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얼굴공개 어쩌나…경찰의 딜레마
흉악범 얼굴공개 어쩌나…경찰의 딜레마
  • 신현호 기자
  • 입력 2016-05-16 09:00
  • 승인 2016.05.16 09:00
  • 호수 1150
  • 2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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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살인범 조성호 신상 공개 후폭풍
▲ <뉴시스>

대부도 잔혹 살인범 실명 등 알려져 논란 확산
‘기준 모호’ 지적 일자 뒤늦게 “매뉴얼 만든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부도 토막살인범 조성호의 신상이 공개되자 후폭풍이 거세다. 조 씨의 과거 행적은 물론 지인과 근무하던 회사 등이 알려져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사태가 커지자 흉악범의 신상 공개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운 찬성표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실익이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공개 기준의 모호함 때문에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사태가 커지자 경찰이 부랴부랴 “매뉴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이제는 공개를 하든 안 하든 절반의 반발에 부딪히는 상황이 됐다.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조성호(30)의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5일 3시경에 열린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범행수법의 잔혹함’을 근거로 조성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 실제로 이틀 뒤인 7일 영장실질심사에 나선 조성호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조성호가 검거된 시간은 오후 1시 47분. 검거에서 신상공개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가량이었다. 앞서 조성호는 지난달 13일 오전 1시경 인천시 연수구 자택에서 동거 중이던 최모씨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 훼손하고 같은 달 26일 밤 대부도 일대 2곳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얼굴과 함께 실명도 공개했다. 일부에서 조성호의 신상이 공개되면 가족 등 관련 인물들의 정보도 유출돼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공개는 강행됐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조성호의 신상은 모조리 털리기 시작했다. 조성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범행 이후 작성한 메시지 등이 온라인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졌다. 과거 직업도 속속 드러났다. 조성호는 성인영화 배우, 란제리·비키니 모델 등을 모집하는 일을 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11일 ‘고소득 아르바이트’라며 복수의 인터넷 카페에 성인영화에 출연할 여배우를 모집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조성호는 지난 2011년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게임기획전문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중 여자친구와 함께 2013년 12월 경기 의정부에서 애견카페를 개업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후 사생활 폭로도 이어졌다. 애견카페 개업 9개월 후 여자친구가 거액을 훔쳐 달아난 사실이 알려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조성호의 페이스북 등을 방문, 지인을 알아내 신상을 공개하거나 모욕적인 댓글을 단 것으로 전해졌으며, 조성호의 여자친구를 추적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사태가 커지자 공개된 정보 외에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할 경우 강력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찬반 논란 시끌

후폭풍이 거세게 일면서 신상 정보 공개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찬성 측의 논리는 “추가범죄를 막기 위해 공개해야 한다”, “신상공개 등 강력처벌을 해야 범죄가 줄어들 수 있어 공익적이다” 등이다.

특히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이 신상 공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찬성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력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7.4%로 압도적이었다.

반면 반대 측은 “공개한다고 달라질 게 뭐냐”, “가족이나 지인은 무슨 죄냐”,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줘야 한다” 등의 논리로 맞서고 있다.

흉악범의 얼굴 공개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국민의 알권리에 충족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알권리보다는 범죄자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죄 없는 사람들마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준 모호해 혼란 가중

경찰은 범죄자에 대해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거쳐 ▲범행수단이 잔인한 경우 ▲피의자가 죄를 범한 사유나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필요로 할 때에만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수사기관에 따라 결정이 제각각이라는 문제점이 남아있다.

납치·시신훼손범 오원춘, 동거녀 살인범 박춘봉 등의 얼굴은 검거되자마자 공개됐다. 하지만 아내와 두 딸을 한꺼번에 죽인 서초구 세모녀 살해사건의 피의자 강모씨는 영장이 발부됐을 때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올 초 발생한 ‘부천 토막 살인사건’과 ‘원영이 사건’도 피의자들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개 여부를 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이 많다. 직장인 박모(34)씨는 “범행수단의 잔혹성이 기준이라면, 친자식을 죽이고 은폐까지 하려 한 부모가 조성호보다 덜 잔인한 거냐”면서 “신중하게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사건이 있을 때마다 논란이 된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범죄자와 지인의 수치심 등이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보다 크지 않다는 견해도 많았다. 대학생 최모(22)양은 “범죄자의 인권이나 국민의 알 권리도 모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범죄 재발 방지라고 생각한다”면서 “흉악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어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다만 논란이 지속된 만큼 양측의 주장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준이 제시될지는 미지수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범죄가 이뤄질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개를 하든 안 하든 반대편의 주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나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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