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임기 1년10개월을 남겨둔 박근혜 대통령의 심경이 복잡하다. 총선 민의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흘러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힘들게 됐다. 총선 이후 가진 언론인과 첫 간담회장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고백할 정도로 평소와 다르게 무기력감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으로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자신감 있게 국정운영을 추진하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유약함을 보여줬다. ‘철의 여인’,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 대통령이 회한에 차 언급한 ‘한’의 실체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당·청 수레 바퀴론’ 친박·비박, “화들짝”
-“잘못해 욕 먹으면 한이라도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6일 언론인들과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아쉬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박 대통령 발언 내용을 보면 “대통령 중심제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부터 “꿈은 많고 의욕도 많고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 됐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기가 막혀 마음이 아프고…”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그래 해봐’ 그렇게 해주고서 나중에 안 되면 ‘하라고 도와줬는데도 안 되지 않았느냐’라고 잘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한은 없겠다”며 국정운영에 여야가 뒷받침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
나아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하는 건 아닌데 마음의 아픔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약한 모습도 보여줬다. 급기야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도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며 “나중에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이 남을 것 같다”고 읍소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런 말을 쏟아낸 배경은 노동시장 구조개편 관련법 중 여야 이견이 큰 파견법과 관련해 질문을 받았을 때다. 특히 19대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다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법의 핵심은 다수당의 입법안 단독처리를 막기 위해 의결정족수를 과반수에서 5분의3(180석)으로 상향조정하면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통과가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이 섭섭한 것은 이뿐만 아니다. 정부를 도와줘야 할 여당이 거꾸로 발목잡은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총선에 당선한 유승민 의원 등을 겨냥해 “비애를 느꼈다. 자기 정치를 한다고 대통령을 힘들게 하는 것에서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섭섭한 발언은 계속됐다. 박 대통령은 “여소야대보다 더 힘든 것은 여당과 정부 내부에서 삐거덕거리는 것”이라며 “여당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다. 이 바퀴는 이리 가는데, 저 바퀴는 저리 가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비박계 지도부 체제에 대한 불만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한 야당도 문제지만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부화뇌동한 것이 더 힘들었다는 하소연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친박계가 ‘대통령 마케팅’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사실은 제가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며 “총선 후보들이 자신의 선거 마케팅으로 그냥 만들어갖고...”라며 선을 그었다. 진박.친박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당연히 비박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국정 운영의 피해자는 박 대통령이고 가해자는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한 진박·친박·비박계라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의 집권 여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5년 단임제’하에서 집권한 역대 정권에서 반복돼 왔던 고질적인 문제였다. DJ의 국민의 정부부터 노무현 참여정부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서도 같은 고민에 빠졌었다. 이명박 정권 탄생에 1등 공신이자 정무수석과 사회특보로 활동한 박형준 사무총장 역시 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朴 대통령, ‘임기말 MB’ 동병상련
박 사무총장이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사회특보로 근무할 당시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박 사무총장이 2012년 대선 1년 3개월을 앞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해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는 “청와대의 국정 운영은 일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고 일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초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정치 논리는 선거를 의식하는 것이다”며 “선거에서 표를 많이 받는 것과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늘 부딪친다”고 좋은 정치는 국정운영을 잘 뒷받침하는 정치로 정의했다.
당시 박 사무총장은 친이계가 득세한 집권 여당이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을 못 받쳐주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서 대통령은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해야 될 일이 있는데 해야 될 일은 법을 통해서 한다”며 “법을 새롭게 바꾸고 개혁을 하는 주체는 국회여야 되는데 국회에서는 또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야합의만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여야 합의에 이를 만큼 의견이 일치하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그러면 대통령과 정부입장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 결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당 논리는 그게 아니다”며 “왜 다수결이냐 합의를 하자, 이렇게 나오니깐 여당과 청와대가 불가피하게 충돌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결국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다수결 처리를 요구하고 집권 여당은 일방통해 내지 강행처리도 해야 하는 현상이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일어났다고 내다봤다. 결국 박 대통령의 집권 여당에 대한 실망감은 과거에도 존재한 국정운영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가 일치되지 않아 발생하는 ‘5년 단임제 대통령’의 한계인 셈이다.
그러나 집권여당 주류 세력인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恨(한)’ 발언이나 ‘친박 2선후퇴론’보다 ‘당·청 간 수레바퀴론’에 더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이면서 청와대를 재차 발끈하게 만들었다. 즉, “박 대통령을 뒷받침해서 국정을 이끌어 나가려면 우리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강경 논리였다.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당권 나아가 국회의장직까지 친박계가 다 잡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간담회 있던 다음날인 27일 모임을 갖고 5월 3일 있을 원내대표 선거의 진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원내대표 경선에 나설 친박계 홍문종·유기준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만나 유기준 의원 쪽으로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총선 책임론’을 들어 ‘친박 자숙론’을 주장했지만 유 의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친박 자숙론’을 주장하는 최 의원과 서청원 의원은 원내사령탑보다 향후 있을 전당대회에서 당권과 국회의장직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당권’을 노리는 최 의원 입장에서는 ‘친박 원내대표-친박 당대표’ 구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심 국회의장직을 기대하는 서 의원 역시 원내대표건 당권이건 친박계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이 본인 행보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發, ‘친박 2선후퇴론’, ‘해체론’
이처럼 친박계가 ‘자리’를 연연하는 모습에 청와대에서는 “더 이상 친박을 팔지 마라”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8일 언론을 통해 “유 의원이 친박 단일후보라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청와대에서 당에 ‘대통령 뜻과 아무 관련 없는 출마’라고 전했다”고 불편한 심경을 표출했다. 특히 ‘당.청 수레 두바퀴’ 발언이 ‘친박에 대한 지원 요청’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서도 “아전인수 격”이라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발언이 재차 일부 친박계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 속에 해석되는 것에 대해 청와대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비박계에서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친박 2선후퇴론’, ‘친박 해체론’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친박계가 자리에 연연하면서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냉소적인 반응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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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