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감’에서 ‘충격’으로…해명에도 불구하고 검찰 송치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인 용사들을 위한 뜻 깊은 기부를 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대한민국 알림이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학자와 의류를 기부했던 업체 간 고소공방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유명 의류업체인 ‘NEPA’(이하 네파)는 횡령 및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재단법인 ‘대한국인’ 이사장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재단관계자 3명을, 장물취득 등 혐의로 의류 유통업체 P사의 관계자 2명을 각각 고소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결백하다”며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누가 보더라도 이번 사건의 시작은 훌륭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알림이’로 종횡무진 활약해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국가정책 홍보를 목표로 재단법인 ‘대한국인’을 설립했다. 이곳에 유명 의류업체 ‘네파’가 에티오피아 등 21개국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할 200억에 가까운 물품을 지난해 12월 기증하며 흐뭇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채 몇 달이 안 돼 이 흐뭇한 광경은 볼썽사나운 고소사건으로 비화됐다. 원고인 네파 측은 ‘대한국인’이 물품의 일부를 빼돌려 의류 유통업체에 판매해 횡령했다는 입장이다.
기부물품 중 0.4%만 전달
네파가 ‘대한국인’ 측에 기증한 물품은 의류, 신발 등 약 8만 5,000여 점으로 금액으로 따지면 총 195억 원. 이 기증물품 가운데 불과 0.4%인 300여 점만이 원래 목적대로 기부가 됐고 나머지 8만 4,300여 점은 의류 유통업체인 P사에게 헐값으로 넘겼다는 게 네파 측의 주장.
현행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모집된 기부금품은 모집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그 목적에 사용하고 남은 금액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집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네파 측은 물품이 빼돌려진 사실을 알고 P사 관계자들에게 기부물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되레 ‘대한국인’ 측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네파 측은 자사의 물품이 무분별하게 유통돼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P사에 넘겨진 8만 4,300여 점의 물품을 전량 재매입했다고 주장했다. 네파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네파는 기증했던 자사의 물품을 다시 돈을 주고 사는 아이러니한 꼴이 된 것.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서 교수는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면서 “뻔히 적발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횡령했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한국인’ 이사장 재임 이래 떳떳하지 않은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 측에서는 “배송비 등 진행에 필요한 10억여 원의 비용에 대해 물품의 일부를 팔아 충당하겠다는 점을 네파 측과 미리 협의했다”며 “의류 유통업체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된 것을 ‘대한국인’까지 싸잡아 문제시하는 것 같다”고 억울해했다.
서 교수는 현금화 하기 이전, 네파 측과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네파가 보낸 이메일 일부를 캡처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논란의 본질은 중간에서 진행한 P사와 네파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검찰에서 연락이 오면 떳떳하게 잘 처리하고 돌아오겠다. 정말 믿어달라”고 전했다. 특히 서 교수는 자신과 ‘대한국인’의 입장을 SNS에 올려 해명하는 등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렇듯 네파 측과 서 교수 측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법적판단에 주목
이번 사건이 세간에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 서 교수의 활동 때문이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온 몸을 던져 활동해왔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는 ‘민간홍보대사’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감당해왔다.
지난해 일본 군함도의 실체와 우토로 마을 주민들의 삶을 재조명했던 MBC프로그램 ‘무한도전’ 제작에 큰 기여를 했고 탤런트 송혜교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일인 4월 13일을 알리는 한글안내서 1만 부를 제작, 배포해 화제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 및 월스트리트저널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광고를 게재했던 가수 김장훈과 전 세계 18개국 주요도시 번화가에 위안부 포스터 3000장을 붙이고, ‘독도의 날’을 맞아 ‘안용복 동영상’을 전 세계에 배포하는 등 ‘한국 알리기’에 꾸준히 매진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다카시마 공양탑에 대한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은폐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저항해왔고 독도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일본을 질타하기도 했다.
당시 서 교수는 방송에서 조선 강제징용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인 다카시마 공양탑을 ‘무한도전’의 멤버인 하하와 함께 찾아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다. 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디자인 논란에 휩싸였던 나이키사와 마이클 조던에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홍보전문가’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해 온 서 교수였기에 이번 사건으로 인한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다.
서 교수 측과 네파 측 대립의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직 예측할 수 없지만, 그동안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발 벗고 뛰어온 서 교수에게 이번 사건은 적잖은 이미지 타격이 될 수 있다.
네파 측의 오해와 소통의 부재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네파 측 주장대로 일정 부분 횡령 혐의가 드러날 경우 서 교수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소 직후 이미 매체 인터뷰를 통해 결백을 밝혔고 비리 혐의가 드러날 경우 진행 중인 모든 활동을 멈추겠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한편, 서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대한국인’은 지난해 국가보훈처 산하단체로 등록된 민간단체다. 국가정책연구와 나라사랑 아카데미, 대한국인 예술축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시설 확충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립, 진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설립 후 첫 프로젝트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1개국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의류품을 전달하려는 것이었는데 이번 고소공방으로 첫걸음부터 삐걱이게 됐다.
이번 사건의 결말에 따라 서 교수의 입지는 물론 ‘대한국인’의 운명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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