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천에 유유히 흐르는 커피향
춘천역과 가까운 공지천에는 조각공원과 공연장, 보트장이 몰려 있어 여가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중도와 의암호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오리배를 타는 연인들과 봄소풍을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유원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전한다. 공지천의 마스코트와 같은 커다란 물고기상은 ‘공지어’라는 상상 속 물고기다. ‘봄이 오는 시내’라는 뜻의 춘천을 여행하기에 공지천만 한 곳이 없다. 특히 물안개가 가득한 풍경이 유명한데, 그 아련한 풍경을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훌륭한 카페가 공지천과 조각공원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로스터리 전문점으로 알려진 이 카페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디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UN참전국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디오피아의 군대는 1951년 부산에 도착해 수많은 공헌을 세웠고 1968년 당시 이디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슬라세 1세가 춘천을 방문하게 된다. 이후 황제가 머물렀던 바로 그 자리에 이디오피아기념관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황실에서 즐겨 마시던 커피생두를 한국에 보내준다. 이렇게 공수 받은 커피생두를 프라이팬에서 볶아내 판매하기 시작했던 이디오피아집.
7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깊은 맛이 전국적으로 퍼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때 이곳에서 이성을 만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에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찾아오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90년대의 이야기다.

2011년부터 이 일대가 도로명 주소인 ‘이디오피아길’로 바뀐 후 세계커피축제와 마스칼이디오피아 전통문화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하루에 1260잔이 팔리기도 했다는 전설적인 판매기록이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인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 집 앞 골목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원두커피라지만 춘천여행 중에 만나는 특별한 커피 한 잔은 그 향이 더욱 짙기만 하다.
물길을 따라가는 황금코스,
물레길
공지천에서 차로 5분 거리, 아름다운 호수와 강이 어우러진 ‘물레길’이 호반의 도시임을 자랑한다. 물레길은 그저 보고 걷는 길에서 직접 체험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길로 변모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스카이워크는 10m 너비의 원형 전망대로 바닥이 투명해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의암댐과 심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장관을 담아가기에 좋은 곳으로 투명한 바닥 밑으로 흐르는 물길도 이색적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형형색색의 카누가 아닌 손길이 묻어나 더욱 멋스러운 우든카누를 타고 조금 더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열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왔을 뿐인데, 이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롭기만 하다. 물길을 가르며 나가는 우든카누의 호젓함은 호반의 도시 춘천이 선물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닭갈비만 먹고 가기 아쉬울 때
춘천 닭갈비의 탄생지, 춘천에는 예전부터 양계장이 많아 저렴한 가격에 닭고기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선술집에서 닭불고기라는 안주를 팔기 시작했는데 그 음식이 오늘날의 춘천 닭갈비가 되었다고. 커다란 철판에 지글지글 볶아낸 닭갈비도 좋지만 최근에는 양념한 닭고기만을 숯불에 구워내는 요리가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명동시내에 위치한 춘천 닭갈비 골목에는 20여 개의 닭갈비 전문점들이 모여 있다. 또 건너편에 위치한 낙원동 닭갈비 골목도 유명하다. 하지만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답게 춘천지역 어디에서나 그 푸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 2~3곳으로 시작된 닭갈비 골목은 한때 춘천 일대에 350여 개의 매장이 운영될 정도로 성행했다. 닭고기에, 각종 야채와 사리, 그리고 볶음밥까지 푸짐하게 먹고 나면 걷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것이다.
닭갈비 골목을 벗어나면 언덕 위 고풍스런 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근대건축유산문화재로 등록돼 있는 죽림동 성당은 95년이라는 시간을 멋스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성당 정면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춘천 시내와 성당의 전체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돌을 하나하나 작업해 벽돌처럼 쌓아올린 건축물로 대리석과는 다른 따스한 느낌을 전한다.



전망대 옆에 세워진 예수상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과 어딘지 닮은 듯 하면서도 또 다른 성스러움을 발산한다. 정면에서 시내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내리막길에 세워져 있어 뒷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웅장함과 완성도가 돋보이는 석조건물 죽림동 성당의 풍경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침묵의 수도자들이 뜰 안을 거닐다 사라진 듯한 이 성당만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여행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한다.
호랑이와 효자의 추억,
낭만벽화골목
탁 트인 풍경도 좋지만 골목 여행이 빠지면 섭섭하다. 낭만의 도시답게 춘천에는 낭만골목 벽화마을이 있다. 벽화마을을 둘러보는 길은 두 가지인데, 효자 1동 주민센터부터 시작하는 방법과 ‘담 작은 도서관’ 아래의 대로변부터 올라오는 방법이 있다. 도서관 이정표 곁에 커다란 호랑이 벽화가 바로 효자동을 대표하는 효자상이다.



이 골목에 가면 벽화는 물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기자기한 설치 미술 작품들이 눈에 띈다. 나무 그루터기로 만든 로봇과 소형 텔레비전을 활용한 재치 있는 작품들. 벽화 또한 커다란 작품보다는 아기자기한 동물과 사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커다란 벽화들이 길게 이어져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아기자기하게 숨어있는 작품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집집마다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는 우체통에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들어있을 것만 같다.

미친 사랑의 노래,
김유정 문학촌
춘천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바로 ‘봄봄’을 쓴 김유정이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윈 아이는 그 충격으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형과 누이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게 된다. 춘천의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김유정에게 그래서 모성은 늘 그리운 것이었다.


서울 유학시절, 아픈 어린 시절을 지나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를 닮은 한 여인을 만난 순간, 김유정은 자연스레 짝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가 사랑에 빠진 인물은 당대 명창이었던 박녹주인데 우습게도 목욕탕에서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오던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그녀에게 매일매일 연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녀가 지나가는 길목과 집 앞을 매일 지키다시피 하면서 사랑을 고백했지만 박녹주는 끝내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벌거숭이 알몸으로 가시밭에 둥그러저 그 님 한 번 보고지고’를 외쳤지만 그 당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던 판소리 명창 박녹주에겐 수많은 팬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박녹주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춘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7살에 떠나온 고향으로 내려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6년을 보냈던 곳에 김유정의 생가가 있다. 고향에서 보낸 시간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이 바로 ‘봄봄’,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와 같은 작품들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병마도 끝없이 그를 괴롭혀 결국 김유정은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실레마을의 정취가 담겨있는 그의 작품은 일찍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그리운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둘러볼 만한 곳 소양호 청평사 애니메이션 박물관 |
<프리랜서 김소연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김소연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