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서점, 사시 외 국가시험 위주 커리큘럼
고시원, 원룸 신축 한창…주거난 해소 방안 부상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2017년 사법시험 폐지를 앞두고 신림동 고시촌이 변모하고 있다. 사시를 준비하던 고시생들이 떠난 빈자리를 일반 직장인과 대학생 등이 채우면서 동네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유명 고시서적 전문 서점은 문을 닫았고, 사법시험 전문학원들은 사시 외 국가시험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고시원이 즐비하던 동네는 원룸 건물 신축이 한창이었다. 고시생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신림동 고시촌을 [일요서울]이 찾아갔다.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입구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고시촌을 대표하는 녹두거리 곳곳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과거 이 시간대에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고시생들이 많아 거리가 한산했던 것과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한 분식집에 들어가 요즘 고시촌 분위기를 물었다. 이 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종업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손님들이 점심시간에 반짝했다가 오후시간에는 조용했다”며 “요즘은 고시생들보다 일반인들이 많아 이 시간에도 장사가 꽤 된다”고 설명했다.
방향을 틀어 학원가 쪽으로 걸어가니 고시촌의 분위기가 변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시 전문학원들은 5급 공무원시험과 임용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등 커리큘럼을 다양화하고 있었다.
일부 서점은 줄어드는 고시생들 탓에 문을 닫거나 온라인 서점으로 전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35년 역사를 자랑하던 고시촌의 상징 ‘광장서적’ 역시 부도를 면치 못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일반 서점이 들어서 있었다.
고시촌에서 6년째 사법고시를 준비했다는 김희원(34)씨는 “로스쿨제도 도입 이후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면서 “자주 가던 고시식당이나 서점이 사라질 때마다 참 이곳에 오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림동 고시촌 인구 가운데 사법고시 준비생 비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서울 통계에 따르면 ▲2012년 2만4078명 ▲2013년 2만3637명 ▲2014년 2만3570명 등 조금씩 감소했지만, 지난해에는 2만3766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고시생은 줄고 있지만 사법고시가 아닌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림동 고시촌에 남아 있다. 또 저렴한 물가와 조용한 분위기 탓에 고시촌을 삶의 근거지로 삼는 사람들이 1늘고 있다는 게 D공인중개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신림동 고시촌은 1인 가구를 위한 동네로 거듭나고 있다. 고시생의 숙식을 책임졌던 하숙집과 고시원들은 현재 원룸 건물로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원룸과 오피스텔 등의 신축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J부동산 O대표는 “사시 폐지를 발표하기 전만 하더라도 신림사거리보다 고시촌 땅값이 더 비쌌다. 그러다가 2년 전까지 (상권 등이) 내리막을 걸었다”면서 “그런데 최근에는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요즘 고시촌이 망해간다는 건 옛날에 돈 잘 벌던 상인들이 상대적으로 요즘 그렇다고 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고시촌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상권도 살아나고 있다고 O대표는 덧붙였다.

전국 각지 고시생 모여
고시촌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980년대 초반으로, 고시생들이 공부 및 숙식을 위해 거주하던 고시원이 밀집한 지역을 말한다. 서울의 대표 고시촌인 대학동은 지난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형성됐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 학생들은 1980년대 초부터 관악산 부근의 여러 하숙집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 지역에 대한 명성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후 각지에서 고시생들이 모여들게 됐다고 전해진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고시 전문학원과 고시 전문서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에 따라 많은 고시원이 지어졌다. 사법시험뿐 아니라 5급 공무원 공채시험, 공인회계사 등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존 주택이 헐리고 고시생을 위한 하숙집이나 고시원이 지어졌다. 상권 또한 고시생들을 상대로 하는 업종으로 전환됐다. 1999년에는 대학동 전체 주민수(2만6000명) 가운데 절반 이상(1만5000명)이 서울대 하숙생 및 고시생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2017년 사법시험 폐지계획이 발표되면서 신림동 고시촌의 풍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shh@ilyoseoul.co.kr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