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고 느려도 다시 한 번, 스스로 지탱하는 삶
비 오는 홍대 2번 출구, 건조한 시선
구걸 아니라 노동으로 번 ‘꿈’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존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쓸모의 결과는 ‘돈’이 된다. 우리도 타인이 내게 ‘쓸모’라는 서늘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홈리스(Homeless: 주거취약계층, 노숙인 등)출신의 잡지 판매원이 우리들이 경원하던 이 ‘쓸모’의 가치를 값지게 쓰며 살고 있었다. ‘홍대 2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 아저씨’로 유명한 임상철씨의 얘기다.

2016년 5월 3일 오후 2시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 내렸다. 비가 내렸다. 대낮인데도 어둑어둑 했다. 2번 출구 빅이슈(BIG ISSUE) 판매원을 만나기 위해 역 앞으로 나갔지만 판매원은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주변 카페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에 찾아보니 ‘홍대 2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여러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 판매원이 유명한 이유는 잡지에 동봉해 전달하는 수필과 그림들 때문이었다. 덤덤히 써내려간 글에 무언가 가슴을 치는 것이 있어 곧장 짐을 챙겨 그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빅이슈는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업으로 동명의 잡지를 판매해 수익의 일부를 노숙인이 가져가는 형태의 사업이다.
비가 와서 허탕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질문지를 작성하고 나니 오후 4시가 지나 있었다. 무작정 온 듯 다시 홍대 2번 출구 앞으로 나갔다. 판매원은 없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데 역 바로 밑에 빨간 조끼에 모자, 목에는 커다랗게 프린트해서 코팅한 잡지 그림을 건 빅이슈 판매원이 서 있었다. 코팅한 종이에는 “빅이슈,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우선 빅이슈 한 권을 구매했다.
“홍대 2번 출구 판매원입니다”
인터넷에서 글을 보고 찾아왔다고 하자 머쓱해 하며 “이번에 새로 쓴 글이에요”하며 스물두 번째 이야기를 보여줬다. 그의 글 첫머리는 늘 ‘안녕하세요 홍대 입구 2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입니다’로 시작했다. 일단 소화전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함께 잡지를 팔기 시작했다. 4~5권 정도 잡지가 팔렸다. 판매원 아저씨가 오늘은 아주 잘 팔리는 것이라고 했다. 씁쓸한 맘을 감추려 으레 저와 함께 있어 많이 팔린 것 아니냐는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홍대 거리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 정도가 주 고객층이고 낮보다는 밤 10시 가까이 되어야 잡지가 팔린다고 했다. 그는 매 시간 판매된 잡지와 호수를 파악해 정(正) 자를 연신 그렸다.

6시쯤 되었을까 40대 중후반 여성이 다가왔다. 그의 글이 좋아 계속 찾는다며 조각 전시를 했던 사실도 아는 열혈팬을 자처했다. 판매원은 내게 “단골이에요”라며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에 대해 운을 땠다. “처음엔 글을 쓸까 말까 고시원에서 2주 정도 고민했어요. 내가 쓴 글이 혹여나 자기연민으로 보이면 어떡할까 싶어서요. 이런 말하면 빅이슈에겐 미안하지만 (웃음) 이젠 잡지보다 제 글이 궁금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놀랍다. 다른 홈리스들은 동정에 호소해 돈을 벌지 않는가. 심지어 그조차 나에게 행색이 아직도 초라해 보이는 판매원들이 잡지를 많이 판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첫날은 그렇게 잡지를 팔고 좋아하는 미술가와 그의 고향 제주도 친구 ‘민식이’이야기를 듣고 왔다.
집에 와 그의 스무 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그는 홍대 입구 2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글 한 문단이 걸렸다.
“저 기억하세요?”라고 묻던 사람이 있었다. 순간 당황해 기억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후에 생각해보니 몇 번 빅이슈를 샀던 분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기억이 납니다”라고 이야기했어야 할 걸 하고.. 홍대 입구 2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
그가 단골이라 말했던 그 여성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빅이슈 판매 도우미인 ‘빅돔’을 신청했다. 5월 10일 다시 그를 찾아갔다. 파란 바람막이를 입고 출구 앞에 선 그를 만났다. 그와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다. ‘임상철’씨는 경기도 자그마한 공장에서 조형물 원형 개발과 틀 제작을 했었다고 전했다. 20대 초반을 ‘임주임’으로 불리며 평범한 일상을 반복했다고. 빅이슈를 시작하던 때를 회상했다.
IMF 이후, 막노동을 하며 월 30만 원 하던 고시원에서 살았다. 12월이었다. 막노동은 겨울에 일이 없다. 통장에 100여만 원 남짓 남은 돈으로 2월까지는 안 되겠지 싶어 빅이슈를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홈리스(Homeless)도 바로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처음엔 사기인가도 생각했다니까요. 아니. 당장 와보라고 하니까. 나는 처음엔 인쇄, 제지공장인 줄로만 알았어요” 빅이슈 직원은 월 80~1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주며 당시 보증금 100만 원을 모으면 임대 주택도 지원해준다고 했다. 그 순간 임대 주택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임대 주택만 얻는다면 중단했던 조각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는 수개월간의 노력으로 보증금을 모아 임대 주택에 입주했다. 지금은 응암에서 홍대 입구로 출퇴근한다. 초반에는 판매할 방법을 몰라 벌이가 시원찮았다고 한다. 또 빨간 조끼를 입고 나서는 순간 위축되기도 했다. 그는 “이 조끼는 내가 노숙 생활을 했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처음엔 쭈뼛쭈뼛했어요”라며 큰 소리로 “빅이슈입니다”를 외쳤다.
집 생기자 잊었던 꿈 생각나
임상철 씨는 처음엔 3달만 하고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겨울에 할 막노동이 없어서 통장에 있는 100만 원 정도를 유지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하면 임대 주택을 준다는 거예요. 그 당시 살던 고시원 비용에 비해도 저렴하고 정말 좋은 기회니 꼭 잡아야겠다 싶었지”라고 말했다.
집을 얻고 나니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났다. “늘 하고 싶었던 그 점토 조각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모은 돈으로 조각할 도르래도 샀어요” 작년에는 한 학교 동아리의 제안으로 자신이 만든 조각을 전시하기도 했다. “나는 흙으로 살았죠. 고아원에서 크다 눈을 다치고 미술가라는 꿈을 가지고 회사 다니다가 겪던 일들이 참 레퍼토리가 많지 않나요?” 그는 어느 때건 기억이 떠오르면 글을 적는다고 했다. 이미 10월까지 빅이슈에 동봉할 글도 적어두었다고 말했다. 임대 작업실을 얻는 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작업한 조각 작품 한 점 사진을 보여줬다. 어머니의 무릎에 누운 아이가 있었다. 사진을 가리키는 임 씨의 손이 고왔다.

