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0척 출몰…어족 자원 ‘초토화’

어민·상인 “못 살겠다”…‘특수 해역’ 단속 난항
인공어초 설치·법 개정 필요…남북 관계 개선해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우리 서해 바다에 불법 중국 어선이 날마다 들끓고 있음에도 사실상 손 놓고 있는 해경과 정부 당국 때문에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참다못한 우리 어민들이 지난 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어선 2척을 ‘직접’ 붙잡았다. 우리 해역에서 어족 자원을 쓸어가는 ‘도둑’을 경찰이 아닌 ‘집주인’이 직접 단속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서해에서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어선 수가 갈수록 늘어가는 가운데 어민들은 고사위기에 빠질 처지다.
해신호 등 우리 어민이 이끄는 어선 9척이 지난 5일 새벽 서해 NLL 500m 부근에 정박한 중국어선 2척을 직접 나포했다. 해신호(9.7톤) 김종희 선장은 우리 바다의 꽃게 씨가 마를 정도로 황폐화된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 같이 행동했다고 밝혔다.
서해5도(인천시 옹진군 관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북한과 인접한 5개의 섬) 해역에서는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10년 넘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꽃게어장이 형성되는 4~6월, 9~11월 매년 6개월간 집중적으로 나타나 꽃게·범게·조개류 등을 쓸어간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이달 들어 평균 163척의 중국어선이 NLL 해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고, 지난 9일 오전에는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어선이 316척에 달했다.
단속 어려운 이유는?
중국어선이 우리 눈앞에서 ‘도둑질’을 해감에도 단속이 어려운 것은 NLL 해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특수 해역인 서해 NLL 해역은 해양경찰 단독으로 나포작전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반드시 해군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해경 항공기·헬기 투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 단속이 어렵고 북한 해안포 사격권에 늘 노출돼 있어 제약이 많다. 해군과 해경이 무리하게 단속하다 NLL을 넘어가면 북한 측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서해 5도 주변은 NLL과 불과 1.4km~11km 떨어져 있고 단속 움직임을 포착한 중국어선은 북한 해역으로 수월하게 도망갈 수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
해경 관계자는 “서해 5도 해역에서 나포작전을 수행할 땐 북한 경비함정과 해안포의 동향을 파악한 뒤 해군과 합동작전을 해야 하는 등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며 “NLL 북측으로 쫓아내는 방법으로 우리 어족 자원을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해 ‘점령’ 당해
이 같은 NLL 특수성을 악용하는 중국 어선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해당 해역의 불법 중국 어선 일일 평균 수는 2013년 155척, 2014년 200척, 2015년 256척으로 지속적으로 늘어 서해5도가 사실상 점령당했다. 그러는 동안 꽃게 씨가 말라갔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만난 20년 꽃게잡이 박대길(63)선장은 “중국 쌍끌이 어선이 꽃게를 다 쓸어가 먹고 살기 막막하다”며 “예전에는 서해 5도 해역에 자주 갔지만 최근에는 중국 어선 때문에 잘 안 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상인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인천어시장에서 연평도 산 꽃게를 팔고 있는 김모(42)씨는 “작년보다 물량이 50% 줄었다”며 “1kg 3만5000원 팔던 것을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올라 지금은 1kg에 4만5000원에서 6만 원까지 팔고 있는데 장사가 될 턱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남북 공동어로구역 필요
해경과 정부 당국은 그동안 중국 어선 불법조업을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경은 3∼4월 대청도 등에 소형정 1척, 중형함정 1척, 특공대 방탄보트 1척 등 3척을 추가 배치해 경비력을 총 6척으로 늘렸다. 하지만 중국 어선들은 NLL 북쪽 해역으로 도망가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악용해 여전히 불법조업을 하고 있다.
인근 해역의 어민들을 위해 특별법도 제정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특수한 지리적 여건상 생산 활동에 피해를 입고 있는 서해5도 어민들을 위한 ‘서해5도 특별법’을 만들어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지만 최근까지 보상을 받은 서해 5도 어민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받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평화복지연대 이광호 사무처장은 “현재 어구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어구 파손이나 도난을 당해도 어민들이 실질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며 실제 어민들이 제대로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중국 어선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대형인공어초’를 설치하는 것도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예리한 갈고리를 장착한 시멘트·철재 인공 서식장을 해저에 투하해 놓으면 바다 바닥에 그물을 내려 어족자원을 싹쓸이하는 중국어선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현재까지 18기밖에 없는 인공 어초를 2020년까지 110기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무엇보다 불법 중국 어선을 막는 근본 대책으로 ‘남북공동조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7년 남북 정상이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것처럼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평화복지연대 강주수 상임대표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리 의지를 가진다 해도 단속지역이 남북한 간의 첨예한 군사적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단속의 방법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강 대표는 “남북의 어민들이 공동조업을 한다면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도 완화할 수 있고, 중국어선의 불법조업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당국의 공동단속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북한과의 강 대 강 대치정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가 대승적으로 북측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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