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 은성 PSD 비정규직 직원 김모(만 19세)씨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가 발생한 9-4 승강장(강변역 방향)에는 김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화와 포스트잇 등이 빽빽이 붙어있다. 일부에서는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돈이 사람을 죽였다’, ‘용역이 대신 죽는 헬조선’이라는 거친 말까지 내뱉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1~4호선 스크린도어는 서울메트로에서 최저가 입찰로 선정한 용역 업체(은성PSD·유진메트로컴)에서 관리·유지를 맡고 있다. 문제는 최저가로 외주를 받은 탓에 낮은 임금과 인력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무리한 작업량 때문에 매뉴얼을 지킬 수 있는 여건도 못 됐다. 지난 2013년 2인1조 작업 등의 안전 매뉴얼이 확립됐지만 강남역, 구의역 사고 당시 모두 홀로 출동했다.
인력 부족에 ‘나홀로 출장’
서울메트로 노조 안전위원은 “예산 책정을 낮게 하다 보니 최고 경비 절감 업체가 일을 맡게 되고 부실공사로 인한 문제가 잦았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적으로 2인1조의 매뉴얼을 지키기에 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메트로와 보수·유지 업체 간의 과업지시서가 발견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2015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과업지시서에는 “스크린도어가 고장 나면 신고 접수 후 한 시간 안에 출동해 즉시 처리해야 한다”,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이 명시돼 있었다.
인력부족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수리를 해야 하는 게 서울메트로 계약규정으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연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1인 작업을 하다가 김 씨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번 사고를 유발한 다른 이유로는 사고 당시 이상을 발견한 기관사의 신고가 관제실에만 통보되고 역무원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전달 체계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5~8호선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맡고 있는데, 서울메트로와 달리 직접 관리를 전담하고 있으며 기술과 부품 또한 표준화돼 있다.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의 경우 서울메트로가 1만2000여 건(2014년 기준)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2600여 건보다 약 5배를 차지한다. 특히 5~8호선은 스크린도어가 열려 있는 경우, 열차가 아예 진입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서울메트로는 오는 8월 스크린도어의 사고율을 줄이기 위해 유지보수를 맡을 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리체계의 안정화와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가 또다른 인명피해를 만들고 있다”면서 “더 이상 이런 인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문 유지·관리 외주화
한편 서울메트로 등이 외주사와의 계약에서 사실상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조항을 넣어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성PSD는 구의역, 유진메트로컴은 지난해 강남역에서 작업 중 숨진 정비원이 소속된 용역업체다.
서울시의회 등에 따르면 은성PSD는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역 대부분인 97곳을 143명이 관리한다. 유진메트로컴은 서울역·시청·강남·잠실·사당 등 유동인구가 많은 24곳을 34명(2013년 기준)이 맡는다.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간의 계약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업지시서 14조 2항에는 “모든 사고 및 고장의 원인 규명은 은성PSD가 해야 한다”, 같은 조 4항에는 “은성PSD는 용역을 수행하면서 그 직원 또는 점검보수요원이 입은 일체의 상해 등에 대한 일체의 민, 형사상의 책임을 단독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메트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를 외주화할 뿐 아니라 관리·감독은 물론 사후 피해 보상까지 떠넘기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동일한 유형의 사망사고가 났다면 이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엄격한 조사를 통해 부실시공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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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