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공방, 미술계 “관행이다” VS 법조계 “사기다”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가창력과 음악성으로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가수 조영남(72)이 대작 논란에 휩싸였다. 조영남이 무명 미술작가 송기창(60) 씨의 그림에 덧칠해 자신의 작품으로 판매한 정황이 밝혀진 것. 조영남은 검찰 조사 결과 송 씨의 그림 10여 점을 자신의 명의로 판매한 사실이 확인되자 “판매액을 환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대중들이 조영남의 그림 대작에 대해 관행이 아닌 불법행위로 보며 ‘사기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검찰이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조영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 송 씨는 고등학교 때 미술 장학생으로 뽑힐 만큼 회화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고교 졸업 후 여러 작가들의 조수 역할을 하다 뒤늦게 미국 유학을 떠났고, 현지에서 고 백남준 씨의 조수 역할도 했다.
조영남을 처음 만난 것도 유학 시절이었다.
송 씨는 귀국 후 생계를 위해 조영남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송기창 씨, “8년간 그림 대신 그려”
조영남은 그간 주로 화투(고스톱)패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화풍도 독특하고 색감이 좋아 시선을 끌며 그림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 만큼 많은 인기를 모았었다.
그러나 강원도 속초에서 활동하는 송 씨가 검찰에서 자신이 조영남의 그림 300여점을 8년간 대신 그렸다고 증언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송 씨는 “1점당 10만원 안팎의 대가를 받고 그림을 대신 그렸다”며 “화투 그림을 중심으로 작품의 90% 정도를 내가 그려주면 조영남이 나머지 10%를 덧칠한 후 사인해서 작품을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99%를 내가 그렸는데 조영남의 명의로 판매한 그림도 있다”고 폭로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한 관행”이라며 “현대예술에선 콘셉트가 중요하다. 조영남이 콘셉트의 100%를 제공했다면 대작은 큰 문제가 없다. 다만 대작에 대한 공임비가 착취 수준인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밝혔다.
조영남의 그림 가격은 엽서 한 장 크기에 50만 원, 20호 그림 기준 1000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송 씨가 받은 그림 대가 10만 원에 비하면 그림의 가격은 턱없이 높은 가격이다.
특히 미술품의 작업량과 관련해 송 씨 주장대로 1점당 10만 원을 받고 90% 이상 그려준 것이 사실이라면 연예인의 이름값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예인’ 조영남의 이름값만으로 작품 가격이 높게 책정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은 조영남에 대해 사기죄에 이어 저작권법 위반까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작품의 아이디어보다는 실제 표현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대작 작품의 저작권이 조영남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검찰은 송 씨의 대작 그림을 산 구매자들이 100% 조영남의 그림으로 알고 구매해 피해를 봤다면 사기죄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조영남에게 직접 1억 원을 지불하고 그림을 구입한 구매자가 나타났다고 A통신사가 보도한 이후 송 씨는 그의 구매 작품이 자신이 작업한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A통신사에 따르면 구매자 B씨는 조영남에게 그림 5점을 구입하며 1억 원을 직접 건넸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그려준 작품이라면 자신은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B씨는 “현재 2점은 조영남 씨의 매니저가 직접 집으로 가져다주고 나머지 3점은 나중에 받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1점당 2000만 원 꼴로 구입했는데 무명화가라는 분은 1점당 10만 원을 받고 그림을 그려줬다는 뉴스를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A통신사가 B씨의 거실과 방에 놓인 두 점의 그림을 자세하게 촬영한 뒤 송 씨를 만나 확인한 결과 한 점은 송 씨가 그린 작품이고 한 점은 아니었다.
송 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한 그림은 ‘가족여행’이란 작품. 말이 뒤에 화투짝을 실은 가마를 끌고 가는 그림이다. 하지만 배경과 일부분은 조 씨가 덧칠하거나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송씨는 “내가 그린 부분은 화투짝에 쓰여 있는 ‘광(光)’자를 보면 확연히 다르다”며 “구매자가 구입한 그림의 광자는 글씨체가 내 특유의 기법으로 쓴 글씨체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말 다리의 선이나 발목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며 “내가 그린 그림은 다리부분이 실제 말 다리의 모습에 가깝고 발목의 복사뼈까지 섬세하게 그린 반면 다른 그림은 그냥 일자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검찰은 조영남의 그림 구매자 가운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는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만약 B씨가 구매한 그림이 송 씨가 작업한 그림이 맞다면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송 씨에게 피해본 사람도 있어
한편 조영남에게뿐 아니라 송 씨에게도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N언론사는 지난 2010년 경 조영남의 화투 그림을 구입한 김모씨가 뉴스를 통해 대작 논란을 접하고는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N언론사에 따르면 대작(代作) 작가 송기창 씨도 “조영남 그림은 나중에 돈 된다”며 직접 김 씨에게 100만 원에 팔았다.
김 씨는 “2010년 무렵 서울 성수동에서 거주했던 송 씨와 한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냈고, 당시 생활이 어려웠던 송 씨를 금전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송 씨에게 생활비조로 100만 원 정도를 빌려줬었는데, 어느 날 ‘조영남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며 돈 대신 화투 그림 한 점을 건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송 씨는 ‘나중에 돈이 될 수 있으니 한 점을 더 구입하라’고 했고, 조영남의 사인과 낙관까지 찍혀 있어서 김 씨는 100만 원을 주고 추가로 한 점을 더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당시에는 송 씨가 단지 조영남 씨와 그림 작업을 같이 한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작을 한 그림이라면 결과적으로 두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셈”이라며 “어떻게든 환불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조영남은 “처음에는 자신이 다 그렸지만 작업량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몇 년 전부터 조수 몇 명을 썼다”며 “어디까지나 조수는 보조 역할이지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조수를 쓰는 건 오래된 미술계 관행이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조수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미술계 관행일까, 아니면 사기일까.
대중들과 미술계 사이엔 상당한 시각차가 있다.
대중들은 “자기의 이름을 내건 작품이라면 상식적으로 100% 작가가 직접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법조계도 “조영남이 미술계 관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구매자가 이를 사기라고 보면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미술계에선 “현대미술의 범주에서 보면 모든 게 예술로 표현이 가능한 세상이다”며 “조수 고용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미술 작가 중 조수 사용을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영상ㆍ설치 등 작업규모와 범주가 커질수록 작업은 분업화 한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미술계 내에서도 조영남의 대작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수를 활용하는데 조영남은 자기 이름값으로 작품을 팔면서 조수를 사용했다는 것.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조영남의 그림 ‘대작’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19일 CBS 의뢰를 받아 전국 19세 이상 50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조수가 그림 대부분을 그린 작품임을 밝히지 않고 전시 혹은 판매했다면 사기”라는 의견이 73.8%로 집계된 반면 “미술계의 통상적 관행이므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은 13.7%에 불과했다. 나머지 12.5%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특히 모든 연령층에서 ‘사기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특히 20대(사기 78.6% vs 관행 12.7%)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고, 이어 40대(76.5% vs 19.2%), 50대(74.9% vs 11.7%), 60대 이상(70.1% vs 12.6%), 30대(69.6% vs 11.6%)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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