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양산의 온상 근절 시급…법조계선 존재자체 부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법조계 비리의 온상이자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부패 구조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전관예우(前官禮遇)’. 반칙과 편법의 대명사로 알려진 전관예우의 뿌리는 깊다. 1990년대 이전에는 법조계 내부의 공공연한 관행이었고 공직자 기강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기승을 부려왔다. 조금 멀게는 1997년과 1999년, 변호사가 판사와 검사에게 금품을 돌리고 향응을 제공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의정부 법조비리사건, 대전 법조비리사건에서부터 가깝게는 2014년 총리 낙마의 도화선이 된 안대희 전 대법관의 전관예우사건에 이르기까지 ‘전관예우’는 일그러진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최근 정운호 대표(네이처리퍼블릭)의 로비 사건 과정에서 법조계 전관예우비리가 다시 불거졌다. 2016년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 전관예우는 버젓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아직도 그 음험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국내 5위의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의 창업자 정운호 대표의 해외도박사건 수사 중 법조계 비리사건이 터져나온 것. 지난 2009년 해외의 ‘자연주의 화장품’ 콘셉트를 차용해 설립한 ‘네이처리퍼블릭’은 중저가 화장품 매장인 ‘더페이스샵’을 오픈하며 브랜드숍 열풍을 주도한 회사로, 과일가게와 의류 소매를 하던 정 대표가 일군 기업이다.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정 대표는 지난해 100억 원 대의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구속,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도 징역 8월의 실형을 받았다.
그렇게 마무리될 듯했던 사건은 엉뚱하게 법조비리사건으로 비화됐다. 지난 4월 22일 정 대표와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최 모 변호사와의 착수금 반환문제가 폭행사건으로, 그리고 항소심 사건을 담당했던 부장판사에게 구명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구치소 접견록’재판부 로비 정황 포착
최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앞세워 수십억 원 대의 수입료를 받은 사건은 정운호 사건 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1,000억 원대 사기로 재판을 받았던 이숨투자증권 사건이었다.
방송사 JTBC는 지난달 30일, 1,600여명을 상대로 한 금융 사기혐의로 기소된 이숨투자자문의 송 모 대표가 최 모 변호사를 통해 재판부에 로비를 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접견록을 입수, 보도했다.
이 접견록에 따르면 송 씨의 지인이 구치소에서 최 모 변호사의 말을 전달하며 송 대표에게 “내일이면 나올 수 있다”, “판사를 만나 4개면 된다”는 등의 말이 기록돼 있어 전관 변호사의 재판부에 대한 로비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2013년 1심에서 4년형을 받은 바 있는 100억 원대 사기 피의자 송 대표는 2심에서 최 모 변호사를 선임, 항소심 재판 2주 뒤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 변호사의 전관예우로 인한 법조비리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과 검찰 등 우리 법조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관예우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왔다. 전관예우와 더불어 ‘법조비리’의 근간이 되었던 법조 브로커의 재판에 대한 영향력 역시 무시해왔던 것이 법조계의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전관예우의 실상과 법조 브로커의 활약(?)이 예상되는 재판의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정운호 게이트’로 회자되는 이번 사건은 전관예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해외원정도박사건 초반 ‘네이처리퍼블릭’의 정 대표를 1심에서 변호했던 H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였다. 그는 퇴직 후 굵직한 형사사건을 도맡다시피 했고 거물 법조 브로커의 소개로 ‘네이처리퍼블릭’의 고문변호사가 됐다.
1년 6개월이 넘게 경찰수사를 받아 온 정 대표를 변호한 H변호사는 전관예우의 힘이 작용했는지 결국 무혐의를 이끌어냈다. 제보자의 협조 거부와 정 대표의 출입을 부인한 카지노 관계자의 진술이 당시 무혐의 처분의 주된 이유였다.
지난해 10월 재수사 끝에 정 대표는 도박 혐의로 기소됐지만 정작 중요한 횡령 혐의는 빠졌다. 검찰은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같은 기본적인 절차의 수행도 없었다. 전형적인 전관예우의 사례였다.
더욱이 2심의 변호를 맡았던 최 모 변호사에게 정 대표가 자신의 구명운동을 도와준 법조계 유력인사의 명단을 전달했다는 것이 최 변호사 폭행사건과 맞물려 알려지면서 ‘정운호 법조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 대표가 최 변호사에게 자신의 구명 운동을 도와줬던 법조계 인사 등의 실명을 기록한 ‘로비 리스트’를 자필로 작성해 건네줬다는 것.
