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부는 ‘서열파괴’ 열풍, 어떤 모습
재계에 부는 ‘서열파괴’ 열풍, 어떤 모습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6-05-16 10:17
  • 승인 2016.05.16 10:17
  • 호수 1150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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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장’호칭 사라져 외부 미팅 때 헷갈리기도

[일요서울|이범희 기자] 재계 주요 그룹에서 조직문화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 LG 등 주요 기업들은 연공서열 위주의 직급제를 업무 중심으로 전환하고 인사평가 방식을 손질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보고 체계와 야근을 줄이는 등 조직문화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이는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꿔 다양하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관리직 연공서열 폐지, 훈풍일까?
조직·구성원 간 소통 강화 의지

올 초 재계 총수들은 ‘생존을 위한 혁신’을 강조하며 내부 구성원들 간 소통을 강화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산업 구조의 변화와 경쟁의 양상을 정확히 읽고 우리의 사업 구조 및 방식을 면밀히 파악해 근본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로에게, 그리고 시장에 솔직할 때 소통비용이 줄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된다”며 “비록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지만 반드시 정착, 확산시켜야 할 기업문화”라고 말했다. 그런 발언 때문인지 조직원들의 행동도 빨라졌다.

회사 내부 어떻게 바뀌었나

수원시대 개막에 맞춰 조직문화 쇄신을 준비해온 삼성은 최근 ‘스타트업 삼성’이라는 새 슬로건을 선보였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 그대로 신생 벤처기업처럼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조직문화를 쇄신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다.

지난해는 직원들의 창의성 향상을 위한 ‘워크스마트’의 일환인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하고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본으로 하는 ‘자율복장제도’도 실시했다. 최근에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뤄진 5단계 직급체계를 ‘사원-선임-책임-수석’의 4단계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매년 진행해온 ‘신입사원 하계수련회’도 올해부터 계열사별로 실시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기수문화가 막을 내린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내 인트라넷에서 조직문화나 인사제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설문조사도 하고 의견도 나누는 등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전 구성원이 자발적인 제안과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열린 조직문화를 만들 계획이다.

LG전자는 또 파트장, 팀장, 프로젝트 리더 등 역할 중심 체제로 직급을 전환해 임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단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의 호칭은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평가 제도도 대폭 개선된다. 기존에는 일정 비율을 정해 S, A, B, C, D등급의 상대평가를 했지만 앞으로는 S와 D를 제외한 나머지 등급은 절대평가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전체 팀원 절반에게 A를 줄 수도 있고 C만 줄 수도 있다. 개개인의 업무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고 담당자가 설명한다.

롯데그룹은 내부적으로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조직의 개선과제를 구체적으로 도출하고 이행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문화개선위는 신동빈 회장이 이행 중인 그룹 문화개선활동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 15일 출범했다.

현재 3차까지 진행된 회의에서는 내부 임직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과제로 ▲계열사 자율경영 확대 ▲보고 및 회의 최소화 ▲장기관점 평가지표 도입 ▲바람직한 리더상 재정립 ▲조직 성과의 실질적 공유 시스템 구축 ▲그룹 내 직원 관련 우수 제도·프로그램 정례적 발굴 및 공유 등의 8가지가 선정됐다.

또 외부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파트너사와 수평적 관계 강화 ▲파트너십 회복을 위한 임직원 체질 개선 ▲파트너사 소통 채널 구축 및 상호 교류의 장 마련 ▲청년일자리 창출 강화 ▲능력 중심 열린 채용 확대 등 총 9개의 개선과제가 꼽혔다.

일부기업에선 악의적(?) 조직문화도 엿보여 안타까움을 전한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이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벽쪽 사물함만 바라보게 하는 자리 배치를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경남 창원국가산단 내 유압기기 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사무직을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 신청을 거부한 A씨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어 직원들로부터 떨어진 사무실 구석 사물함을 바라보는 쪽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사측은 A씨에게 인사 대기자 준수사항 지침도 내렸다.

오전 8시 30분 출근해 오후 5시 30분 퇴근할 때까지 점심시간 1시간과 두 차례 휴식시간 30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줄곧 컴퓨터도 없는 책상에만 앉아 그냥 대기하도록 했다.

A씨는 “사규라도 읽겠다”고 했지만 사측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A씨가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대기발령 구제신청을 하는 등 문제제기를 하자 사측은 2주쯤 뒤 A씨 자리를 다시 배치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직원들과 동떨어진 사무실내 조그만 원탁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여는’(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김두현 변호사는 “사측이 일방적 해고를 하지 못하니 사직을 압박하려고 자리 배치를 바꿨다”며 “명퇴 거부로 대기발령을 내고 면벽배치 등 부당한 처우를 한 것은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앞서 모기업 두산의 또 다른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는 갓 입사한 1~2년차 직원이 포함된 구조조정을 실시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중단한 바 있다.

CEO인식 변화 주요 관건

일각에선 기업 혁신은 CEO의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주목받는다.

조직 혁신은 결국 기업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며, 기업문화는 CEO의 가치관과 사회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례로 책임과 권한이 등가의 원칙에 따라 부여되지 못하고 책임은 하부직원에게 권한은 상위직원에게만 집중된 경우 복지부동의 수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CEO, 상위관리자들 자신이다.
결국, 성공적인 조직 혁신을 위해서는 CEO, 최고리더들의 경영철학을 냉철하게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부터라고 기업인사 담당자들은 말한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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