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정부의 산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기 민감 업종과 부실 우려가 큰 기업,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을 잃은 곳을 대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조선과 해운업종에 불어 닥칠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이 영향으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양사 오너의 엇갈린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퇴진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이다. 특히 최 전 회장은 미공개 정보로 손실을 회피했단 의혹을 받고 있다. 조사 당국의 압수수색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일요서울]은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 전반을 살펴보고,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사재출연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 수사 대상
철강·석유화학도 명단 올라…부작용 우려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즉생의 각오로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면서 업종별 경영상황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눠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거론된 것은 조선과 해운업종이다. 경영여건이 구조적으로 악화됐으며,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에 따른 결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기 민감 업종’으로 지정해 최대한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각 기업들이 비핵심 자산을 팔도록 하고, 채권단은 빚을 줄여줘서 회생 방안을 찾게 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신용 등급이 ‘C’나 ‘D’ 등급으로 낮아 부실 우려가 큰 기업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 대상으로 관리한다. 기업별로 신용 위험을 평가해서 빚이 많은 대기업부터,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맺거나 ‘워크아웃’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경영상황이 아직 심각하지 않더라도,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는 철강과 석유화학도 대상에 올랐다. 기업마다 경쟁력을 따져 설비를 줄이거나 서로 합치고, 사업 재편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나섰다.
꾸준한 합병설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 발표 후 해운업계의 행방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양사는 해운업계 불황으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합병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예고 후,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하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합병하게 될 것으로 봤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지만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를 것”이라며 “정부 주도의 빅딜은 없다”고 밝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정부 주도의 빅딜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정부 주도의 인수·합병 계획은 없음을 알렸다. 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도 강도 높은 자구책을 요구한다”며 “용선료 인하 협상을 마무리짓지 않으면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따라서 기업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채권단 중심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해운업계 전반에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한진해운은 최은영 전 회장에 대한 잡음도 일었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 공시 이틀 전인 지난달 23일 한진해운 보유주식 전량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은영 전 회장은 한진해운 전직 최대주주이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제수다. 그런 그가 처분한 주식은 37만569주다. 또 그의 두 딸인 조유경, 조유홍씨도 한진해운 주식 29만8679주를 각각 전량 매도했다. 이는 모두 27억 원 규모에 이르며, 지난달 25일 종가 기준 10억 원 가량의 손실액을 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최 전 회장 일가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각하고, 10억 원 가량의 손실회피를 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압수수색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최 전 회장 일가의 불공정 거래 여부는 금융감독원에서 살폈지만,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 권한을 가진 자본시장조사단이 조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정은 현대상선 회장은 300억 원의 사재 출연, 현대증권 매각 등으로 명예로운 퇴진 수순을 밟고 있어 두 사람의 엇갈린 행보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최 전 회장을 향한 먹튀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그가 받아온 보수와 배당금, 퇴직금 등이 150억 원대에 이른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2014년까지 8년간 한진해운을 경영하면서 150억 원대의 현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한진해운은 7413억 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린 반면 2조9263억 원 당기순손실을 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의 위기에서 홀로 빠져나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됐다.
재정 부담 우려
철강업계 역시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선, 해운업종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올 하반기부터는 철강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철강산업을 5대 취약업종에 포함시키고,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원샷법(기업활력제고법)의 첫 적용대상으로 꼽은 바 있다.
다만 업계는 이 같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부작용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1~2년 전부터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조선, 해운업종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견해다.
따라서 인위적인 구조조정보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철강재를 규제하는 등 본질적인 철강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 내용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국민들의 혈세에서 나온다는 점과, 정리대상이 된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에 대한 우려다.
만약 한국은행 등 국책은행이 자금 동원에 나서게 되면, 이번 구조조정에 쓰이는 자금은 국민 세금이 되는 셈이다. 정부의 재정 부담도 가중된다. 국가채무가 60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이어서 이 같은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부의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한 출자지원 방안 검토와 관련해 “편법 지원”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힌 상태다.
또 부실기업을 합치거나 정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문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구조조정 대상 분야를 특별 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서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늘리거나 맞춤형, 전직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대량 실직사태 등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방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