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족, 캥거루족, 연어족…청춘을 지칭하는 슬픈 신조어
서울 60세 이상 노인 45.2% 자녀와 함께 살아
취준생 10명 중 7명 캥거루족, 부모의존도 90%이상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최근 청춘을 이르는 여러 가지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립할 시기가 되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부모라는 방어막 속으로 숨어버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자라족, 부모님의 노후자금에 일명 빨대를 꽂아 제 돈처럼 사용하는 자녀를 일컫는 빨대족 등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세태를 드러낸다. 어쩔 수 없는 부채와 송구스러움이란 꼬리표를 단 청춘들의 심정. 그리고 그들의 무게를 대신 지고 있는 노년의 입장을 들여다봤다.

# 9급 행정공무원을 준비하는 한모씨(29)는 노량진 학원을 다니는 대신 집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선택했다. 학원과 가까운 고시원에서 생활하려면 최소 한 달에 50~70만 원 정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달 용돈은 30만 원 안팎으로 받고 있지만 그 안에서 식비와 책값까지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강의료는 종합반이 35만 원, 그 중 개별적인 공부가 더 필요한 강의 중 단과를 끊고 나니 15만 원 정도로 약 1년여간 수업을 듣는다고 할 경우, 강의료만 600만 원에 육박한다. 또 책값과 독서실 비용 등까지 포함하면 한 해 약 천 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부모님에게 지원받고 있다. 그는 “이번 해가 처음이라 한 번에 붙고 싶지만 주변 준비생들의 상황으로 봤을 때 더 재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래를 위해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지만 1년 더 준비를 한다고 할 때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하루 빨리 부모님께 부담을 덜 드리기 위해서라도 한 번에 붙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자녀들이 부모 부양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에게서 독립하거나 자립하지 못하고 의존해 사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이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에 따라 이들을 부르는 신조어들도 다양하다.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직을 하지 못했거나 월급이 적어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들을 일컫는 캥거루족, 독립해서 부모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의존해 살고 있는 자녀들은 연어족, 지붕 위를 맴도는 헬리콥터처럼 부모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자녀들이란 뜻의 헬리콥터족 등 청춘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해졌다.
이 신조어들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부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의 자조적 실상이 담겼다.
대학생부터 취업 준비생, 사회 초년생까지 사회에 첫발을 내딛거나 또는 내딛고 나서도 부모의 경제적 도움에 의지하게 돼 버린 것이다. 이 현상은 이제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녀 취업 준비에도
부모 허리 휜다
매번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취업 실태를 보며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바람으로 공무원 취업이 고시에 합격하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경쟁률은 400:1을 기록하고 있다. 뽑는 공무원 수는 정해져 있는데 한 해 시험을 보는 응시자들은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만 약 5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고 있을까?
1년째 취업준비생인 조모씨(27)는 두 달 전 부산에서 면접을 보며 약 30만 원의 비용을 썼다. 그는 “정장비용만으로 60만 원은 제외하더라도 부산으로 오가는 차비, 하루 숙박비, 식비로 약 30만 원이 훌쩍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3주 후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이제는 취업을 못하는 것보다 면접 비용까지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 취업을 준비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사실” 이라며 “어쩔 수 없이 경제력 있는 부모님께 기대게 된다”고 토로했다.
은퇴 후에도
쉬지 못하는 부모들
3일 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이 31.3%로, 34개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36.2%) 다음으로 최상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수치는 OECD 평균(13.4%)의 2.3배에 달했다. 올해 초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거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27.0%)은 일하는 중이었고 월평균 임금은 147만 원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노인들이 하는 아르바이트를 지칭하는 ‘노로바이트’ 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18만 1000명 늘었다. 고용률도 38.4%로 2002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였다. 그럼에도 60대 이상 노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69만2223원으로 지난해보다 3.8% 감소했다. 60세 이상 가구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8년 만에 처음이다. 또 취업준비생의 90%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통계청 관계자는 “60대 이상의 가장 가구의 소득을 보면 가구주와 배우자의 소득은 늘었지만 기타 가구원의 소득이 줄었다”며 “주로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들의 취업이 전년보다 더 안 돼 전체 평균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20대 취업자 수는 4만3000명이 줄었고 고용률도 56.8%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60대 가구 소득 감소,
취업 못한 자식 탓?
노년층 취업이 증가하고 연급 수급자도 확대됐지만 60대 가구 소득이 감소한 이 통계 결과는 취업할 나이의 자녀들이 부모세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청년 취업난에 실업 또는 불안정한 취업 상태 자녀들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취업난으로 캥거루족이 늘어나면서 60대 이상 부모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 잠실에 거주하는 정모씨(57)는 “27살, 29살, 32살 세 자녀가 있다. 32살 첫 째는 결혼을 했는데 옆 동에 산다. 아이를 낳으면 우리 지원을 받고 싶어서라고 한다.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실정이라 노후 자금을 모았어야 하는데 아직 아이들 학자금 대출도 다 갚지 못한 상태”라며 이제는 취업준비생인 두 자녀에게는 웬만한 직장이면 들어가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 보고서에서 “60세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상환부담은 주요국 중 가장 심각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유일하게 60대 이상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다른 연령층보다 높은 국가”라며 “40대 중반부터 부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7~9년 늦은 50대 이후 부채를 줄인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의 40대 및 부모세대가 자신보다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교육비, 결혼 비용 등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아 빚을 갚을 여력이 적은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가속적인 고령화 시대에 청년들의 낮은 취업률이 장기적으로 노년층을 함께 무너뜨리지는 않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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