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 방화수류정,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을 품다”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 방화수류정,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을 품다”
  • 수도권 강의석 기자
  • 입력 2016-05-30 13:33
  • 승인 2016.05.30 13:33
  • 호수 1152
  • 5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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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수도권 강의석 기자] 화성의 방화수류정은 동북각루를 지칭한다. 동북각루가 공식 명칭이지만 역사기록에는 방화수류정이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됐으며, 이후 홍수로 인해 퇴락한 것을 1848년에 재건축했다. 일제강정기와 또 1970년대 수원성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수리됐다.

방화수류정은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전시용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히 사용해 조성된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의 특징은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정자에 앉아서도 내려다보이는 인공호수 용연이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용연에는 용이 사는 곳으로 믿었다.

용은 왕을 상징했으며, 용연은 용지대월(연못에 달빛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곳)이라 불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용연에 비친 달빛을 보며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기에 당시 가뭄이 들면 수원유수부사는 백성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용연 한가운데에는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섬들을 만들었고 정조가 좋아했던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태풍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쓰러지고 말았다.

수원천 방향으로는 돌로 용머리를 만들어 그곳으로 물길을 내어 호수에 물이 넘칠 때를 대비했다. 세월이 흘러 용연 주위가 많이 매몰됐지만, 창건 당시 방화수류정 일대의 풍광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정조는 화성행차 시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조선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대한 도시를 꿈꾸었다.

운치를 더해주는 방화수류정의 매력은 정자를 받쳐주고 있는 기둥과 벽돌, 처마와 지붕의 아름다움이다. 정자의 형태는 처마나 기둥은 ㄱ자로 꺾이면서 다시 튀어나오고, 지붕도 꺾이길 반복하며 십자가 형태로 지었다. 방화수류정의 지붕구조를 제대로 보려면 지대가 높은 동쪽 북암문에서 봐야 한다.

조선후기 건축의 백미인 이 정자에서 멀리 내려다보면, 동으로는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서로는 장안문과 팔달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과거에는 이 일대는 노송이 우거져 장관을 이루었다.

2011년 3월 3일에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1709호로 지정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방화수류정을 보지 않고는 수원을 간 적이 없다’라고 말했듯이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료제공=최진연의 답사기 수원화성, 긴 여정>
kasa59@ilyoseoul.co.kr

수도권 강의석 기자 kasa59@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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