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된 음주운전 처벌 기준…2주간 방조 혐의 13명 적발
경찰 ‘음주운전 방조 단속·처벌 강화’ 논란
음주운전 ‘동승자, 술 판 업주도’ 형사 처벌?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음주운전 입건으로 다시금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이 가운데 음주운전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검‧경찰이 내놓은 일명 ‘음주운전 방조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음주운전 처벌 방안을 강화한 지 2주 만에 13명이 적발됐다. 또 며칠 전에는 화물차 운전자들을 상대로 술을 팔고 음주운전을 방조한 죄로 식당 주인이 첫 입건되기도 했다. 최근 경찰의 움직임은 음주운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음주운전 인식 자체를 바꿔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술을 판 업주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잉 처벌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만 처벌하는 시대는 지났다. 경찰이 2주 전인 지난달 25일부터 음주운전 근절을 목적으로 음주운전 방조 처벌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앞으로 음주운전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방조한 사람까지도 처벌한다는 ‘음주운전 사범 처벌 및 단속 강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 이제는 술을 마셨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운전자에게 차 키를 건네거나 운전을 권유하기만 해도 형사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법을 강화한 지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음주운전 방조죄로 무려 1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강화된 법망을 피하기 위해 과감하거나 황당한 결심도 마다않는 사건도 생겨나고 있다.
처벌 두려워 차 버렸다
며칠 전 울산에서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주차된 차를 들이받자 자신의 차를 바다에 빠뜨린 과감한(?) 결심을 한 김모씨 (41)가 무면허 음주운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조사에서 “가중처벌이 두려워 차를 바다에 밀었다”고 진술했다.
지난 10일, 새벽 5시경까지 술을 마신 김 씨는 울산시 남구 장생포로 향하던 중 접촉 사고를 냈다. 그는 이미 지난해 5월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돼 아직 벌금도 내지 못한 상태였다. 덜컥 겁이 난 그는 차를 버리기로 맘먹었다. 변속기를 ‘주행(Drive)’에 놓은 채 시동을 끄고 내릴 만큼 만취한 상태였지만 잘 밀리지 않는 차를 바다 쪽으로 밀어 5시 10분경 차를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기이한 광경을 지켜본 목격자가 경찰서에 신고했다. 이에 울산해양경비안전서는 즉시 수중 수색에 들어갔다. 사건을 인계받은 울산 남부 경찰서가 차적 조회를 한 결과 사고 승용차가 소유주를 파악할 수 없는 대포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에 난항을 겪을 뻔했지만 차 안에서 나온 통장이 사건의 실마리가 됐다.
승용차 사고 경력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통장 주인과 동일 인물인 김 씨를 확인했다. 경찰은 오후 3시 반경 회사 숙직실에서 자고 있던 김 씨를 검거했다. 당시 김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 수준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위드마크공식으로 사건 당일 새벽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된 전력이 있어 순간 가중 처벌을 우려해 승용차를 바다에 빠뜨려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유주도 파악이 어려운 대포차였기 때문에 인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사고 후 미조치, 자동차 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 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사고 후 미조치는 최근 이슈 됐던 연예인 이창명 씨가 받은 혐의와도 동일하다.
동승자 입건 어려워
음주운전법을 강화한 후, 지난 2일에는 화물차 운전자에게 술을 판 식당 주인이 처음으로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경찰에 형사 입건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주인은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에서 쉬던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호객 행위를 해 자신의 승합차로 식당에 데려가 술과 음식을 판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의 조사 결과 화물차 운전자들은 이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난 뒤, 만취 상태로 화물차를 16km나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사실상 음주운전을 방조한 혐의가 적용되기 어려웠다. 운전을 방조한 동승자의 경우 처벌하지만 단순 동승자의 경우에는 별다른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순 동승자란 운전자가 술을 마셨는지 인지하지 못한 동승자를 말한다. 만약 동승자가 운전자의 음주 사실을 알았는데도 운전을 방조했다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일부 처벌을 할 수 있다. 강남 경찰서 윤병현 교통과장은 “방조가 되려면 명령을 통해 이뤄지는 상사와 부하 관계가 확실한 군대처럼 뭔가 뚜렷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때문에 실제 입건되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수일간 식당 주인을 감시해 지속적으로 운전자에게 술을 팔아 왔고 만취 상태의 운전을 방조한 모습을 보여 형사 입건시킬 수 있었다. 이 같은 경우로 운전자에게 술을 파는 식당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경찰은 현재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과잉 처벌은 아닌지
경찰은 음주운전 사범 처벌 강화로 지난 2주 동안 실제 전국의 음주 교통사고가 직전 2주에 비해 20.5%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음주운전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2만4337건, 사망자 수는 583명으로 추산된다. 강화된 처벌 내용 대부분에 여론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음주운전자를 처벌할 경우 동승자 및 술을 판 업주도 함께 처벌한다는 동승자 처벌에 관한 조항에 관한 조항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기존엔 동승자가 많이 취했거나 운전을 부추긴 경우 처벌했으나, 변경된 조항에서는 음주 사실을 알면서 차 열쇠를 준 경우, 권유한 경우, 음주운전을 말릴 의무가 있는데 말리지 않은 경우에 처벌한다.
검 경찰은 “음주운전을 할 것이 뻔한데도 술을 판 사람도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이라며 주점 주인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속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고객이 운전을 할지 안 할지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점이다. 검 경찰은 “외진 장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나 현실적으로 대리운전기사를 부르기 어려운 곳인데도 술을 판 경우에는 손님이 음주운전을 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반대 여론은 “외진 곳에 위치한 식당은 술을 팔지 말라는 것이냐”, “단속에 걸린 당사자들이 말을 맞춘다면 현실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량을 믿고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는 이들이 많다. 음주운전 단속 및 처벌 기준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한 잔쯤이야 하는 안이한 국민 의식이 변해야 한다”며 또 “음주운전은 과실이 아닌 사고라는 점을 인식하고 술을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절대 운전을 하지 않는 음주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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