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잉니!’ 중국인 위한 명동 ‘한국인은 찬밥 신세’ 왜?
‘환잉니!’ 중국인 위한 명동 ‘한국인은 찬밥 신세’ 왜?
  • 변지영 기자
  • 입력 2016-06-03 20:50
  • 승인 2016.06.03 20:50
  • 호수 1153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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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쇼핑타운 점령한 요우커, 한국 손님은 불청객

중국어 간판 즐비, 한국어 응대 못하는 중국 직원들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다양한 먹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명동. 서울 중심에 쇼핑몰과 시내 면세점 등이 있는 명동은 쇼핑하기 좋은 곳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명동이 예전만 못하단 이야기가 돌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던 명동 상인들이 이젠 아예 중국인들만을 위한 서비스로 돌아서 한국 손님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국인 직원을 우대 고용하는 추세에 밀려 한국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대학원생 김민정씨(27)는 최근 명동에 화장품을 사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평소 애용하던 B사 화장품 매장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할인 대상에서 제외당한 것이다.
 
매장 입구에 중국어로 된 입간판에는 한국어 설명이 따로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외국인 전용 행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입간판을 찍어 보내주자 친구가 해석한 내용을 보내줬다. 외국인이 관광비자 여권을 보여주면, 유명 CC크림 3개 구매 시 1개를 무료로 증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자국에서 자국민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볼 수 없어 어처구니 없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날 김씨는 수분 크림과 CC크림 등을 구매해 13만 원 상당의 물건을 샀지만 기본 샘플만 몇 개 받았다. 그러나 외국인 전용 행사에서는 ‘12만 원 이상 구매시 팩 5개를 추가 증정하고 있었다. 김씨는 외국인 전용 행사라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요우커들이 한 번에 물건을 많이 사간다고 해도 차별대우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전용 행사에
홀대받는 한국 손님
 
61일 명동을 찾았다. 4호선 지하철에서 명동역 6번 출구로 나가기 전, 지하철 내 가득 중국어로 적힌 광고문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어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장에 들어설 때마다 환잉니! 환잉광린!’ 이란 중국어 인사가 먼저 들렸다.
 
이날 명동 T사 화장품 가게에서는 거의 모든 종업원이 어눌한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정 신상품에 대한 질문을 해도 앞에 적혀 있는 설명만 읽을 뿐이었다. 고객 응대라기보다 형식적인 대답이었다. 이 매장에서 화장품을 구매한 강모씨(21)한국인들은 사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중국어만 가능한 직원들을 고용해서 불편했다같은 값이면 이젠 명동에서 화장품을 사지 않고 싶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속옷 브랜드 E사도 매장 입구에 특별히 중국관광객 10%할인이라는 입간판을 세워뒀다.
 
슈즈 라이프 스타일숍인 F 매장에서는 중국어로 위챗’(WeChat : 중국 모바일 메신저)을 스마트폰에 추가할 경우, 10만 원 이상 구매 시 1만 원의 할인을 해준다는 광고를 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한국인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느냐 묻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담당자에게 문의해보겠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돌아와 한국인도 할 수는 있다고 이야기했다.
 
중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L사 화장품 매장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에게 10만 원 이하 현금결제 20% 할인이라는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을 대동한 기자가 한국인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느냐 묻자 관광객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중국어를 읽을 줄 아는 한국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적용시켜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A 잡화 매장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이광운(27)씨는 하루 방문객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 손님이다라며 일본이나 태국 손님들도 오는데 중국 관광객은 그 중에서도 대행구매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물건을 많이 사간다. 그래서 직원들이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더욱 친절히 응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사동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황모씨(34)저번 달에 인사동 화장품 가게를 갔는데 점원이 거의 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인건비도 싸고 대량으로 물건을 사가는 중국인들 응대로 매출은 팍팍 늘 수 있으니 점주 입장에서는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보다 시급 많은
중국인 직원
 
실제로 한국인 점원보다 중국인 점원의 인건비가 저렴할까? 중국인 유학생 유요씨(26)는 스포츠 브랜드 L 명동점에서 3개월째 근무 중이다. ‘중국어 능통자를 원한다는 매장 앞 광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어 능통자라고 하지만 현지 수준의 중국어 능력을 원하기 때문에 매장에서는 거의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고용하는 편이다.
 
기자가 시급에 대해 물어보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조선족이나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이 한국인 아르바이트생보다 더 많은 시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이나 조선족은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고 한국인은 직원으로 고용하거나 팀장이나 점장 직책이 많다중국인이 9시간에 6만 원 정도를 버는데 비해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은 11시간을 근무하고 7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타 매장에서는 월급과 시급에 대해 쉬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적어도 기존 한국 아르바이트생들과 동급(?)이거나 조금 더 많이 받는다는 대답이 많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명동 상인들 사이에서 중국어는 곧 생존을 의미했다. 종로의 S중국어 학원에서는 2년 전부터 명동 상인들의 판매 직종별 1:1 중국어 회화 강좌를 개설해 진행 중이다. 교육사업부 이샛별씨는 “2년 전에는 면세점이나 동대문 상인들이 강좌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최근은 주춤하다. 사내 교육을 하거나 중국인이나 조선족으로 직원들이 전환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과거에 비해 교육채널이 다양해지고 안정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위주로 하는 서비스와 이벤트들은 내국인으로 하여금 명동을 떠나게 하고 있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4호선 명동역 이용객은 2011(109409)에 비해2015(83357)으로 23% 감소했다. 이 통계는 내국인 유동인구가 줄었음을 시사한다.
 
명동 떠나는 내국인들
 
명동 모 잡화 매장에서 근무하는 정모씨(32)정작 서울 사람들은 안 먹는 것이 명동 길거리 음식이다. 역 하나만 지나면 2~3배 뛰기도 한다. 계란빵은 회현에선 500원도 하는데 명동에선 2000원에 판다며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이날 명동에서 쇼핑 중이던 이모씨(27)한국의 특성을 살린 음식은 하나도 없지 않느냐크레페나 문꼬치도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먹는 음식인데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소개하지 않는 것 같다. 길거리 음식이란 건 그 나라 특색이 있어야 하지 않나. 노점상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닭꼬치를 파는 상인은 노점은 아이템이 확실하면 해볼 만하다우리 주고객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다라고 말했다.
 
이동희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내국인이 외면하는 관광지에 외국인이 찾아오겠느냐. 장기적으로 명동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라며 내국인이 다시 올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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