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직업 따라 결정? 신분 노출 사례 속속 드러나…

교육부, 입학과정 실태조사 발표 예정…후폭풍 거셀 듯
공정성 제고 위해 입시 전형 개선안도 마련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의 로스쿨을 졸업한 딸 취업청탁, 신기남 의원의 로스쿨에 다니는 아들 졸업청탁 논란에 이어 최근 지방의 한 로스쿨에서 부정입학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표현했던 우리 사회의 ‘신분 대물림’ 문제가 지성인들의 모임인 법조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런 논란 속에서 정부는 올해 초 ‘로스쿨 입학과정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4월 내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상당수의 부정청탁 사례가 조사된 것으로 알려져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관측된다.
로스쿨 제도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법조인 양성, 법조계의 ‘학벌 카르텔’ 폐해 척결을 취지로 2009년부터 추진됐다. 하지만 개원한 이후 불투명한 입학과정의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최근의 로스쿨 입학을 둘러싼 논란은 교육부가 올해 초 25개 로스쿨의 최근 3년치 입학 자료를 실태 조사하면서 시작됐다. 조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조계 안팎에서 로스쿨 교수 자제, 법조계 고위직, 국회의원 등의 로스쿨 입학 및 취업 관련 리스트가 돌았다. 특히 경북대학교 로스쿨에서 신입생 선발을 둘러싼 부정 청탁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의혹을 제기한 인물은 대구지법 판사와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신평(60) 경북대 로스쿨 교수다. 지난달 10일 신 교수가 낸 책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책에서 “○○○ 변호사 아들이 이번에 우리 로스쿨에 원서를 냈는데 꼭 합격시켜야 한다며 동료 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니는 교수가 있다”고 폭로했다.
부모 신분 노출 사례 적발
대학 입시에선 ‘부정행위’
“아버지 성함이 뭐죠?” “저희 아버지는 ○○○ 변호사입니다.”
지난 2013년 11월 경북대 로스쿨의 입학 면접장에서 오간 대화다. 물어본 면접관은 동료 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닌 로스쿨 교수고, 대답한 학생은 청탁 의혹을 받는 변호사의 아들이다. 해당 변호사와 로스쿨 교수는 사법연수원 동기로 알려졌다.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로스쿨 면접장 부모 신분 노출 사건이 사실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례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 거라는 정황이 많다. 신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소개서에 많은 학생들, 특히 법조인 가정 아이들이 부모 직업을 밝힌다. 많은 교수들이 법조인 자녀에 호감을 가지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인 한 학부모가 전화로 ‘우리 애가 입학하도록 해주면, 나중에 졸업할 때 (경북대 졸업생) 몇 명을 같이 취업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며 청탁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말했다.
로스쿨 제도 찬반론…
양측 주장 팽팽
로스쿨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등에 부모 이름이나 직위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은 각 로스쿨마다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중·고교 입시에서는 자기소개서든 면접이든 신분을 드러낸 것 자체로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교육부의 ‘2017학년도 자기주도학습전형 및 고교 입학전형 영향평가 매뉴얼’을 보면 특목고 등 고입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신분이나 소득이 암시돼 있으면 사실상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10% 이상 점수를 깎도록 규정돼 있다.
그동안 로스쿨 제도 찬반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은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법관 자제 등 사회고위층의 로스쿨 입학 문제를 두고 로스쿨협의회는 “부정 입학은 있을 수 없다, 법관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탈락시킨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밝혔고, 이에 사시 존치 찬성 변호사 단체는 “논란이 되는 대법관 자녀 등의 입학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성 평가(계량화하기 어려운 부문의 평가) 비중 문제를 두고 로스쿨협의회는 “면접과 채점에 타 대학 교수, 외부 위원 등을 포함시켜 공정하게 진행한다”라고 밝힌 반면 변호사 단체는 “객관적 점수로 결과가 나오는 사법고시와 달리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 임의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여지가 크다”라고 맞받아쳤다.
교육부는 로스쿨 입학 과정에 부정이 없었는지 지난 12월~1월간 실태점검을 진행했다. 실시한 전국 25개 로스쿨 입시과정 전수조사 결과를 이달 말에 발표한다. 입학 과정에서 유력 정치인이나 판검사인 부모의 신분을 드러낸 사례가 상당수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직 대법관이나 검찰 고위간부 출신 등 법조계 유력인사 자제도 40명가량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스쿨 제도를 비판했던 사시 출신 변호사나 비(非)로스쿨 법대 교수들은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 시대, 높은 벼슬의 자식이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되던 제도)임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 서완석 회장은 로스쿨 폐지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로스쿨의 존재 의의부터 고민해 보아야 한다"며 "교육부는 국민 세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 선발 과정이 불투명한 로스쿨의 요구에 부응해서는 안된다. 로스쿨 입시 전수조사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전국 25개 로스쿨로 이뤄진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지난 19일 입장자료를 내 “법 규정에 맞게 입학전형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행하고 있음에도 일부에서 ‘불공정 입학’을 사실화해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이달 안 발표될 ‘로스쿨 입학과정 실태조사’ 결과는 기존의 사시 존치 논란과 로스쿨 제도의 향후 미래에 직결되는 사안으로 그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어서 교육부가 발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로스쿨이 스스로 개혁의 노력을 게을리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법시험이 폐지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부 목소리에 귀를 닫았던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이번 조사를 계기로 로스쿨 측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 투명성을 높여 진정한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로스쿨, 입학 전형
공정성 높여야 신뢰
정부는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입학 전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일 교육부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두 기관은 로스쿨 입학의 전형 요소 가운데 서류 및 면접 반영 비율을 낮추고, 명확한 점수가 나오는 법학적성시험(LEET)의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고 계량화된 수치를 성적에 반영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신뢰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입시에는 자기소개서 공통 양식이 있고, 외부 수상 경력 기재를 금지하는 등 구체적인 규제 및 처벌 규정이 있는데 로스쿨 입시에는 그런 게 없다”면서 “자기소개서 등의 서식을 통일하고,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제재하는 방안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