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20대 국회가 출발부터 삐걱대며 시끄러운 가운데 정치권 예상대로라면 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을 인물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는 국민의당 내 ‘이념적 스펙트럼’ 중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고 알려진 정동영 당선인이다.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명실상부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확실한 존재감으로 부각됐지만 4·13 총선 이후 당을 시끄럽게 했던 각종 당직 인선과 관련한 논란으로부터도 한 발 비켜서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처럼 계속 지역에만 머물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전국적 인지도를 감안하면 보다 큰 꿈을 향해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다.

-‘떴다방 정치인’ 이미지 벗어나야…
-‘황태자’의 끝없는 추락… 권토중래 할까
정 의원은 정치적 재기를 위해 몇몇 정당을 거친 끝에 국민의당서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고 20대 총선 전북 전주시병 지역구 당선인이 됐다. 당시 상대 후보였던 김성주 후보는 현역 의원이고 정동영 후보의 보좌관, 대학교 후배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후배가 의원으로 있는 데이고 세 번이나 이 선거구를 떠났으며 세 차례나 탈당했다는 사실에 비판을 보냈다. 정 당선자에 피로감과 세대교체를 막는다는 저항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개표 결과 정 당선자는 ‘정치적 동지’ 김성주 후보를 근소한 차로 이기고 정치적 몰락의 길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전주 선거는 과거의 손쉬운 선거가 아니라 절체절명, 맨바닥까지 추락해 본 선거였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극적으로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그다. 이에 정 의원 스스로 지금 당장 당권, 대권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것 자체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의도 정가에서 정 의원의 정치적 활약이 뜸한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정 의원은 최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 찍어줬더니 서울로 간다’는 소문이 돌더라. 국회의원이 되면 ‘금귀월왕(金歸月往)’할 것이다. 서울에서 주중에 일을 하고 금요일에는 반드시 전주에 돌아와 시민들과 만나고 월요일에 다시 올라갈 것이다”라고 공언 한 바 있다.
-여야 통틀어 유일한 호남출신 대권주자
그러나 그가 지금처럼 계속 지역에만 머물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실제로 정 의원이 전주와 전북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되면 전북권, 나아가 호남권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이후에는 범 야권의 인정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정 의원 입장에서는 그 시점에 당권과 대권을 고민하면 될 일이다. ‘호남 맹주'로서 전주 민심 회복에 전념하는 정 의원이 현재의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여야를 통틀어 호남 출신 대선 주자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최근 박지원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연기가 결정되기 전까지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실제 대통령직을 노린다기보다 대선 과정에서 호남 몫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 정계의 정설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 의원의 지역구 집중 행보는 호남을 당 텃밭으로 삼고 있는 국민의당에서 호남 출신 주자 이미지 각인의 포석으로 분석된다.
정 의원은 1953년생이다. 연령으로 보면 차차기 대선도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내년 초 열릴 예정인 전당대회에서 대권이 아닌 당권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 의원이 대권을 노릴 것인지 아니면 당권에 만족할 것인지 예상은 쉽지 않다. 정동영 의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갈지자 정치 행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 의원은 초선 시절부터 꽃길만 걸은 정치인이었다. 그의 꽃길이 2004년부터 가시밭길이 되면서 철새와도 같은 갈지자 정치 행보가 시작됐다.
정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 이른바 노인 폄하 발언으로 비례대표와 선대 위원장직을 사퇴했고 2006년에는 제4회 대한민국 동시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열린우리당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정 의원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대패하여 낙선했다. 제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작 을에서 출마해 재기를 노렸으나 정몽준 후부에게 패하여 연달아 정치적 불운을 겪었다. 당시 “동작에 뼈를 묻겠다”고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듬해에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전북 전주 덕진에서 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출마 과정에 빚어진 당 지도부와의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였다. 2010년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와 당권에 도전했지만 손학규 전 의원에게 패배하고 만다.
-정동영표 갈지자 행보 ‘철새 정치’ 언제까지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강남에 도전했지만 역시 패배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탈당과 복당 또 탈당이 반복됐다. 이러한 정동영의 정치적 행보에 여야를 막론하고 “철새정치인도 이만 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정 의원은 20대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국민의당에 합류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당선됐지만 당시 김성주 의원은 “배지를 달기 위해 이 당 저 당 이 지역 저 지역을 옮겨다니는 세력과 달리 자신들은 지역을 굳건히 지켜왔다. 전북을 위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며 정동영 의원의 철새정치를 꼬집어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의 대표로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소신과 진정성이다. 정동영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 초대 당권을 잡았었고, 통일부 장관을 거쳐 2007년에는 대선에도 출마한 야당의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다. 소위 ‘큰인물’이다. 그런 그가 20대 총선에서 얻은 47.72%의 득표율은 덕진구가 개별 지역구가 된 13대 총선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역설적이게도 15대 총선에서 덕진구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인 89.9%를 기록한 장본인이 정동영 의원이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좁아진 그의 정치적 입지를 대변한 셈이다. 오랜 정치적 나락에서 구사일생한 정 의원이다. 대권이냐 당권이냐를 논하기 전에 탈당과 복당이 반복되고 여기저기 선거구를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 '떴다방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씻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정 의원이 권토중래하여 과거 대권주자 급의 영향력을 회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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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