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업ㆍ외식업ㆍ유통업계 ‘울상’ VS 일반시민ㆍ누리꾼 ‘환영’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우리 사회의 부패를 끊겠다는 목적으로 마련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지난 9일 입법예고됐다.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3일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같은 달 27일 공포됐다. 시행령안은 8월중 확정되고 법은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김영란법안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한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 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3만 원의 상한액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제정안은 또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 원으로 정했다. 기존의 공무원 행동 강령에는 선물 비용에 대한 상한액은 없었다. 선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조사 비용은 현행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렸다. 다만 경조사비에는 경조사 목적으로 보내는 화환이 포함된다.
제정안은 외부강의에 대한 상한액도 정하고 있다. 공직자에 대해선 지난해 9월 발표한 대로 장관급은 원고료를 포함해 시간당 40만 원, 차관급은 30만 원, 4급 이상은 23만 원, 5급 이하는 12만 원이 상한액이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엔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 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 시행령이 입법예고되자 누리꾼들은 “대한민국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투명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법이 빨리 시행되기를 바란다”, “좋은 법 아니에요? 무슨 논란이 필요하냐?”, “김영란법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진짜 선진국으로 가느냐 마느냐가 걸린 법안이다. 부정부패 없애야 한다”며 시행을 재촉했다.
하지만 개정 없이 원안대로 청탁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부패한 자를 잡으라는 법이 무고한 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 문제다.
# 언론사 기자 K씨는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후 호텔 문을 나서다가 우연히 평소 친분이 두터운 취재원 P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둘은 호텔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녁이 되자 호텔 뷔페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K기자가 커피숍에서 3만 원의 커피 두 잔 값을 계산했고, 뷔페식당에선 취재원 P씨가 1인분에 9만8000원인 식사 값을 계산했다. 둘은 맛있게 식사를 즐기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 교회에 다니는 Y씨는 초등학교 5학년생 딸을 둔 엄마다. 학기 초에 학부형 간담회에 참석했던 Y씨는 딸의 여자 담임교사인 B씨가 마음씨 곱고 참해서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하며 전도했다. B씨는 거부감 없이 Y씨의 전도를 받아들이고 성경강연회에 참석하더니 마침내는 예배에도 참석해 결국 같은 교회 성도가 됐다. Y씨와 B씨는 급속히 가까워졌고 친자매처럼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 Y씨는 심심해서 B씨와 교제하기 위해 B씨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Y씨는 빈손으로 갈 수 없어 3만2000원짜리 케이크를 사갔다. 가서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딸의 학업에 대한 상담도 곁들였다.
# 서울 S구청의 구청장 여비서인 C씨는 구청장과 호형호제하며 사업에 대해 자주 의논하러 오는 그 지역 유지인 건축가 J씨와 자주 마주치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J씨는 C씨가 상냥하고 밝아서 상당히 좋아했고, 그런 만큼 자주 만남을 이어갔다. 둘이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 J씨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다음에 만날 때는 이 돈으로 예쁜 옷 사 입고 나와”라고 쓴 카드와 함께 백만 원을 넣은 명품백을 선물했다. 이날 J씨와 C씨는 사랑을 속삭이며 행복한 마음을 나눴다. 그리고는 헤어질 때 “내일 건축허가 받으러 구청에 또 갈 거야. 내일 봐”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업무와 상관없이 밥 먹고 선물과 돈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이인 데다가 실제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도 오고갔다. 이럴 경우 김영란법에 저촉돼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판적 시선 들끓어
이뿐만이 아니다. 김영란법에서 정한 5만 원 선물 한정 규정 때문에 농업, 축산업, 수산 분야 생산자와 판매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이를 바라보는 언론들의 시선도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우 축산 농가, 화훼업체, 백화점 등 관련 업계들이 받을 타격에 주목하며 부패 방지 효과를 가늠하기보다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우선, 시행령이 공개된 지난 9일에 지상파 3사는 모두 메인뉴스를 통해 법 시행 이후 ‘내수 경기’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들을 전했다.
