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위기론의 실체
[기고] 대한민국 위기론의 실체
  • 이은영 여민리서치 대표
  • 입력 2016-05-13 20:05
  • 승인 2016.05.13 20:05
  • 호수 115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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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동부 미시간주에 있는 디트로이트 시티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세계 3대 자동차 본사와 자동차부품 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선 ‘북미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경제 침체와 자동차산업의 구조 변화 등으로 감당하지 못할 부채를 짊어진 채 2013년 7월 도시 파산을 선언했다. 주민들은 떠났고 버려진 공장과 집으로 인해 디트로이트 시티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운동권 마인드’ 사회적 역할 힘들어
-‘위기’ 헤쳐가기 위해 여야정 협치 필요 


그러나 곧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직무 전문성과 노동의 질을 높임으로써 IT가 접목되고 있던 자동차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관련 법을 과감하게 개선하였고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해선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미시간 내 부품공장들과 OEM업체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함으로써 이들 업체들을 네트워크화 하는 데도 힘썼다.

이러한 노력 끝에 17개월이 지난 2014년 12월 10일 디트로이트 시티는 파산 상태를 공식 종료하고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스웨덴 조선 산업의 중심 도시였던 예테보리시 역시 조선 산업 구조적 전환기에 닥친 위기극복에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친환경, 정밀기계, IT가 접목된 고부가가치형 조선업으로 탈바꿈시켜서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디트로이트 시티와 예테보리시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도시를 형성했던 대표산업의 전환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먼저 취한 핵심적 조치는 구조 조정될 근로자에 대한 직업교육 강화와 지원이었다. 교육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울산, 창원 등의 도시들이 한국의 디트로이트 시티가 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조선업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의 성장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따른 것이기에 근시안적 접근법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단지 이러한 위기를 먼저 극복한 도시들의 사례가 있다는 점이 위로가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총선 직전부터 구조 조정을 사회적 이슈로 띄워왔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외과적 수술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처방전쯤으로 보이는 것이 지난 12일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나온 ‘국가전략 프로젝트(가칭)’를 통해 과학기술정책의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차세대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 전략산업을 발굴해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온갖 정책들이 잘 와닿지 않는 이유는 주체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시각이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제는 심리다’는 말처럼 현재의 위기에 대한 대응은 사회 분위기를 활력있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의 활력은 자유로운 소통과 함께 도전, 실패, 낙오에 대한 부담을 개인이 짊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구축과 관련이 있다. 또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공공 영역의 적극적인 지원 시스템과도 연결이 된다.    

아울러 산업의 위기가 개개인의 생활의 위기로 바로 넘어오지 않도록 주거, 의료, 교육, 복지 분야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이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은 ‘신혼부부에게 10년간 오르지 않는 월세 주택 공급’ 정도가 눈에 띄는 정책이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정당에 대해 ‘협치’의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뜻을 밝혀서 정치권에 보다 자유로운 소통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전 경험을 보면 이들 주체 간에 긍정적 합의가 만들어질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 앞에 펼쳐진 경제적 산업적 사회적 위기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의 활력이 극대화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럽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펼쳐진 것과도 같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새로운 시각,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뫼비우스의 띠를 한칼에 끊어내듯 풀어보는 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함께 헤쳐가야 할 협치와 대화의 상대를 ‘운동권 정당’이라 표현하는 일부 언론의 행위는 국가적 위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미 30여년 전 개인의 경험, 그리고 우리 근대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된 역사에 대해 지금까지 낙인을 찍는 것은 매우 치졸한 행위다.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동권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라면 장강의 뒷 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처럼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기 힘들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에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극복하길 원하고 바란다면 ‘운동권 정당’, ‘친북좌빨’ 이런 시대착오적인 말을 언론이 사용하는 것부터 금지시켜야 한다. 상대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분위기야 말로 사회의 활력을 만드는 제일의 요소가 될 것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은영 여민리서치 대표>

이은영 여민리서치 대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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