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 뿔났다…고양 ‘방사선 공장’ 건설 논란
학부모 “학교 앞 공장 건설 철회”, 시 “절차상 문제없어” 난색
대책위, 주민감사청구‧주민소환제 불사…관련 법 개정도 시급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경기도 고양시(시장 최성)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24시간 ‘노숙농성’에 나섰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불과 18m 떨어진 곳에 현재 방사선 관련 시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초등학교 학부모로 구성된 ‘방사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교육‧주거 환경 침해와 공사 과정상의 법 규정 위반을 이유로 들며 공장 건설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양시는 절차상에 문제가 없고 현행법 상의 문제점을 토로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9일 고양시 서정초 학부모들은 시청 앞에서 학교 앞 방사선 시설공장 건설 취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24시간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대책위는 그동안 기자회견과 1인시위, 공사현장 인간띠 잇기 행사 등을 하며 공장 설립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알렸다.
서정초에 자녀 두 명을 보내고 있는 학부모 박윤정씨는 “학교 앞에 방사선 공장과 같은 유해시설이 들어와선 안 된다”며 “공장 반대 운동은 서정초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학부모 민 씨는 “6학년인 자녀가 내년에 졸업하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기에 동참하게 됐다”며 “국가기관인 고양시는 아이들의 미래보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우선시 되는 이 상황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학교 앞 18m 거리에 휴대용 X-RAY(방사선) 발생기 및 촬영기 생산업체인 (주)포스콤이 건설하는 공장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포스콤은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의 핵심 R&D센터를 내년 1월 완공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지난해 12월 착공해 현재 터파기(건물 지을 터를 파는 일) 공사를 마쳤고 추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책위, “건축허가 취소해야”
대책위는 공사 착공 과정에서 시의 건축허가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포스콤이 예정된 착공 시점을 2차례나 어겼음에도 시가 건축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1년 5월 30일 건축허가를 받은 포스콤은 2013년 5월 30일 착공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실제 착공이 이뤄지지 않자 시는 허가 취소를 알리는 1차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지난해 8월 2차 취소 예정 공문을 보내 9월 30일까지 착공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착공은 12월에나 이뤄졌지만 시는 허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오미경 대책위원장은 “고양시가 공사착공 기한을 어긴 회사를 몇 차례나 선처해주는 등 건축법 11조를 위반했기 때문에 건축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건축과 정석영 주무관은 “위의 이유만으로 허가를 취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고 포스콤에서 착공 재개 의지를 밝히는 의견서를 보내왔다”고 해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취소를 하더라도 재신청이 들어오면 막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대책위는 포스콤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로부터 받은 방사선 발생기기에 대한 생산허가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가 과정에서 ‘품질보증계획서’를 누락했음에도 원안위가 생산허가를 내줬다는 것이다. 이에 포스콤 관계자는 “품질보증계획서를 대체할 수 있는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적합 인증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에 이상이 없고 사실상 사무실, 연구실 등만 남아 제조공장이라 볼 수 없는 상태”라며 “특히 학부모들이 방사선 노출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차폐시설(성능실험실)은 짓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입법 개정 시급
지금의 서정초 인근 부지는 2003년 도시지원시설용지로 지정돼 대기·수질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공해 발생이 적은 도시형 공장도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이에 포스콤 등 4개 기업에서 땅을 사 공장 건축을 추진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학교의 일조권 문제,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고 고양시는 지난 2010년 8월 포스콤의 건축허가를 반려했으나 2011년 5월 포스콤이 제기한 경기도 행정심판에서 패소해 건축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서정초 사태와 관련해 현행법 상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보건법 시행령 제6조에는 학교 주변 절대정화구역에는 각종 유해시설이 못 들어오게 돼 있다. 하지만 방사선 관련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현재 공사를 막을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20대 총선 전 관련 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정 당선인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학교보건법과 교육환경보호법 등과 동 시행령 개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에게 차폐시설 공사를 못하게 제안하는 등 서정초 문제와 관련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책위는 현재까지 정 당선인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책위는 “학부모들이 농성장에 오면 제일 먼저 물어 보는 게 당선인 오셨냐는 질문”이라며 “농성장에 직접 방문해서 사태 해결에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시의 책임 있는 역할 촉구
이번 서정초 문제에 관련 당사자들 간의 소통과 만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4월 3자(대책위, 시청, 포스콤) 협의체를 만들어 현재까지 3차 협의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차폐시설 설치를 취소하는 성과가 있었고 최근에는 학교의 일조권을 위해 지상 8층을 6층으로 두 개 층을 낮추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 쟁점인 공장 건축허가 취소를 두고는 대책위와 고양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합의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대책위는 세 차례 협의에서 포스콤과 달리 고양시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며 현 사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성 시장이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학교 앞에 공장 대신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한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시장은 지난 면담 이후 6개월 가까이 이와 관련해 직접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시청 평생교육과 조정석 주무관은 “현재 평생교육센터에 대한 타당성 조사는 마쳤지만 예산 부족 문제로 후속 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원 확보를 위해 시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2일 150명의 학부모는 시청 앞에서 ‘주민감사청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양시의 공장 건축허가 취소를 거듭 촉구했다. 시의 건축허가가 불합리해 감사를 통해 건축법 위반에 대한 시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장을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까지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대책위와 최성 시장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어 사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자리가 될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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