SBS ‘8뉴스’는 “한우와 굴비처럼 5만 원이 넘기 쉬운 선물은 대상에서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선물허용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보도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고깃집에서 한우를 먹을 경우 1인당 3만 원 이하의 메뉴를 찾는 건 사실상 어렵고 호텔 레스토랑이나 한정식집도 1인당 식사비가 3만 원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선물 금액 기준인 5만 원을 적용하면 백화점에서 살 만한 선물은 햄이나 참치캔 세트 정도”라며 “저렴한 편인 과일세트나 곶감세트 등도 백화점에선 대부분 5만 원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시행령에 적시된 상한 금액이 현실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조다.
KBS ‘뉴스9’는 “명절 선물세트로 인기인 한우와 인삼, 고급 과일세트는 대체로 5만원이 넘는다. 그래서 당장 농축산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여기에 ‘시름에 잠긴’ 여의도·광화문 일대 식당가와 ‘비상’이 걸린 화훼업계의 표정도 담았다.
김영란법 시행에 대해 ‘내수 침체’를 이유로 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비단 지상파 방송사뿐만이 아니었다.
<동아일보>는 “이번 시행령안에서 선물가액을 올려야 한다는 농·축·수산업계 요구는 형평성을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관련 업계는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고 반발하고 있다”며 “한우 선물세트의 90% 이상이 10만 원을 넘는다. 농축수산업계와 화훼업계는 침통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법이 시행되는 9월 28일 이후 내수가 급속히 침체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는 “농축수산·외식업 관계자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 감소로 인한 충격이 예상된다며 음식·선물값 허용 금액을 높여달라고 요구해왔는데 이번 시행령은 그런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경제> 역시 “입법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부작용은 최소화 해야 한다”며 “농어민, 자영업자의 절박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1면과 2면에 걸쳐 ‘대통령 내수 걱정에도 김영란법, 그대로 간다’ ‘농가 “명절특수 끝났다”’ ‘백화점 “선물 판매량 감소 불가피”, 음식점 “누가 마음 편히 밥 먹겠나”’ 등의 제목을 붙인 관련 기사들을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실제 (농수축산) 업계에선 김영란법이 이대로 발효될 경우 내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이 기업 등 경제주체의 심리를 위축시켜 자칫 ‘부정청탁’과 거리가 먼 정상적인 상거래까지 얼어붙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전국한우협회와 한국농축산연합회, 수협 등 관련 단체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전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뇌물 공화국이란 반증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반부패법 시행만으로 농수축산가가 다 망하고 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게 된다면 과연 그게 정상적인 나라인가”라며 “김영란법에 정작 보완해야 할 것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조항이 빠진 점”이라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 효과 긍정적
어찌됐든 시행령 제정안을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입법예고 기간에 시행령안의 내용을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
권익위 입장에서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시행령을 내놓는 데까지 무려 1년2개월이나 소요됐고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여론 수렴과정을 거쳤을 만큼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경제가 투명해지고 로비자금이 줄어든다면 경제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위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걱정스럽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게 내수까지 위축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라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다시 검토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해 “권익위가 고민 끝에 만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내수 위축을 우려한 것은 시행령 이상의 차원으로 앞으로 국회가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현행 시행령 제정안에 힘을 실어줬다.
권익위(국민권익위원회)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겠다면서도 시행령 수정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권익위 허재우 청렴총괄과장은 “공청회 등의 과정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시행령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도 “그러나 허용가능 금액이 꼭 증액된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허 과장은 이어 “직접적으로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음식물이나 선물을 받는 것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소비위축 효과가 그렇게 크진 않을 것”이라며 김영란법 시행령이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김영란법의 취지와 행간에 담겨 있는 의미는 오랜 관행들을 타파해 부패 없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언론사에 근무하는 이준구 기자는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교사, 나아가 검찰과 경찰 등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없다”며 “스스로가 정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법으로라도 규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업계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소비위축보다 부패의 싹을 아예 잘라내는 게 국가적으로 더 시급하다”며 “투명한 사회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정미숙 씨는 “기업들이 접대비 등에 지출했던 비용을 우리 농축수산물을 구입해 임직원 명절 선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며 “김영란법이 불안전해 보이긴 하더라도 당장 나타날 부정적인 요인 외에 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될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권익위 관계자는 “오는 24일 서울에서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한 공청회를 하기로 했다”며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공청회는 입법예고 기간에 이해관계인을 포함해 국민의 다양한 입장을 듣는 절차로, 권익위는 공청회에서 제시된 견해를 종합해 시행령안에 반영해 최종안을 만들 방침이다.
물론 이 과정에 시행령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을 경우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 권익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