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조항을 두어서라도 박태환에게 명예회복의 기회 줘야
예외조항을 두어서라도 박태환에게 명예회복의 기회 줘야
  • 장성훈 기자
  • 입력 2016-04-28 17:37
  • 승인 2016.04.28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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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보다 대한체육회가 융통성 보여야

▲ 뉴시스
[일요서울 | 장성훈 기자] 다음은 기자가 ‘99번의 법칙에 걸린 임창용과 오승환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13일 헤럴드스포츠에 기고한 칼럼이다.

중신회의는 당자가 처해 있던 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이의 아내를 함부로 취하는 것은 관원으로서의 적절치 못한 행위였다 판단을 하였습니다. 허나, 과거 한 때 과오를 범했던 것이 한 사람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다면 그 과오가 그 후의 삶을 결정짓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중신회의의 최종적인 판단입니다.”
 
대하드라마 <대왕세종> 57회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분이다. 조정으로 복귀하려는 황희를 두고 일종의 청문회를 열고 있는 장면인데, 중신들이 그의 부적절한 전력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황희는 다시 관복을 입게 된다. 비록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지만, 역사적으로도 황희는 당시 박포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한 논란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황희를 오래 자기 곁에 두었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라면 누구라도 과오와 관계없이 중용하는 인사정책을 폈다. 또 사형에 처할 만큼의 뇌물을 받은 조말생을 2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한 뒤 다시 중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세종의 그 같은 인사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의 당사자들이 그 후 국가 발전에 상당 부분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때가 조선을 개국한 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여전히 인재가 부족했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세종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긴, 그야말로 탁월한 용병술의 대가였음이 분명하다.
 
황희와 조말생이 지금의 잣대로 인사청문회를 한다면 분명 중도 하차했을 것이다. 최근 열린 일부 장관들의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은 황희와 조말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과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또 국민의당이 영입한 인재’ 3명은 과거 전력 때문에 발표 3시간만에 입당이 취소되었는가 하면, 더불어 민주당의 한 영입 여성 교수는 표절 등의 논란 때문에 자진해서 입당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공인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 탓이다.
 
정치권에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게 아니다. 인기 연예인들도 국민 정서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언행을 했다가는 그 날로 매장되기 일쑤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했어도,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르면 그 바닥에서 퇴출된다. 스포츠스타도 마찬가지. 제 아무리 각종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했어도 말 한마디 잘 못하거나 부적절한 행위를 한 번이라도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 역도 선수가 후배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10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물론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일정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진 후 죄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슬그머니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연예인들이 음주운전과 도박 등으로 하차한 후 6개월에서 1년이 지나 여론의 눈치를 살핀 후 복귀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프로농구 선수들도 불법 스포츠도박 스캔들에 휘말려 올 시즌 초 출전을 하지 못하다가 비난여론이 가라앉자 은근슬쩍 복귀하지 않았던가.
 
KBO가 해외도박 파문을 일으킨 임창용과 오승환에게 전체 경기의 50%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실상 선수생활 연장의 길을 터준 셈이다. 구단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소리가 높다. 이 때문인지 각 구단들은 속내와는 달리 겉으로는 이들을 쓰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임창용과 오승환이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명예 회복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들이 누군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그 동안 이들은 적지 않은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뛰었다. 남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음주운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상습적인 도박도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가볍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대표였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세종이 치세했던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처럼, 이들의 과오가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인들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지 않은가.
 
99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 못하면 엄청난 욕을 먹는다. 99번 잘 한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임창용과 오승환이 해외에서 세이브를 올릴 때마다 환호했다. 그들은 팬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그런 기억들을 되살려 보자.
 
기자가 위 칼럼을 전재하는 것은, 임창용과 오승환의 ‘99번의 법칙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수영선수 박태환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어서이다. 주지하다시피 박태환은 약물복용으로 16개월의 징계를 받은 후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으로 인해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에 박태환은 출전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대한체육회(이하 체육회)에 읍소하고 있지만 체육회는 규정을 바꿀 수는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체육회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박태환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서라도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처벌을 인정하지 않은 CAS의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상의 라숀 메릿과 영국의 육상 선수들이 각각 자국 내부 규정에 걸려 올림픽 출전길이 막혔지만 CAS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체육회 규정 자체가 CAS 제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박태환의 CAS 제소에 반대한다. 제소의 유불리를 떠나서 우리 집 안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나라 밖 조직에다 그 판단을 맡길 이유가 없어서이다. 게다가, 자칫 이 문제로 박태환과 체육회가 대립할 우려가 있다. 다른 나라가 제소를 했다고 해서 우리도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과 정서가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체육회가 조금만 융통성을 보인다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규정에 예외를 두는 것은 어떨까. , 국가대표로 국위선양에 공을 세운 선수에 한하여 단 한 번만,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족쇄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것이다. 물론 국가대표만 선수인가라는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선수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얼마든지 설득이 가능하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이를 포함해 다른 방안들이 있는지를 체육회는 고민해보아야 한다.
 
체육회의 규정이라는 것이 선수를 위해 있는 것이지, 규정을 위해 선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피부색도 같지 않고 외모와 언어가 다른 외국선수들도 재능만 있으면 체육회는 특별귀화를 위해 법무부에 이들을 추천해오고 있다. 그런데, 같은 피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에게, 그것도 한국 수영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선수에게 규정만을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 야박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박태환은 약물복용 파문 후 남모를 가슴앓이를 해왔다. 온갖 비난과 질타도 받았다. 16개월간 그 어떤 대회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당연히 치러야 할 죄값이었다. 이제 박태환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다. 법원의 판사들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죄인에게는 정상을 참작한다. ‘법대로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법원에서조차 이런 융통성을 보이고 있는데, 사정기관도 아닌 체육회가 법대로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 체육회는 더 늦기 전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성훈 기자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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