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타의 집’ 성폭행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마리스타의 집’ 성폭행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 신현호 기자
  • 입력 2016-06-14 10:48
  • 승인 2016.06.14 10:48
  • 호수 1154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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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짓 못하게 분리 하랬더니…일단 옮겼으니 ‘장땡?’

남성 거주자끼리 추행 이어져…인권위, 적발 후 전원 권고
일부 다른 시설로 옮겼지만 같은 곳으로…“시설 폐쇄해야”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장애인 거주시설인 ‘마리스타의 집’에서 발생한 거주자간 성폭행 문제가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애인 인권단체와 관할 기관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다. 지적 장애인들로 구성된 이 시설에서는 수년간 거주자들 사이에서 성폭력이 벌어진 사실이 적발됐다.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자 단체는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시설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시설 폐쇄 또는 거주자 전원(다른 시설로 보냄)조치를 권고했다. 결국 일부 거주자들은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옮겨진 거주자들이 한 시설로 가게 된 것이다.

지난달 3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페연대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들이 마포구청 앞에 모였다. 장애인시설 ‘마리스타의 집’에서 벌어진 성폭력 행위에 대한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마리스타의 집은 충북 충주시에 위치한 장애인거주시설로 지난 2004년 설립됐다. 소재지는 충주이지만 법인인 마리스타 복지재단이 서울 마포구에 있어 행정관할은 기관은 마포구청이 맡는다. 거주자들 모두 10대, 20대 지적장애 남성들이다.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마포구청이 행정처분 과정에서 보인 해괴한 행정처리와 줄곧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뻔뻔함에 일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에 따르면 같은달 10일 마포구청은 반복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적장애인거주시설 마리스타의 집에 거주인의 전원조치와 시설장 교체를 요구하는 행정처분을 명령했다.

이는 지난 2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행정관할 기관인 마포구청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무슨 일 있었길래

거주인간의 성폭행 문제는 지난 2012년부터 불거져왔다.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2012~2015년동안 총 5차례에 걸쳐 인권실태조사를 벌였는데, 당시 거주자들 사이의 성폭행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가 심층조사를 벌인 결과는 충격적이다. 거주자끼리 서로 성기를 자극하게 하거나 신체에 삽입하는 등 성추행·폭행이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호 성행위를 벌인 거주자는 총 7쌍. 거주자 40명 가운데 성폭력에 연관돼 있는 거주자는 17명이었다.

거주자 신모씨는 함께 거주하는 오모씨, 추모씨와 서로 성행위를 했고 김모씨를 성추행·폭행했다. 백모씨, 정모씨, 고모씨에게는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관계다.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개선 방안을 시행해 왔지만 거주자들의 성폭행은 근절되지 않았다. 성폭행 문제가 처음 공식 확인된 2012년에는 ‘거주자간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인권지킴이단의 정기적 인권 상황 점검’ 등의 내용을 담은 경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2년 뒤 2014년 조사에서도 성폭력이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마포구청은 ▲성추행 연루자 퇴소조치 ▲거주인 대상 비뇨기과 검사 시행 ▲성교육 방식 수정 ▲성범죄 발생 시 즉시 신고 명령 등의 1차 행정조치를 내렸다.

1년 뒤인 지난해 서울시의 심층 조사에서 적발된 거주자간 성폭행은 더욱 심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서울시의 심층조사결과와 자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3월 시설폐쇄나 거주자 전원 조치를 권고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경고·행정처분·시정명령 이후에도 거주자간 성폭행과 성추행 피해가 여전해 회복 불능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 시설로 전원조치

그렇다면 현재 조치는 얼마나 이뤄졌을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현재 22명의 거주자가 마리스타의 집을 퇴소, 다른 시설로 전원 됐다. 황당한 건 이들이 한 시설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이들 단체는 이에 대해 마포구청과의 면담에서 “마리스타의 집에서 성폭행은 방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거주인에게 1인 1실을 제공한다고 성폭행 및 인권침해를 단절할 수 없다. 거주인을 시설에서 분리하고, 적절한 피해자 지원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마포구는 그러나 이미 마리스타의 집을 퇴소한 22명의 거주인에 대해서는 지원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마포구의 행정관할은 마리스타의 집에 국한된다”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시설로 전원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후처리는 마리스타의 집과 옮겨진 시설에서 담당하고 있으므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단체는 “인권위에서 시설폐쇄를 권고했으나, 구청은 권고를 따르기는커녕 기능보강사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의 시설 폐쇄 권고는 마리스타의 집이 더 이상 장애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관계자는 “마리스타의 집이 기능보강사업비를 신청했고, 마포구청은 신청을 수용했을 뿐”이라면서 “구청도 서울시에 예산을 신청한 상황이다. 최종 승인은 서울시에서 한다. 기능보강사업비로 시설을 리모델링해 거주인에게 1인 1실을 제공하기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단체 측은 “거주자 36명이 지역사회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마리스타의 집 결정문에 언급된 39명 전원을 성폭행 직·간접적 피해자로 볼 수 있으므로 이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성폭행이 발생할 때 대응하고 지원하는 절차에 따라 일상의 회복을 위해 구체적 지원 계획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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