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자신의 구명 로비를 도와주던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내용의 ‘정운호 리스트’ 파문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운호 리스트에는 현직 부장 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 8인의 법조인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진상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정·관계 최대의 비리로 손꼽히는 ‘성완종 리스트’가 또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K·L부장판사, H변호사, L브로커 등 등장
정·관·재계 ‘뇌물’ 유착 문제 또 다시 대두
정운호 리스트 사건 파문은 지난달 12일 정운호 대표가 서울구치소에서 수임료 반환 문제로 C 변호사를 폭행하면서 불거졌다. 정운호 대표는 수임료 중 20억 원을 성공 보수금이라고 주장하며 보석에 실패했으니 돌려달라고 C 변호사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C 변호사는 20억 원 수임료는 착수금에 해당하니 돌려줄 수 없다고 맞섰다. 둘의 공방 과정에서 C 변호사 측이 정운호 대표가 구치소 접견을 온 지인들에게 자신의 구명활동을 요구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렇게 발발된 정운호 리스트 사건은 정운호 대표가 재판장에게 질책을 당한 뒤 구치소에서 자신의 변호인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는데, 해당 쪽지에 ‘그들(판사 등)에게 더 이상 로비를 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고, 이를 측근 P씨에게 전해달라 했다는 내용이다.
정운호 대표는 지난해 10월 100억 원대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구속기소가 됐다. 이후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를 했다. 결국 이러한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과정에서 로비 시도를 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만 살펴보면 1심에서 검찰의 구형이 징역 3년, 징역 1년이 선고됐다. 항소심인 2심에서는 검찰 구형이 오히려 6개월 줄었다.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고 법원의 2심, 항소심 선고도 4개월이 줄어들어 징역 8개월이 선고된 것이다.
수상한 의문들
특별한 감형 이유가 없이 구형과 형량이 줄어든 것이라면 로비의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명단에는 정운호 대표의 구명을 도왔던 8명의 로비스트가 적혀 있었고, 현직 부장 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 보니 개인 비리를 넘어 법조인 전체 비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검찰의 진상 조사가 진행 중인 사항으로, 대부분 이를 부정하고 있다.
우선 명단 중 수도권의 K부장 판사는 “부탁은 받은 적 있지만, 전달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K 부장판사에게 부탁을 한 의사 L씨도 8명 중 한 명이다. 세 번째는 법조브로커 L씨다. L씨는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되자 L부장판사에게 찾아가 식사 접대를 한 인물로도 알려진다. 아울러 검사장 출신 H 변호사, H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법적 조언을 하는 등 고문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로비는 없었다”고 밝힌 상태다.
명단에 올라 있는 로비스트 S씨는 정확한 역할이 드러나지 않았고, 나머지 3명 역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법조계의 검은 거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정운호 대표의 여성 변호사 폭행 사건으로 과다 수임료 논란이 촉발됐고, 그 과정에서 나온 쪽지 한 장으로 법조계 로비 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제기된 모양새다.
더불어 일부에선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성완종 리스트 때처럼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재계 인사가 뇌물 사건에 연루될 때마다 ‘기업들 관행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앞서 자원외교비리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부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정·관계와 기업들 간 유착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기업 사정수사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몸을 바짝 낮추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다.
고조되는 긴장
현재도 검찰 수사 향배에 따라 다른 기업으로 불길이 옮아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자칫 불똥이 튀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형국이다. 더욱이 4ㆍ13 총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이 재계 수사가 본격화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묘하게 연결이 된다.
정운호 리스트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파문을 몰고 올지는 검찰 수사의 진척 속도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시민단체 관계자는 “정치계든 법조계든 ‘돈’이 오가지 않는 곳은 없다”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불법적인 자금이 오고갔다면 여타 기업인들의 재판 과정도 들여다볼 필요성은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정운호 대표의 끝도 없는 논란에 그가 수장으로 있는 네이처리퍼블릭은 골머리만 싸매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주변은 그렇게 보지 않는 모습이다. 논란이 증폭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네이처리퍼블릭 불매운동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지난해부터 진행하려 했던 상장이 올해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상장 지연이 지난해 메르스와 중국 시장 규제 강화 등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구속 수감된 정운호 대표가 문제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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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