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왔던 배달원이 오늘은 강도로
어제 왔던 배달원이 오늘은 강도로
  • 변지영 기자
  • 입력 2016-05-02 11:39
  • 승인 2016.05.02 11:39
  • 호수 1148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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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에 여자가” 배달하며 범행 대상 물색해

중국집 배달원, 5년 전 일대 연쇄 성폭행범으로 밝혀져

전화만 걸면 집 주소까지 탈탈, 범죄 표적될 수도
 
[일요서울 | 변지영기자]지난해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노려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60대 중국집 배달원이 붙잡혔다. 그런데 DNA 검사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배달원이 5년 전 이태원 일대의 성폭행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는 배달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대에 혼자 사는 여성을 노려 범행했다. 이처럼 신분이 묘연한 배달원에게 문을 열어주다 봉변을 당한 사건이 늘자 배달 범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배달 앱이나 배달대행업주들이 배달원의 신원 보장에는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용산 경찰서는 지난해 1228일 새벽 2시경에 미리 봐둔 한남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가로채고, 집주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이모(60)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이태원 일대의 중국집 배달원으로 근무하면서 독신여성의 집을 노리고 새벽까지 무려 9시간을 기다렸다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검거되며 범행이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여기엔 놀랄 만한 반전이 있었다. 경찰의 DNA 감식 결과, 추가 범행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5년 전 서울 용산구 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이태원 발발이 미제 사건의 범인이었다. 이 씨는 범행 장소 인근에서 중국집 배달원으로 버젓이 일하고 있었지만 수사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특히, 그는 10년 전 성폭행 전과로 복역하고 출소한 뒤에도 수차례 범죄 행각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1996년과 2004년에 성폭행 등의 혐의로 두 차례나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 출소 후 201110월 이태원동 한 주택 화장실 창문으로 침입해 집주인을 성폭행하려다 달아났고, 201210월 인근 주택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도 이 씨의 범행으로 밝혀졌다. 당시 일대의 독거 여성과 부녀자들이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이 씨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다 경찰이 감식 결과를 보여주자 범행을 시인했다.
 
용산에 거주하는 여모씨는 인근 중국집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배달원이 연쇄 성폭행범이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용산 경찰서 관계자는 이 씨가 배달 일을 하며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혼자 있는 여성만 노린
배달원 범죄 증가
 
이 씨는 평소 배달을 하며 눈여겨 봐둔 독거 여성 A씨를 뒤따라갔다. 평소 배달 일을 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근 지리에 빠삭했던 이 씨와 같이 신분이 묘연한 배달원이 혼자 사는 여성을 범행 표적으로 삼기란 매우 쉬워 보였다.
 
동네 배달원 범죄는 비단 이 씨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독거 여성만을 노린 배달원 범죄나 혼자 집 지키는 어린아이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여수의 모 아파트 상가의 세탁소 주인이 세탁물 배달을 갔다가 혼자 집을 보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13)을 성추행했다. 201010월 부산 남구에서는 우유배달원이 혼자 사는 20대 여성의 집만 골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김모씨는 새벽 4시경에 우유배달을 하면서 열린 창문으로 집에 침입해 잠을 자던 B씨를 강제로 성폭행하는 등 같은 수법으로 5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시도했다. 김씨는 자신이 우유 배달하는 새벽에 B씨 집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다른 여성들의 집에도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했고 다시 B씨에게 성폭행을 재시도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2015년도에는 경기 안동의 치킨 배달원이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집으로 배달을 하다 10대 여중생을 성폭행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배달원들은 그 동네에서 계속 일하며 자연스레 집 주소와 동네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파악해낸 것으로 드러났다. 맞벌이 부모를 두어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많은 아이나 홀로 사는 여성들이 범행의 표적이 되곤 했다. 그러나 배달원의 신원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업소가 다수일 것으로 예상돼 배달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배달음식 주문 애플리케이션인 배달 앱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대다수의 브랜드 음식점과 동네 음식점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둔 편리함과 신뢰 때문이다. 또 앱을 사용하면 가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달 앱은 활성화되지만 배달원 신상 보장에는 허술해 보였다.
 
외주 배달대행업체
배달원 관리 소홀
 
자영업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 고심하면서 배달대행이라는 시스템이 생겨났다. 각 점포에서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업체에 외주화 한 것이다. 배달대행업체는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많은 음식점과 제휴를 맺게 되고 그 사이에 직원들의 신상 보장은 챙길 재간이 없다. 이 과정에서 배달원은 음식점과 배달대행업체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일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60대 연쇄 성폭행 배달원도 10년 전 성폭행 전과가 있었음에도 이태원 일대의 집 곳곳을 누비며 범죄를 이어올 수 있었다.
 
전국 702개 음식점 중 80% 가 배달 앱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앱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업소는 4.8%에 불과했다. 배달 앱은 배달을 중개하는 만큼 주문과 배달, 수령 확인 그리고 배달원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으레 소비자는 내가 시킨 배달업체의 직원이 배달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배달업체나 배달 앱으로 주문한 경우, 음식점 직원인지 외주를 한 배달대행업체 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배달의 민족홍보팀 관계자는 배달의 민족 자체 배달원인 배민라이더채용 시 범죄 경력 관련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채용 기준이 일반 사무직과 같아 범죄 관련 조회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에 등록된 가맹업주들이 자체 배달원이나 외주 배달대행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라며 신원이 불투명한 배달원 범죄는 극소수 사례로 배달업체 이용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고쳐 나가기 위해 업체에서도 엄격한 과정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주요 거점부터 자체 라이더를 시험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의 민족은 외식업으로 등록한 곳에 한해 송파·서초·관악 지역에서만 배민 라이더라는 회사 자체 배달원이 배달을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 등록을 한 음식점에서는 자체 배달원이 배달을 하는지 외주를 준 배달업체에서 파견한 직원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지방이나 시골에서는 한 배달원이 오랜 기간 그 동네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달 직원에 대한 사전 검증이 꼭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구인광고를 내고 종업원을 고용할 시 종업원의 신분증과 휴대전화 번호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jy-0211@ilyoseoul.co.kr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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