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악용한 신종 대출 사기 기승
영상 통화‧인터넷 ‘비대면 대출’ 범죄에 악용돼
취업과 동시 대출‧투자해라? 무조건 사기!
[일요서울 | 변지영기자]최근 취업 준비생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일당이 적발됐다. 일자리를 얻으려는 취준생의 절박함을 이용한 범죄라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들은 “취업을 위한 인증 절차”라면서 자필 서명을 받은 뒤, 이를 저축은행의 대출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벌였다. 이 같은 수법으로 9명에게 총 9000여만 원을 빼돌렸다. 특히 직접 전화나 인터넷으로 가능한 ‘비대면 실명 인증’ 서비스의 빈틈을 이용했다. 피해자 측은 은행 심사 절차가 허술했다며 금융감독원에 피해구제 민원을 신청한 상태지만, 저축은행은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상황이다.
YTN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구직자 A씨는 최근 이 일당에게 대출 사기를 당했다. 일당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A씨에게 접근했다. 지적 수준이 다소 낮은 A씨는 “취업 인증 절차”라는 말에 저축은행 대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들은 A씨에게 “일을 하고 싶으면 빨리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입력하라”며 재촉했다.
일하려다 신용불량자 된 구직자
특히 이들은 대출 사기에 ‘비대면 본인 인증’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대면 본인 인증’은 본인의 대출 의사와 주민등록증 등만 있으면 전화나 영상 통화로 대출을 할 수 있는 구조다. A씨는 영상 통화로 대출 서비스 본인 인증을 했다. 결국 A씨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다 무려 5000만 원의 대출 빚을 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다른 20대 여성들도 실명 인증으로 같은 일당에게 수천만 원을 빼앗겼다. 피해자들은 대출 과정이란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비대면 본인 인증’을 통한 저축은행의 허술한 대출 심사가 범죄 악용에 한몫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신종 사기단에 대출 사기를 당한 피해자만 9명이고, 액수는 1억여 원에 이른다.
일당은 20대가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의 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이용했다. 심지어 대출 금액을 늘리기 위해 피해자들의 직업을 직접 만들어 심사를 신청해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알선을 미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셀 수없이 많았다. 특히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세상물정에 어두운 청년들이 쉽게 믿고 정보를 내주기 때문에 20대 초중반들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충청남도 아산에선 구직자들을 속이고 취업을 알선하겠다며 9300여만 원을 편취한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들은 지난해 9월, 구직 중이던 피해자 4명에게 카페 동업과 의류 쇼핑몰에 취업 알선을 해준다며 속여 피해자들에게 신분증 등을 받았다. 이 정보로 17회에 걸쳐 대출업체에서 9300여만 원을 대출받아 편취하는 등 상습적으로 취업 알선 사기를 저질렀다.
또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고자 일자리를 구한 대학생을 상대로 총 1억여 원의 대출금을 가로챈 사건도 있었다. 자신을 대형 저축은행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했던 피의자는 초반에 일급을 넉넉히 챙겨주다가 회사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며 통장 계좌 및 개인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후, 학생들은 저축은행에서 이자 납입 독촉 문자를 받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서 총 1500만 원이 대출된 것이다. 피해 학생들은 일을 구하려다 빚더미를 떠안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한 피해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대출’, 금융범죄에 악용
시중의 한 대부업체는 최근에 신분증만 찍어 보내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를 했다. 실제 신분증과 휴대전화만 있으면 2분 안에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쉽고 빠른’대출은 비대면 대출이란 점에서 무분별한 대출을 부추길 수 있다. 또 대출 과정에서 각종 편법과 금융범죄 등에 노출될 확률도 높은 편이다.
구글 등 검색엔진에서 주민증을 입력하면 수많은 신분증이 노출돼 있다. 누구라도 맘만 먹으면 타인의 신분증에 자신의 사진을 바꿔치기하거나 주민번호를 조작해 금융회사에 제출할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금융권 대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회적으로 대출 분위기를 조장해 가계부채를 악화시키고 대출 사기 등 금융 범죄에도 취약하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은행연합회는 비대면 실명 확인 방식을 도입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했다. 9월엔 은행이 비대면 절차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자체 테스트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면 대출 사기 실태를 감안하면 영상통화나 정맥 패턴 등 본인이 직접 하는 인증도 안심할 수 없어 보인다. 신종 사기에 ‘비대면 대출’서비스가 자주 악용되면서 대출 심사 과정 자체가 허술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접수한 대출 사기 관련 피해 건수는 2010년 793건에서 2011년 2357건, 2012년 2만3653건으로 급등했다. 게다가 이 중의 상당수가 비대면 대출을 악용한 사례로 분석돼 더 큰 주의가 요구된다.
금융 전문가들은 비대면 대출 이용에 앞서 소비자들의 꼼꼼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출 사기 피해를 본 A씨 가족들은 대출 의사와 직업을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은 저축은행의 허술한 대출 심사 과정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본인 인증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세심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KTB솔루션의 김태봉 대표는 이미지에 조작 탐지 기술인 ‘포토 FDS(Fraud Detection System)’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포토 FDS’는 사진의 위‧변조 행위 여부를 자동으로 탐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유럽 등 해외에서 수년전부터 보험 분야를 중심으로 사기 탐지에 적극 활용하고 있어 이 기술을 도입하면 각종 이미지 위‧변조 행위 및 조작을 식별할 수 있는 체계가 국내에서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 실명 확인’시행으로 상당수의 사용자들이 ‘신분증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형태의 간편한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진위 여부 판단에 어려움이 많다며 ‘포토 FDS’가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덧붙여 “이미 일부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등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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