정 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행위는 ▲ 부모에 폭언과 폭행 ▲ 제한된 공간에 강제로 가두거나 거주지 출입통제 ▲ 협박 또는 위협하는 행위 ▲ 부모 소득·재산·임금을 가로채거나 임의로 사용 ▲ 거동이 불편한 부모에게 의식주 관련 보호를 제공치 않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돈 없고 병들고…범죄로 이어져
노노 학대 증가 배경에는 ‘고령화’가 자리잡고 있다. 평균 수명이 높아져 배우자나 가족과의 동거 기간이 연장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대부분 노인 간의 학대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갈등관계에서 비롯된 가정폭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적 빈곤과 병약한 신체, 그에 따른 복합적 스트레스는 노노 학대를 증가시키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고령의 부모를 오랜 기간 봉양하게 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여기에 각종 병수발이 겹치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식이든 배우자든 본인도 고령으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서 또 다른 노인을 돌봐야 하는데 신체·정신적으로 감당할 여력이 없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결국 노인학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학대는 부모를 상습 폭행, 살해까지 저지르는 ‘패륜범죄’로 나타났다. 경찰청 집계를 보면 2005년부터 10년간 패륜범죄 건수는 9만4700여건에 달했다. 지난 3월 경남에서 50대 사위가 장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사위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했는데 장모가 아내 편을 들자 격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보호시설 확충 필요
전문가들은 우선 관련 당국이 기존 노인돌봄서비스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산업과 교수는 “많은 노인들은 실제 본인이 도움받을 시설이나 제도 등이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어린이집처럼 노인들을 데려다주며 돌봐주는 데이케어시설(재가장기요양시설)이나 장기요양보험 같은 사회적 제도를 널리 알려 노인학대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인복지 분야의 제도적 사회보장제도 확대와 더불어 적극적 학대 피해 신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건국대 이미진 사회복지학 교수는 “노인학대 특성상 가정 또는 시설 내에서 장기간 은폐되기 쉬우므로 신속한 신고와 개입이 중요하다”면서 “지난 10년간 노인학대 신고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은 노인학대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학대 당한 노인을 가해자와 격리시켜 보호하는 ‘학대피해노인전용쉼터’를 확충하고, 보호기간 연장은 물론 노인학대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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