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활짝’ 수영장, 차 안, 어린이대공원까지 활보
노출은 중독되는 병, 훈방보다 치료해야
경범죄 처벌, 바바리맨 성범죄 부추긴다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최근 수영장이나 어린이대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노출을 일삼는 신(新)바바리맨·우먼이 출몰한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다. ‘바바리맨’이 대낮에도 공공장소에 활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여주기만’하는 바바리맨의 노출 행위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그 처벌 강도가 경범죄로 치부돼 벌금형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솜방망이 처벌에 근절 효과가 미미할뿐더러 더 큰 범죄로 키우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골목길이나 으슥한 곳이 아닌 공중 공간에서, 어두운 밤이 아닌 대낮에도 성적 일탈(노출증) 행위를 드러내는 일명 ‘바바리맨’이 활개하고 있다.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찾는 어린이대공원에서 벗는(?) 40대 바바리맨부터 자신의 차 안에서 알몸으로 운전을 한 60대 바바리맨, 대낮에 여성 옷을 입고 주택가에서 음란 행위를 한 공무원까지 직종·연령에 상관없이 노출증 환자들의 행동이 과감해지고 있다.
5월 18일 오전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던 여중생 A양 앞에 머리가 희끗한 ‘40대 바바리맨’이 나타났다. A양이 친구들과 정문 음악분수대 주변 숲을 산책하고 있던 중 갑자기 나타난 바바리맨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했다. 이 간 큰 40대 ‘바바리맨’이 나타난 어린이대공원은 서울 도심의 대표적 나들이 장소로 하루 평균 2만 2000여 명의 시민들이 방문한다. 이날 역시도 어린이대공원은 소풍을 나온 어린이들과 학생들로 붐볐다.
벌건 대낮에 대공원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여론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출 행위에는 공직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4일에는 대낮에 주택가에서 여성 옷을 입고 음란행위를 한 공무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오전 11시경 영주시청 6급 공무원인 B씨(56)는 여성 원피스를 입고 상주시 냉림동의 한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여성에게 특정부위를 노출하는 등 음란행위를 한 혐의(공연음란)로 불구속 입건됐다. B씨는 6년 전에도 충북 단양에서 목욕가운을 입고 ‘바바리맨’ 행위를 하다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SNS가 발달하자 온라인 노출증도 생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인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 등에 특정 부위를 노출하는 사진이 올라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잦은 노출을 하는 이들을 ‘SNS 바바리맨’이라고 칭하고 있다. ‘야노(‘야외노출’의 줄임말)의 추억’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트위터 이용자는 2013년도 5월 17일부터 야외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한 사진 14장을 약 두달간 게시했다. 그는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강한 스릴을 느낀다’는 소감을 적기도 했다.
2013년 서울지방경찰청은 SNS에 신체 일부를 노출한 사진이나 음란 사진을 올린 미성년자를 붙잡았는데 당시 SNS에 나체 사진을 올린 C(10)양은 “관심을 받고 싶었다”며 음란 사진을 올린 이유를 말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들에게 “노출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며 “보고 싶지 않을 권리도 있다. 억지로 봐야만 하는 것도 일종의 성희롱이다”라며 비판했다.
바바리맨은 단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일 뿐일까? 명백한 성범죄이지만 “‘보여주기만’ 하는데 뭐 어때”라는 인식과 바바리맨이 나약하고 소심한 남자라는 편견 때문에 가볍게 다뤄지고 있어 이들의 위험성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바지 벗는 남자들,
왜 증가하나 했더니
지난 3년간 솜방망이 처벌 탓에 바바리맨의 과다 노출 근절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경범죄처벌 중 ‘과다노출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총 741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관련 처벌은 곧바로 재판에 넘겨지기보단 약 5만 원의 가벼운 범칙금 부과가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과다노출 행위자는 시민의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즉결심판에 회부하거나 과태료를 늘리는 등 처벌 수위를 높여 범죄를 근절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바리맨에 대한 가벼운 인식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피해 없는 것 아니냐는 편견. 그리고 벌금형만으로 다시 사회로 내보내는 악순환에 바바리맨은 무서운 성폭행범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2011년도에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바바리맨의 위험한 진화’에 대해 다룬 바 있다. 당시 방송에서는 실제 번듯한 직장인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바바리맨을 직접 인터뷰하며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희화된 바바리맨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이들의 범죄는 사회생활과 철저히 분리된 이중생활이었기 때문에 범죄로 진화한 후에야 그 문제점이 부각됐다.
그럼에도 과다 노출 행위는 신체접촉이 없다는 이유로 그 처벌강도가 경범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성범죄자로 처벌받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바바리맨에게 적용되는 조항은 공연음란죄(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강제추행죄(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는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억압을 가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을 때 적용되기 때문에 형량이 훨씬 높다.
성폭력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신 씨는 “과다 노출 행위가 사회 풍속을 해친 경범죄로 볼 것인지 실질적 피해를 안긴 성범죄자로 볼 것인지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큰 충격을 받았다는 피해자들이 많지만 상당수가 그저 경범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출증 환자를 근절할
대책은?
‘노출증’은 성적 욕구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해 자신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정신장애 가운데 하나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상담을 거친 뒤 인지행동 치료나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입을 모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적으로 과거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없는 경우,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경우 등이 노출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심해지면 강한 성도착증으로 갈 수 있는 성적 장애”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노출증은 그냥 두면 중독으로 향하는 ‘질병’이라 이들을 적절히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로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선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정신적인 문제로 보면 법적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처벌이 아닌 다른 방식의 조치가 없어 중독을 방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훈방조치 되는 ‘초범’이 오히려 ‘치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처벌을 해서 바뀐다면 오히려 정상인”이라며 “6개월 이상 노출을 지속한 사람은 이미 성충동 장애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벌금을 낸다고 해도 행동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심리적·정신적 복지에는 상당히 소홀하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상담하고 치료해주는 시설을 마련하는 게 궁극적인 처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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