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우리 아이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정치인들 온다고 추모 현장을 쇼장처럼 만들어 놨다”, “추모는 우리(시민들)가 할 테니 당신들(정치인)은 당신들 할 일이나 해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숨진 김모(19)씨 어머니와 추모객들의 말이다. 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20대 국회가 막 개원하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여야 잠룡들이 경쟁하듯 추모 장소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추모 장소가 정치인들 자기 홍보 장소로 변질”
-박 시장 문책성 인사 근본적 대책 無
여아 잠룡들은 기존 정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경쟁하듯 구의역으로 달려갔다.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다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은 매번 재발방지책을 약속하지만 똑같은 구조적 문제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청년 단체들은 서울메트로에 “하청업체의 인력 증원 요구를 묵살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는 “박 시장이 서울메트로 직영체제 도입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건비 아끼겠다고 애꿎은 청년을 죽였다”, “흙수저이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노동을 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20·30대는 김 군의 일이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여야 정치인들은 매번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안전사고 장소에 여야 인사들이 줄줄이 들러 ‘민생 정당’을 표방하지만 시민들은 그들의 뻔한 속내를 읽고 있다.
[일요서울]이 구의역 추모 장소에서 직접 만난 청년 A 씨는 “연예인들 광고 찍는 것 같다. 정치인들에게는 바로 이런 추모 장소가 자기 홍보 장소인 셈 아니냐. 사망자 나이가 어릴수록, 많은 국민들이 안타깝게 느낄수록 사고에 대한 관심도는 올라가니까, 정치인 이름 석자와 얼굴을 알리는 광고 효과는 자연히 높아지는 것. 그러니 이렇게 이름 들어본 정치인들은 다 오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청년 B 씨는 “찾아오는 정치인들이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내용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그리고 공감한다면, 물론 공감할 수도 없겠지만... 정치인들은 흙수저가 아니니까... 그래도 좀 더 발전적인 사고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을까... 자기들끼리 편 갈라 싸울 시간에 이런 안전대책 법안 관련 회의를 했다면 저 청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 지난 31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방문한 직후 온라인에선 ‘당신들이 만든 법이 대체 얼마만큼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알기나 하느냐'는 글이 이어졌다. 같은 날 유족을 만나 사과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서울시 산하기관(서울메트로)에서 청년들이 죽어가는 동안 박 시장은 무얼 했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붙인 포스트잇 위엔 ‘민생 1번지라고요? 와서 뭘 한 건데요. 악어의 눈물 보이게요?'라는 쪽지가 붙었다.
서울 지하철 사건은 박 시장의 공약과 정책이 구두에 그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말로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친 셈이다. 전임 오세훈 전 시장의 사업들을 없애는 것에 더 주력했다. 이번 구의역 사고 대책으로 신용목 도시교통본부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윤준병 은평구 부구청장을 임명하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근시안적 미봉책 일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박 시장은 3일 충북 공식 방문 일정이 잡혀 있었다. 부랴부랴 사망 사고 수습을 위해 취소했지만 젊은 청년이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을 때 그는 서울을 떠날 일정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박 시장의 충북 방문은 다분히 대선을 겨냥한 행보라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구의역 사망사고 등 연이어 안타까운 인재가 발생하는 서울이다. 박 시장이 벌써부터 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 행보를 보이는 것은 시민들의 반감만 살 뿐이다.
-安-文 추모글 청년들 역효과만…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예상보다 빨리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야권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반 총장이 3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 앞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기존에 ‘투톱’ 문 전 대표와 안 대표가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선 레이스가 조기 점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남역과 구의역 추모 장소는 두 주자에게 청년 A씨의 말처럼 청년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광고 촬영 장소’인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두 주자의 행보 역시 역효과만 낳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구의역 추모 장소 방문 후 트위터에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 모른다”는 글을 남겼다가 “위험한 일은 가난한 사람들만 하라는 얘기냐, 이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우선 아니냐"며 청년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 여성 추모 장소 방문 후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글을 남긴 후 “여자로 안전하게 살 수 없으니 남자로 태어나란 얘기냐, 남녀 차별적 발언”이라고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자 해명글을 올리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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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