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물밑 수사 중’
벤처기업 ‘물밑 수사 중’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05-30 09:45
  • 승인 2016.05.30 09:45
  • 호수 1152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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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로비 전수조사 시작됐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10년 전 벤처 붐으로 성장한 IT 상장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주식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넥슨-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 사건 이후 IT업계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수사 진행 중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IT벤처업계 규모가 커지면서 이곳에서 나오는 검은 돈(?)의 규모도 커진 만큼 세무당국도 예의주시 중이다.

2000년대 초·중반 만연했던 IT벤처업체들의 비상장주식 거래에 대한 전면적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사정당국 내부에서는 특정 벤처사에 대한 불법 자료를 입수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IT벤처 업체들 중 고위관료를 역임한 사람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전문지식 없이 명함만 들고 외부에서 이른바 ‘영업 인사’만 하는 벤처업체를 겨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특혜’ 의혹이 시민단체의 고발로 수사가 불가피해지면서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달 12일 진 검사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처벌해달라며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는 “진 검사장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근무한 뒤 넥슨 비상장주식을 취득했다”며 “이는 포괄적 수뢰에 해당한다”고 고발장을 통해 밝혔다.

알짜 주식 그냥 주겠나

진 검사장은 평검사 시절인 2005년 넥슨 비상장 주식을 산 뒤 지난해 전량 팔아 12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현재 검찰은 진 검사장과 김정주 대표와의 관계 등이 드러나면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벤처 업계에선 한때 고위 공무원 등 유력 인사에게 주식을 뇌물로 주는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일부 벤처 기업에서는 검은 거래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도 2003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비상장 주식 5000만 원가량을 뇌물로 받았다가 구속된 바 있다. 당시 정보통신부 공무원들 역시 사업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벤처기업들로부터 비상장 주식을 헐값에 넘겨받았다가 적발됐다.

현금보다 강력한 뇌물…편의 봐주는 대가용
잠재적 수사대상 우려로 투자 기피 현상 감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수사한 ‘방송국 PD 비리 사건’ 당시에도 연예기획사인 팬텀엔터테인먼트가 해당 PD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로 적발됐는데 이 때 이용된 수단도 우회상장 직전에 있던 팬텀의 비상장 주식이었다. 당시 팬텀 주식 수만 주를 넘겨받은 PD들은 팬텀이 우회상장한 이후 많은 시세 차익을 올렸다.
IT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벤처기업 특성상 초창기 투자나 지분 관계를 정리하지 못해 잠복하고 있던 문제가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A 대표는 “벤처 입장에서는 정부 규제를 넘거나 정부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 애를 쓰고, 그 과정에서 이른 바 ‘힘 있는 사람’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당장 현금이 부족하다 보니 비상장 주식을 매개로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벤처기업 사장 B씨는 “회사 주요 명부에 판·검사나 유력 정치인의 이름이 들어 있으면 금융기관이나 규제 기관에서 대접이 달라진다”며 “그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누군들 고위 공직자나 법조인을 주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업계 전반에 고위관료의 영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며 이번 수사로 인한 파장이 상당함을 유추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00년대 전후 벤처기업 붐이 일면서 비상장 회사 주식이 주요 로비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면서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 인사를 회사의 주주로 만들어버리면 더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지원하게 돼 비상장 주식이 현금보다 뇌물 효과가 강력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벤처업계 수사와 관련해 수사당국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B사장의 말처럼 고위 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벤처회사를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수사관은 “전관예우가 변호사업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은근한 압박으로 수사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비상장 주식 거래는 개인 대 개인 거래로 이뤄지고 기업 정보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주식을 매입할 땐 파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특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비상장 주식을 둘러싼 사기 사건도 수사기관마다 쌓여 있다 보니 수사가 쉽지 않다.

벤처 투자 생태계 위축

일각에서 이번 수사는 벤처업계 생태계에 대한 검찰의 무지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검찰 수사로 가뜩이나 힘든 벤처업계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다.

‘신뢰도 하락→규제 강화→자금 철수→시장 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밀물처럼 몰렸다 썰물처럼 빠지는 자금시장의 ‘쏠림현상’이 극심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 이후 벤처업계 자금경색이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벤처기업협회·벤처캐피탈협회·여성벤처협회는 지난 11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2000년대 초반 벤처를 빙자한 투기세력에 의해 발생한 벤처게이트 여파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 벤처 생태계가 10년간 침체기를 겪은 바 있다”며 “자칫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모처럼 만에 되살아난 벤처 창업 붐이 다시 수그러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우려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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