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소문에 너도나도 물량 확보 中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주류업계에 맥주 출고가 인상설이 힘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부 주류 유통업체와 식당들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사재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리 물량을 확보한 후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또 이러한 현상은 앞서 담배나 소주 같은 서민 기호 식품의 가격이 오를 때마다 반복돼왔던 터라 더욱 심각한 모습이다. [일요서울]은 식당가 및 주류 유통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선 업자들 “5월 중 5~6%대 상승 예상”
제조사들 악화된 여론에 “아직 계획 없어”
맥주 가격 인상은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모양새다. 시장의 중론은 소주 가격이 인상된 뒤 여론이 악화됐고, 이를 의식해 눈치만 보던 업체들은 총선이 끝났으니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도매상들이나 식당가에서는 “맥주 가격 인상 확정, 시기조율만 남았다”고 공공연히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주류업체들이 2012년 이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맥주 가격 인상설’에 힘을 싣는다. 오비맥주는 맥주 가격을 지난 2009년 2.80%, 2012년 5.89% 올렸고, 하이트진로는 2009년 2.58%, 2012년 5.93% 인상한 바 있다.
인상율은 5.3~5.6%로 예상되고 있다. 일례로 오비맥주 카스의 500ml 병 기준 출고가격은 1082원인데, 여기서 5.6% 상승하면 1300원을 넘는다. 일반 음식준 기준 500ml 병 당 4000원하던 맥주는 평균 5000원에서 최대 6000원으로 치솟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해 한 일반음식점 점주는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올릴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면서 “소비자들의 반발이 더 심한 소주가 올랐으니 맥주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예전부터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시세차익 노리는 업체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맥주 가격 재조정 소식에 또 다시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값이 쌀 때 미리 물량을 쌓아두고 가격이 오르면 차익을 받아 챙기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한 주류 유통업체 직원은 “가격 인상 소식은 우리가 누구보다 빠르다. 이번 역시 이미 시장에선 확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때문에 다들 평소보다 많은 물량을 받기 위해 발주를 많이 넣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 식당 주인은 “우리도 마음 같아서야 맥주를 쌓아놓고 싶은데 많이 좀 가져다 달라고 하긴 하지만 주지 않는다”면서 “사재기라고 하면 거의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놓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러한 모습은 앞서 소주 가격 인상 때나 담배 가격 인상 때와 똑같아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도 가중된다.
실제 지난해 말 하이트진로를 비롯, 무학, 금복주 등 소주업체들이 일제히 소주 출고가를 올린 바 있다. 롯데와 보해를 제외한 소주 출고가는 천 원대로 올라갔고, 소주 한 병에 3000원을 받던 식당들은 하나 둘씩 소주 4000원, 5000원 시대를 열었다.
당시 소주 가격이 오른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도매업자들이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하자 주류제조사들이 출고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맥주 사재기가 나타난 과정과 거의 흡사한 것이다.
빈병보증금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사재기 문제가 발생해 삼광글라스와 같은 유리병 생산업체가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동안 주류회사와 병 생산업체가 균형을 맞춘 수급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법행위
특히 담배 가격 인상 때는 이러한 사재기 현상의 절정기였다. 편의점사들은 정부가 제세부담금 인상을 공표하면서 국내외 담배회사들이 담뱃값 인상을 선언하자, 물량 확보에 들어갔다.
실제 2014년 8월 기준 편의점 3사의 담배 재고량은 총 2000만 갑 수준이었다. 이후 담뱃값 인상 하루 전인 같은해 12월31일 CU와 GS25, 세븐일레븐의 담배 확보분은 각각 약 1500만 갑, 1300만 갑, 600만 갑으로 늘어났다.
개인 사재기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담뱃값이 인상되기 전인 지난해 12월쯤 아르바이트생 7명을 고용해 전북 전주 지역의 편의점 등 담배 판매 업소를 돌며 담배 4000보루(1억 원 상당)를 사재기한 사례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민들의 기호식품으로 분류되는 제품들의 가격 인상 소식에, 너도 나도 숟가락을 얹으려는 백태라는 지적이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소비자 이모(31)씨는 “담배 4500원, 소주 5000원 맥주 6000원씩 팔면 아무것도 하지 말란 소리 아니냐”면서 “그 와중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사재기를 하는 업체나 식당들은 정말 어떠한 처벌이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주류제조사들은 소주 가격 인상 시기에만 해도 맥주의 가격 인상 요인이 더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현재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인식, 맥주 가격 인상은 하지 않는다고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 맥주 제조사 관계자들은 소주 가격 인상 때 “국제 맥아, 홉 가격 급등 등 맥주가 소주보다 실질적인 가격 인상 요인이 더 많다”는 주장을 펼쳤다. 다만 당장은 맥주 출고가격인상에 대해 “검토한 적도, 검토할 계획도 현재까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