판매원 일을 하며 겪는 고충은 없느냐 묻자 “힘이 되지 일은. 다만 가족이 있다는 게 가장 부러워요. IMF 때 실직하고 노숙 생활했던 분들도 토끼같은 자식이랑 알콩달콩 살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랬었다는 기억만으로도…”라며 말을 흐렸다. 아차, 가정의 달 5월이었다. “2013년에 건대 입구에서 판매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딸이 있다고 했어요…55살인가 됐는데 주방장이 꿈이라고 딸이랑 같이 살 거라고 열심히 식당 다녀요. 종종 놀러와요” 동료를 회상하는 그의 눈길에 온기가 스쳤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임대 작업실을 갖는 것이다. 그는 “일을 끝내고 오면 새벽이기도 하고 고요해서 작업 영감이 많이 떠올라요. 그래서 도르래를 돌렸는데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어요. 종종 술도 한잔하고 이야기도 하던 사이였는데 서운하긴 해도 미안했지요” 그래서 그는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할 수있는 작업실을 하나 갖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저번 달에는 조각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두었다며 뿌듯해 했다.
6시쯤 되어 음료수라도 사드리겠다고 하니 임 씨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더니 가까운 편의점에 달려갔다. 도시락을 들고 다시 역 입구로 돌아왔다. 그 이유를 묻자 “가방이나 잡지 같은 물건들이 금방 사라져요. 카드 리더기라도 잃어버리면 13만 원이나 들어 여기서 먹는다”며 웃어보였다.

힘들게 핀 꽃은 쉽게 지지 않는다
빅이슈 코리아 판매국 임정은 씨는 “약 6년간 사업을 진행하면서 700여 명의 판매원이 일했고 그 중 10% 정도가 임대주택에 입주했다”며 판매원에서 도약해 새로운 직업은 얻은 홈리스 분들이 있냐는 질문에 “현재 약 20명 정도 재취업을 하셨다. 직업군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사무직, 요리사로 일하시는 분이 많으며 빅이슈 사업체 안에서도 자기표현의 힘을 기르고 사회 복귀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임 씨는 특히 한 달 4시~7시의 평균 근무 일수를 만근하셔서 50권의 잡지를 추가로 지원받고 있다며 우수한 판매원들에 대한 자립을 적극 지원하는 ‘징검다리’역할에 충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비현실적인 정책은 정부의 또 다른 냉대다. 그들을 노숙인이라기보다 홈리스라고 부르는 편이 맞다.
거주지가 불분명하면 주민등록증 말소가 되더라. 또 취직을 하려 해도 회사의 신뢰를 받기 어려워 고용이 쉽지 않다. 결국 주거가 문제다. 우리는 이 부분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또한 “독일의 경우 거주지를 박탈당한 홈리스에게 정부에서 1달간 숙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를 통해 재기하는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힘들게 핀 꽃은 쉽게 지지 않는대요. 빅이슈 판매원들은 더디고 느리지만 스스로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사신다”며 “사회‧경제적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함께 개선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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