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양파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게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모든 사건에 공통점이 있다. 브로커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법조계·재계·군부대·경찰수사 무마 등 6일 현재까지 드러난 브로커의 활동범위는 다양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브로커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靑수석-차관, C 고위공직자도 거론된 수상한 거래
마당발 인맥 과시 투자 권유…구명로비·사업 청탁
정 대표는 사업을 확장하거나 자신의 형사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다양한 브로커들에게 일처리를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도 이 부분을 예의주시하며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원석)는 정 대표의 다양한 로비 의혹을 철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로커들을 통해 로비 대상들에게 흘러간 돈이 얼마인지, 자금의 원천이 네이처리퍼블릭 회삿돈인지 등을 규명하는 것이 검찰의 우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로비 캐다 뇌관 건드렸다
우선 법조 브로커로 알려진 이모씨다. 횡령 혐의 등으로 실형을 받기도 했다.
코스닥 상장사와 유명 호텔, 건설사 임원 등 여러 직함을 가진 이 씨는 현재 도피 중이다.
이번 법조 게이트의 시작이 됐던 정 씨의 항소심 재판장인 임모 부장판사를 만났던 것도 이 씨였다.
이 씨는 고교 동문인 검사장 출신 H 변호사를 정 대표에게 소개했고, 심지어 폭력조직 범서방파와 정 대표를 이어줬다는 의혹까지도 사고 있다.
2014년 고교 동창과 대화하며 당시 대통령비서실 수석, 정부 부처 차관, 현직 부장검사 등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도 알려진다.
검찰 관계자는 “이 씨가 알려진 것보다 더욱 큰 브로커인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지하철 화장품매장 입점 로비 의혹으로 이미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였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8월 지하철 1~4호선 매장 68개를 각각 34개씩 A·B구역으로 나눠 입찰을 진행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두 구역에 대해 163억 원과 149억 원을 써내 기존 업체를 밀어내고 68개 매장 운영권을 따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서울시 고위공무원 C씨의 연루 의혹도 제기된다. 사정기관도 이 부분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면서도 발표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진다. C씨의 경우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하고 대선주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군납 브로커 한모씨도 주목받고 있다. 여러 곳에 사업체를 운영하며 정·재계에 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게 정 대표가 검찰에서 한 진술이다.
현재 한 씨가 받고 있는 가장 큰 의혹은 두 가지다.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의혹과 군마트 납품 로비다.
검찰은 한 씨가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의 친분을 활용해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 면세점에 입점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보고 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롯데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정 대표가 한씨 등과 해외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첩보까지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도 손을 쓴 의혹을 받는 브로커가 등장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정 대표가 카카오 카지노에서 300억 원대 판돈을 쓴 내역을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마카오 공무원과의 확인과정에서 CCTV확보 및 수사공조 실패로 누구인지 확인치 못해 불구속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 로비의혹이 불거졌다. 현재 경찰은 로비의혹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정 씨의 짧은 기간 성공이 중요 고비 때마다 역할을 한 브로커들의 로비 덕분이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포럼, 골프 통해 인맥 형성
그렇다면 브커들의 인맥 형성과정은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포럼과 골프 모임을 통해 자연스러운 만남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특히 포럼의 경우 모임 멤버 중 고위직 한 명을 소개받으면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과 교류가 이루어진다고 귀띔한다.
실제 브로커 이모씨의 경우도 A부장판사와 지난해 3월∼6월 진행된 한 최고경영자과정 포럼에 함께 등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포럼은 정·관계, 법조계, 재계, 연예계, 언론계 인사 51명이 구성원이었다.
법조계의 경우 법원에선 A 부장판사가 있었고, 검찰에선 한 검찰청의 차장검사와 지방의 한 지청장이 이 과정을 이수했다.
현역 국회의원은 여당과 야당 각 1명이 포함됐고, 중앙부처 국장급 간부 2명과 공기업 임원 등도 있었다.
포럼에서 브로커 이 씨는 A 부장판사와 안면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정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기소되기 전이었다. 다만, 이 씨는 매주 열린 포럼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이외에도 비슷한 성격의 여러 모임과 행사에 참여하며 각계 각층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하나가 골프모임이다.
한편 정 대표의 만기출소일이 한 달도 채남지 않았다.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받고 지난해 10월 6일 구속집행이 이뤄졌다. 항소심 선고대로라면 오는 6월 5일 출소한다.
따라서 검찰 입장에선 정 대표가 만기출소 하기 전에 이 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됐다.
검찰은 이 씨의 신병을 미리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 대표가 출소 후 이 씨와 접촉을 시도, 서로 말을 맞출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로비 창구로 알려진 한 씨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선 검찰 내부와 정치권 등으로 파문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중도에 덮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그 같은 우려 등을) 염두에 두고 검거팀이 적극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