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정계 은퇴’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고문의 몸값이 천정부지다. 4.13총선 이후 ‘새판짜기’를 내세워 정계복귀 신호탄을 쏜 탓이다. 또한 ‘기름장어’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대권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대권경쟁을 조기과열시킨 것도 한몫하고 있다. 당장 몸이 달아오른 쪽은 국민의당이다.
안철수, 박지원 등 당내 수뇌부가 손 전 고문의 영입을 위해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제4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새누리당에서도 ‘손학규 영입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민주당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계복귀’를 앞둔 손 전 고문의 선택지에 따라 정치권은 격랑 속으로 빠질 전망이다.

-여야 정계개편 ‘핵’이냐 ‘또 불쏘시개’냐 기로
-독자신당,제4신당 참여 물 건너가나
2014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하면서 2년간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손 전 고문. 하지만 총선 이후 ‘새판짜기 발언’부터 4.19 및 5.18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19일에는 일본에서 특강, 24일에는 부부동반 전남 곡성 나들이를 갖는 등 부쩍 외부활동이 많아졌다. 급기야 지난 6월3일에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50분간 단둘이 ‘목포 회동’을 갖는 등 정치인과 만남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여야는 손 전 고문의 일련의 행보를 보며 정계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세력과 손을 잡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손 전 고문은 박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당으로 들어와 함께 하자’는 제안에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비박근혜·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제3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사단과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손 전 고문의 선택지 중 하나는 사라진 셈이다. 그동안 손 전 고문의 선택지로 더불어민주당 잔류, 탈당 후 국민의당 행, 그리고 새누리당 탈당파 세력에 동참할 것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김종인 전 대표와 당내 친손학규 인사 20여명과 함께 독자신당 창당설도 여의도에 돌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손 전 고문의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안철수 대표가 있는 국민의당행이 가장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경기도지사 시절 정부무지사를 지낸 최측근 인사 김성식 의원이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에 패배한 이후 안철수 캠프에 대거 손학규 사람들을 보낸 바 있다. 안 대표 역시 손 전 고문을 두고 ‘정치 변화를 이끌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호남에서 안 대표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반문재인 반노무현’정서에 기댄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점도 손 전 고문의 국민의당행을 부추기고 있다. 이미 손 전 고문은 전남 강진에 칩거할 당시 ‘호남없이 대권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내려간 것으로 ‘정계복귀’를 위한 의도적인 ‘호남 칩거’라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야권 통합을 주장하는 권노갑-박지원 등 구민주계와 손을 잡을 경우 손 전 고문으로서는 경선에서도 안 대표와 해볼만하다는 계산도 할 수 있다.
만약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으로 갈 경우 정치권은 한바탕 요동칠 공산이 높다. 당장 더민주당에서는 비주류 인사들의 동반 탈당의 가능성이 높다. 손 전 고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20여명의 의원중 10여명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함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형준 전 의원 등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비박·친이계 인사들 역시 국민의당으로 올 수 있다.
-국민의당 행 여야 정치권 ‘빅뱅’온다
이미 안철수 대표는 언론을 통해 국민의당은 ‘플랫폼 정당’이라며 “보수와 진보·중도가 함께 경쟁하고 영남·호남·수도권 후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정당”이라면서 외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으로 갈 경우 정치권 ‘빅뱅’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손 전 고문의 고민은 당내 주류 세력이 밀고 있는 ‘안철수 대세론’을 넘을지 여부다. 자칫 과거 대선처럼 ‘불쏘시개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 트라우마처럼 손 전 고문에게 남아 있다. 이는 손 전 고문이 더민주당에 잔류해 문재인 전 대표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는 반 총장과 더불어 차기 대권 선호도 조사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특히 당내 친노·친문 세력이 확실한 주류라는 점에서 경선 통과가 국민의당보다 쉽지 않다.
김종인 대표가 추진하고 있는 ‘친노 물갈이’가 성공해 비주류로 전락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바로 ‘문재인 대안’으로 떠오른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안 지사는 친노 인사로 구분되지만 문 전 대표와 결이 다르다.
노 전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 지사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후보에게 패한 이후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입니다”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나이도 50대 초반으로 동년배 잠룡군 중 선봉에 서 있다. 최근 대권 행보를 보면 ‘구원투수’에서 ‘선발투수’로 입장 변화 도 나타낼 정도로 강한 자신감에 차 있다. 손 전 고문이 더민주당에 남아 있기가 쉽지 않은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에서도 손 전 고문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17, 18, 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서 당선된 김기현 시장이 러브콜을 보냈다.
김 시장은 6월8일 국비 확보를 위해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출입기자들의 차기 대권관련 질문에 “20대총선 결과 새누리당 내 유력 잠룡들이 고갈상황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다간 자짓 정권을 (야권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팽배해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한 뒤 “이럴땐 ‘손학규’같은 사람을 새누리당에 입당시켜 다른 대선후보들과 경쟁을 펼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손 전 경기지사는 사실상 ‘새누리당 사람’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더민주는 이미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가도의 유력주자로 올라있고, 국민의당은 이미 안철수 대표가 잠룡의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손 전 지사는 야당에 안착할 곳이 없다고 본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으로 입당하게 되면 보수진영의 세력 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3선 김기현, “손학규 반기문과 경선하라”
또 김 시장은 최근 방한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선 “그분(반기문 총장)은 국내외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 여권의 대선 후보군에도 좋은 일”이라면서 “하지만 대선후보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친박+손학규+반기문 연대 카드’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조차 손 전 고문이 안 대표와 마찬가지로 호남을 주 지지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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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