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여론 뭇매…문제는 무엇?
쓰레기 배출량↓ 재활용률↑ Go Green
사생활 침해, 범죄 유발 소지 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 봉투’다. 수원의 한 구청이 올바른 쓰레기 배출 문화 정착을 이유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상세 주소 등 개인정보를 적어 배출토록 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주민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사생활 침해와 범죄 악용 소지가 있다며 쓰레기봉투 실명제의 즉각적인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수원시 영통구청은 최근 종량제 봉투에 개인 주택은 주소, 사업자는 업소명과 주소, 아파트는 아파트 이름과 동·호수를 기재하는 ‘소각용 쓰레기 종량제 봉투 실명제’를 다음 달 2일부터 한 달간 시범운영한다는 공문을 관내 아파트 단지 등에 보냈다.
구청은 해당 공문에 “생활쓰레기 혼합배출로 인해 자원의 재활용률이 떨어지고 버려지는 자원의 재활용 확대와 쓰레기 감량에 대한 효율적인 대안을 위해 실명제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따로 배출해야 하는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품이 일반쓰레기에 섞어 버리는 사례가 늘어나자 구청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친환경 정책 일환…
책임의식 고취
영통구청은 안내 공고문을 영통지역 10개 동 주민센터에 배포한 데 이어 1000만 원을 들여 쓰레기봉투에 거주지 주소 등을 표기할 전용스티커 약 33만 여장을 제작, 대형마트 등 쓰레기봉투 판매업소에 배부했다.
영통구는 실명제를 도입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 버리는 일이 줄고, 분리수거가 활성화돼 전체 쓰레기 양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주소를 쓰게 하는 것은 자기가 버린 쓰레기에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구청의 설명이다. 수원시 최태규 청소팀장은 쓰레기봉투 실명제는 탄소가스를 줄이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온실가스 배출 거래 협정으로 인한 환경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음식물쓰레기와 각종 재활용품이 섞인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탄소량으로 환경오염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구청은 또 이 제도를 추진하는 근거로 평창군의 성공 사례를 들었다. 작년 평창군에서 실명제 도입 이후 쓰레기 배출량이 35% 줄고 연 2억여 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실명제 시행 전에는 일부 비양심적인 주민들이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용기·캔 등을 함께 담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주민들은 수거장 주변이 지저분하고 악취도 심해 주민들끼리 다툼이 잦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참다못한 주민들이 쓰레기봉투 실명제를 제안해 실시하게 됐다. 한 달가량 유지되자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는 이들이 사라졌고 지저분했던 쓰레기수거장이 깨끗해졌다. 평창군 관계자는 “실명제 도입 이후 쓰레기 발생량이 줄었고 쓰레기 처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노출
범죄 악용될 우려
주민들은 실명제의 각종 부작용 발생 우려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쓰레기에 개인정보가 적힌 메모나 각종 내용물로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고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이다. 영통구에 사는 주민 김씨는 “안내 유인물 보고 황당했다. 주변사람들도 다들 의아해 한다. 아이들 가방 검사하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지난 24일 ‘수원시 영통 쓰레기에 상세 주소를 쓰라니요? 저는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실명제 반대 서명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29일 현재 4500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이 글에 서명했다.)
한 누리꾼은 “우리나라는 국민을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국민을 범죄로 내모는 형국이다. 주소가 적힌 종이도 찢어서 버리라고 홍보해야 할 판에 오히려 쓰레기봉투에 주소를 다 쓰라는 것은 내 개인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하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며 비판했다. 이어 “가족 구성원, 그 집에서 사용하는 물품, 개인정보에 관련된 내용들이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 있을 텐데 이 점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묻고 싶다”며 “또 주소를 거짓으로 써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라고 맹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영통구 최 팀장은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정직하게 분리해 올바른 쓰레기 배출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며 “확실하게 배출하자 유도 할 뿐이지 이걸 갖고 과태료 부과나 봉투를 일일이 열어서 확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 발 물러난 구청
주민 아이디어 공모 계획
주민반발에 부딪힌 구청은 2개 지역을 우선 선정해 시범 실시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애초 오는 6월부터 관내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실명제를 실시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오는 6월까지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돼 있는 동 등 2곳을 선정해 2개월가량 시범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주민들의 의사를 묻고 의견을 수렴해 사업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또 용어도 ‘종량제 봉투 실명제’ 대신 ‘소각용 봉투 배출 표시제’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최 팀장은 “아파트 관리소 등에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주민 제안서’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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