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에 1만4000여 명 ‘산모 정보’ 제공…아기 앨범 영업 등에 정보 활용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5년 사이 유출된 개인정보가 1억 건이 넘는 등 사실상 국민 대부분의 개인정보가 새나간 셈이라 사회적인 충격이 컸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의 정보까지 유출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져 파문이 일고 있다. 유명 산부인과 병원장들이 아이의 주소와 생일은 물론 산모의 연락처까지 담긴 정보를 대가를 받고 사진관에 넘겨준 것. 신생아와 산모의 개인 정보를 두고 벌어진 산부인과와 사진관의 검은 거래는 한 사진 스튜디오 주인의 제보로 경찰에 알려졌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산모와 아기의 개인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산부인과 병원장과 사진관 업주, 초음파 관련 업체 대표 등 7명을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의 산부인과 3곳의 병원장들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임산부 1만4774명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태아 출생일 등을 사진 스튜디오에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 대표들은 병원에서 빼낸 개인정보를 이용해 아기 백일과 돌 사진, 성장 앨범 촬영계약을 유치하는 등 영업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초 부산의 한 유명 산부인과에 들이닥친 경찰들은 그동안 병원을 거쳐간 산모들의 분만대장과 신생아 확인표 등을 살펴보고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산모들 “황당해”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박성룡 경감은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서 지난 5년간 초음파 영상 전송 장비 업체 및 사진관과 결탁해 산모들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했다”며 “부산과 김해 일대의 산부인과 3곳에서 백일이나 돌 사진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관 3곳에 정보를 넘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산부인과들 중 한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했던 박모(32)씨는 자신의 정보가 동의 없이 사진관에 넘어간 사실에 “부산에서 오래되고 유명한 병원이라 믿었는데 황당하다”고 말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첫 아이였던 만큼 믿을 수 있는 병원을 선택했던 박 씨는 “(아기의) 생년월일 태어난 시간뿐만 아니라 제왕절개를 했는지 자연분만을 했는지까지 다 알고 있어 정말 화가 났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에 대해 박성룡 경감은 “신생아실에 보관하고 있는 신생아 확인표나 분만 대장을 촬영해가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했고, (거기에) 성명 주소 연락처 혈액형 등이 기재돼 있었다”고 전했다.
사진관 직원이 아이의 탄생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신생아실에 들어와 산모의 이름과 연락처를 수집했는데, 그 과정에서 출산 기록과 신생아의 정보 등 의료 기록을 고스란히 촬영해 갔던 것이다.
박 씨는 “사진 기사 아저씨가 와서 사진을 찍고는 (홍보 용도로 써도) 되는지 동의서를 써달라고 했으나 동의하지 않았다”며 “아이의 성장 사진을 찍을 업체를 따로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문제의 사진관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아이의 탄생 사진을 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불쾌해했다.
특히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신생아실은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임에도 사진관 직원의 출입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당연히 신생아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면서도 “사진사들이 사진을 빨리 찍고 가야 된다고 하니까 우리 직원들이 급한 나머지 몇 번 허락해줬던 것 같다”고 변명했다.
병원 측은 단지 몇몇 직원들의 실수라고 했지만 사진관 업체의 말은 조금 달랐다.
해당 사진관 관계자는 “저희가 강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허가라기보다는 앞서 다른 스튜디오도 그렇게 해 왔었으니까 암묵적으로 동의돼 있는 상황이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으로부터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산모 윤모(28)씨 역시 아이의 탄생 사진이 병원 측의 선물인 줄 알았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윤 씨의 가족은 “첫 아기다 보니까 그냥 병원 측에서 찍어준 줄로만 알았다. 사진관 사람들이 직접 들어와서 정보를 빼갔다는 걸 우리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개인 정보 유출에 ‘무감각’
이런 식으로 병원 3곳에서 빼돌린 개인정보로 사진관들은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수입을 올렸다. 고객들은 한 번 촬영한 사진관을 계속해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 사진관들의 고객 유치 경쟁은 치열하기만 하다.
하지만 병원들이 사진관에 공짜로 정보를 준 건 아니었다.
이들 병원은 적게는 2천700여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 등 모두 1억400만 원 정도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대당 100만 원 정도 하는 태아 영상촬영ㆍ저장장비 28대 구매비용과 한 달에 수십만∼100만 원 정도 하는 장비 유지ㆍ보수비용을 사진 스튜디오로부터 대납 받았다.
초음파 관련 업체를 사이에 두고 산부인과 병원과 사진관 간에 부당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박성룡 경감은 “월 매출이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정도 되는 규모가 큰 스튜디오 사진관들이 해당 병원들에 대해 대납해주고 산모들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았다”며 “수익이 그만큼 있기 때문에 그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해당 사진관 관계자는 “어차피 광고비나 영업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대신 병원에서 들여야 하는 A/S나 영상촬영 비용 같은 것을 대행해주고 영업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당연한 듯 말했다.
이 같은 부당 거래는 초음파 영상촬영ㆍ저장장비 대금 수천만 원을 요구하는 산부인과 병원의 ‘갑질’에 폐업을 결심한 한 사진 스튜디오 주인의 제보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개인 정보 유출에 무감각해진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병원별로 적게는 2천여 건에서 많게는 7천 건에 가까운 개인정보를 넘겼다. 스튜디오 대표들로서는 수백만 원 상당의 아기 성장앨범 촬영을 유치하는 데 산부인과에 있는 개인정보만큼 유용한 게 없었다.
이 산부인과 병원들은 한 달에 많게는 100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나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배상훈 서울 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만약에 개인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감히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며 “적발돼도 실형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벌금 정도에 그치는 것 또한 문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이 병원들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통보해 시정조치를 내리는 한편 이 같은 행태가 전국의 산부인과에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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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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