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혹한 형벌로 다스린다”…야권, 척결 나서
곪을 대로 곪은 환부…뿌리 뽑힐지는 의문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비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마다 연쇄적으로 불거지는 부정과 부패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사회 지도층부터 공직 실무자, 말단 사원까지 잘 짜인 각본처럼 이뤄지는 비리 행위에는 감탄사(?)까지 나온다. 혹자는 이를 인체에 비유해, ‘머리부터 심장, 말초신경까지 썩어 있다’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을 불치병 환자로 놔두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신약을 개발하고 적절한 요법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본인의 치료의지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일요서울]이 대한민국 비리 현주소를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그 첫 번째는 ‘방산비리’다.
야권이 잇달아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팔을 걷었다. 더민주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정책위 1호 법안으로 방산비리를 이적죄로 처벌하는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리를 저지른 현역 군인이나 민간인, 업체 등을 이적죄로 처벌하기 위해 군형법과 형법 등을 개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변 정책위의장은 이에 대해 “최근 문제가 발생한 방탄 안 되는 방탄조끼 등은 전시 상황에선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방산비리 문제를 전시 상황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이적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군용물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자가 뇌물 등의 비리를 저지른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군용물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이는 일반 이적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보다 더 중형이다. ‘7년 이상’의 징역형은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아울러 방산비리를 저지른 방위사업체와 관련, 현행법은 방산업체가 취한 부당이득과 약간의 가산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개정안은 ‘방산비리업체에 대해 부당이득금액’과 ‘그 부당이득금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에 상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국민의당 역시 군 납품비리, 방산비리 등에 대해서 더 강력한 제도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비리와 관련된 재산상의 이익에 대해서는 가혹할 만큼 추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를 좀먹는 것의 최대 적은 방산비리·군납비리로 못 박았다.
60년 이상 지속된 비위행위
야권 정당들이 이런 강력한 ‘처방전’을 들고 나온 배경에는 그간 고질적 병폐로 자리매김한 방산비리가 군 내·외부의 자정작용이나 제도 마련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군이 폐쇄적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비리도 상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가운데 최근 드러난 ‘침낭 비리’는 납품을 둘러싼 비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두 방산업체가 국방부를 상대로 부적절한 청탁을 벌인 사실이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군은 후발업체인 B사의 청탁을 받고 1000억 원 규모의 새 침낭을 도입하기로 했다가, 기존 업체인 A사가 청탁을 하자 허위사실까지 동원해 이를 다시 백지화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장병들에게 돌아갔다. 군 장병들은 아직까지 30년 전에 개발된 낮은 성능의 구형 침낭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방산비리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방부 고위 장교들이 군수물자를 빼돌려 10만 명의 국군이 굶어죽은 ‘국민방위군 사건’이 있었다.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 부사령관 윤익헌 등 관련자 5명이 사형되는 국군 역사상 최악의 방산비리 사건으로 꼽힌다.
이후 60여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한 건 없다. 올 초에는 군이 ‘철갑탄’ 방호용 방탄복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보통탄’ 방호 수준의 방탄복을 납품받은 게 드러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해군의 최신예 잠수함 3척을 건조한 현대중공업에 유리하도록 인수시운전을 면제해주고 부품 결함을 묵인해준 방위사업청 담당자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방위 산업 관련 비리는 크고 작은 규모로 잊을 만하면 터지는 고질병으로 분류됐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전투기부터 잠수함·함정·방탄복·전투화·고춧가루까지 일일이 세기도 어렵다. 군이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 썩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척결 위한 첫 단추
국민들의 관심은 방산비리의 ‘척결’이 가능한지 여부다. 다만 60년 이상 지속된 고질적 병폐이기 때문에 제도나 감시 강화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앞서 야권에서 강력한 처벌을 내세운 것처럼 정당들이 내놓은 개정 법안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입안한 개정안에는 방위산업 비리 근절을 위해 중요한 두 가지 조항이 담겨 있다. 무기중개상을 포함한 군수품 무역 대리업자는 군 당국에 등록하고 방위산업체와 계약한 중개수수료 금액을 방위사업청장에게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과 김 의원 등은 중개수수료 신고를 의무화하면 비리 근절을 물론 무기수입에 따른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위사업 관련 무역대리점(중개상)은 2005년 480곳에서 2015년 944곳으로 10년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다만 반대의 목소리도 없진 않다. 이들은 허위 신고해도 속수무책인 데다 과잉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중개수수료를 1억 원이라고 신고했는데 뒤로는 2억 원을 주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정미경 의원은 “중개상들이 중개수수료를 국세청에 얼마나 신고했는지 자료 조사도 안 된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안보전문가로 알려진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방산비리 척결에 대해 “다른 정부부처는 국책사업을 할 때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만, 국방부는 중기계획을 수립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전군 무기체계 100일 전수조사, 무기 소요 결정·획득 시스템 개혁 등을 위한 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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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