이와 관련, 국내 한 유력매체의 지난달 27일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정 대표 사건 항소심을 최초로 배당받았던 B부장판사가 정 대표의 지인과 식사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역시 전관예우로 인해 빚어진 결과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 변호사 폭행논란으로 드러난 고액의 수임료 의혹도 ‘정운호 게이트’가 보여준 전관예우의 흉측한 몰골을 비쳐준다. 최 변호사는 항소심 변호의 과정에서 50억 원이라는 고액의 수임료를 정 대표에게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폭행사건의 와중에서 정 대표가 최 변호사에게 돌려달라고 한 20억 원은 선지급된 수임료이고 30억 원은 성공보수였다.
범죄행위로 인식해야
행정관청, 법원 등의 공공기관이 해당기관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공직자, 특히 고위직을 지낸 전직 공직자를 전 동료이자 선배로 예우하고 그에 따라 전직 공직자가 공공기관의 업무에 계속해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현상. ‘전관예우’의 사전적 정의다.
민간이나 일반기업은 이러한 영향력을 기대하고 퇴직한 공직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연봉을 주고 고용하거나 법조계의 경우 상식 선 이상의 많은 수임료를 지급해 자사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
고액의 연봉이나 수임료를 받은 ‘전관’들은 그에 걸맞은 값어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 혹은 재판의 과정에서 의뢰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나 로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부정한 청탁이나 로비가 없더라도 공공기관이나 재판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업무 편의를 봐주거나 재판에 유리하도록 조치하기도 한다. 공공기관 업무나 재판 등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당연히 훼손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전형적인 부패의 사슬이 되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특히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수사과정의 불성실과 양형을 깎아주는 과정을 통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와 사법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사건의 배당과 처리 기준이 투명해졌고 양형기준 채택, 평생법관제 도입 등 사실상 전관예우가 통하기 어려운 여건들이 갖춰졌다. 하지만 전관 변호사들이 의도적으로 의뢰인들을 속이거나 실제로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거액의 수임료를 요구하는 사례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대법원이 지난해 7월,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를 무효로 판결했고 의뢰인은 성공보수 명목으로 지급한 수임료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지만 전관예우의 악순환은 거듭되고 있다.
‘개정 변호사법’, 유명무실
지금까지 주목할 만한 굵직한 전관예우 관련 법조로비 사건들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사건’, 1999년 ‘대전 법조비리사건’, 2005년 ‘윤상림 게이트’, 2006년 ‘법조 브로커 김흥수 폭로사건’ 등이 있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사건’은 변호사 14명이 의정부지원 판사 15명에게 명절 떡값과 휴가비 명목으로 수백만 원씩 돌린 사건으로 사법 사상 처음으로 판사들이 수사대상에 오른 사건이었다.
대전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이 모 변호사가 현직 판·검사를 포함한 검찰과 법원 직원, 경찰관 등 무려 300여명에게 사건 수임 소개비를 돌린 ‘대전 법조비리사건’도 세간에 충격을 던진 대표적인 법조비리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전관 변호사들에 의해 이뤄진 대표적인 전관예우의 폐해가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윤상림 게이트’와 ‘법조 브로커 김흥수 폭로사건’은 법조계 지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의뢰인들에게 거액을 받은 사건들로 불거진 의혹들에 비해 로비의 대상과 배후, 범위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축소된 경우였다.
여기에 전관예우 논란으로 공직 내정자들이 낙마하거나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변협이 노력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정동기 내정자가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7억 원의 수임료를 받아 낙마했고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내정자 안대희 전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5개월 동안 16억 원의 수임료를 받은 전관예우 논란으로 역시 낙마했다.
지난해에는 대한변협이 전관예우 근절을 명분으로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전관예우의 폐해를 막는 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전관예우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변호사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판사나 검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전관 변호사가 퇴임 전 1년간 최종 근무지 관할지역에서 사건 수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유명무실한 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수임제한 규정을 위반한 행위에 관해 벌칙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단지 과태료 처분으로 끝나기 때문. 전관 변호사의 경우 수임료가 최소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데 변협이 부과하는 과태료는 수백만 원 수준으로 사실상 처벌효과가 없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법원이 1차로 처벌하고 2차로 변협이 징계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전관예우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며 전관 변호사 개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 전관예우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대 국회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사법제도의 개혁과제를 찾아내고 법 개정 방향을 정리하는 ‘사법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눈길을 끈다.
TF에서는 ‘정운호 게이트’로 불거진 전관예우의 폐해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 연구와 더불어 현행 법체계의 시급한 개혁 과제를 연구해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어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고질적인 법조비리들이 근절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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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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