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미세먼지 기준으로 뭇매 맞은 사연

오락가락 환경부…고등어 가격 폭락, 업계 타격 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연일 ‘미세먼지’로 대한민국 전역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오락가락한 환경부의 발표로 애꿎은 어민들이 불똥을 맞아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가 실내에서 고등어 구울 때 발생하는 미세먼지 농도가 실외 미세먼지 나쁜 날의 25배 수준이라고 발표해 마치 고등어가 미세먼지 주범인 양 몰려 버린 것이다. 환경부는 환기의 중요성을 의도한 것이고 ‘오해가 있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미세먼지 주범으로 찍혀버린 고등어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자 수산업계는 환경부의 ‘뒷북 행정’을 비난하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환경부는 실내 미세먼지를 조사한 결과 집에서 문과 창문을 닫고 주방에서 고등어를 구우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미세먼지 주의보 기준(매우 나쁨)인 90㎍/㎥의 25배를 훌쩍 뛰어넘는 2290㎍/㎥의 미세먼지가 나온다고 발표했다.
실내에서 조리할 때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곳곳에서 논란이 빗발쳤다. 실험 결과가 실내 면적, 조리시간, 조리의 정도, 조리량, 사용연료 등 많은 변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조사라는 것이다. 실제 고등어구이에 의한 초미세먼지 농도 결과는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실험주택 2곳의 주방에서 조사됐다.
또한 미세먼지가 극심한 시기에 행한 환경부의 발표는 ‘미세먼지 주범=고등어’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충분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고등어 논란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고등어구이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나온다는 자료를 민감한 시점에 낸 게 판단착오였다”고 말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때는 1년에 한 차례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고등어잡이를 금지하는 고등어 금어기(禁漁期·4월 20일∼5월 25일) 해제를 코앞에 둔 시기였다. 어민들이 고등어 잡으러 바다에 나가는 시점에 환경부 발표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환경부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애꿎은 ‘고등어구이'를 지목하면서 수산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등어를 어획하는 국내 최대 협동조합인 대형선망수협의 한 관계자는 “휴어기를 끝내고 고등어잡이 배들이 한창 출항하고 있는 시기인데 환경부가 고등어를 미세먼지 주범으로 만들어놨다”며 “고등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만 3000명이 넘는데 이번 발표는 이 사람들의 밥줄을 끊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민들의 거세게 반발하자 환경부는 지난 6일 “언론뿐만 아니라 국민이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원인’이라고 오해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는 당초 발표 의도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당시 자료는 건강한 실내 공기질 관리를 위해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내에서 요리할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인한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미세먼지 발생 저감·환기 방법 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취지였다고 밝혔다.
‘주범’ 누명은 벗었으나
환경부가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로 보인다. 환경부 발표 이후 고등어의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지 부산공동어시장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많이 사는 중자 크기의 고등어 경매낙찰가가 지난달 26일 1㎏에 8889원에서 31일 6644원, 6일에는 4652원까지 떨어졌다.
한 수산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를 참을 수 없다. 발표 이후 소비 심리가 위축돼 고등어 경매가 하락을 초래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지역의 수산업계 종사자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종합어시장에서 20년째 생선을 팔고 있는 상인 최양순(75)씨는 “정부 발표로 손님이 절반가량 줄었다”며 “뒤늦게 ‘고등어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아니다’라고 발표해도 손님들은 못 믿어 많이 안 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상인 김철영(45)씨도 “오징어 등 다른 어종은 잘 팔리지만 고등어는 잘 안 팔린다”며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성급하게 발표해 수산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며 정부의 탁상행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소비자도 고등어 구매를 꺼리는 모습이었다. 대형마트를 찾은 40대 주부 한모씨는 “저녁 반찬으로 고등어를 자주 했는데 미세먼지가 많이 난다는 소식에 구워먹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대책 내놨지만 ‘글쎄’
소비심리 위축으로 시름이 깊어진 수산업계는 이 같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 수산업계 관계자는 “환경부 발표는 당시 완전한 밀폐공간에서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요리해 먹는 것과 환경이 다르다”며 “충분히 환기를 잘 시키면서 요리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도 고등어 가격 하락으로 피해를 입을 어민 달래기에 나섰다. 해수부는 “앞으로 고등어 수급관리와 관련해 가격 동향 및 소비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캠페인을 통해 소비 촉진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고등어의 영양학적 우수성 등을 홍보하는 한편 고등어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소비 침체가 장기화될 시 고등어 비축 물량 확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민들의 성난 마음을 달래기는 부족해 보인다. 인천어시장 중도매인 김모(59)씨는 “환경부 발표로 소비자들의 인식이 고등어에서 나쁜 공기가 나와 인체에 해를 입힌다고 생각한다”며 “애초에 제대로 발표했어야지. 이제 와서 뒷북치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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