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이면 뭐해…” 탐욕의 사진전 논란
산림보호구역 내 220년 된 금강송 수십 그루 무단 벌목
벌금 500만 원 내고 수익성 전시회 개최…앙코르 사진전까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본인의 예술 작품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수익 전시회를 열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한 한 사진작가가 있다. 장국현(74) 작가는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수령 220년 된 최고급 소나무 금강송 수십 그루를 잘라냈다. 이런 장 씨의 행동을 규탄하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뭉쳤다. 이들은 지난 12일부터 매일 장 씨의 소나무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사진전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나서고 있다. 장 씨는 5월 대구대교구 한 성당에서 앙코르 사진전을 또다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강송 싹뚝 잘라 전시에 판매까지…미안해? 그만해!’, ‘무개념 무양심 뻔뻔한 사진전 멈춰라 관둬라!’.
사진작가 안광찬 씨가 1인 시위를 하며 들고 있는 피켓에 적혀 있는 문구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앞에서는 장국현 사진작가의 ‘천하걸작 사진 영송’ 전시회를 규탄하는 사진작가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안 씨는 “소나무를 훼손한 작가가 소나무 사진전을 여는 것은 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위하면서 대화 나눴던 방문객 10명 중 8명은 전시장에 안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왔던 분들 중에 장국현 작가의 제자라고 밝힌 분도 있었는데 사정을 듣고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일행과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시위는 월간 포토닷의 박지수 편집장이 페이스북에 시위를 제안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무단 벌목으로 전시회를 연 장국현 작가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전시를 열어준 미술잡지도, 이를 받아준 전시 공간도. 온통 정신 나간 세상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싶다”며 장국현 사진전 보이콧을 위해 릴레이 1인 시위를 제안했고, 현재 참여자는 3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해당 홈페이지에 타임테이블을 만들어 시위 참여 스케줄을 조절하고 끝난 후에는 1인 시위 인증샷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진작가도 이들의 생각과 같아 보인다. 디지털미디어를 전공,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김씨(29‧여)는 “자연물을 찍으면서 자연을 훼손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진을 위한 사진은 의미가 없다”며 “최소한의 도덕적 행동을 벗어난 사진은 아무리 멋있어도 좋은 사진이 아니다”며 일침을 가했다.
사진 찍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싹뚝’
사진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장 씨는 2011~2013년 금강송 군락지인 경북 울진군 산림보호구역에서 사진을 찍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수령 220년 된 금강송 11그루와 활엽수 14그루를 무단으로 벌채했다. 그는 산림보호법 위반으로 2014년 4월 약식기소됐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장 씨는 현지 주민에게 일당을 주고 금강송을 베어내도록 했다. 대구지법 영덕지원은 장씨에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고, 한국사진작가협회는 그를 제명했다. 그러나 장 씨의 금강송 사진이 한 점당 400만~500만 원선에 판매되는 것에 비하면 벌금수위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예술의 전당 뒤늦게 알고 취소 통보
장 씨는 그동안 찍은 소나무 사진을 위한 전시회 준비에 들어갔다. 미술평론지 ‘미술과비평’은 장 씨를 초대해 ‘천하걸작 한국영송 장국현 사진전’을 열기로 결정, 2014년 9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 전시실 3곳에 대관 계약을 했다. 원래 대관 기간은 2015년 11월 23~29일로 예정됐으나 해당 전시실 조명 공사로 올해 4월 12~26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은 올해 3월 전시 주최사인 미술과비평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품을 공공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뒤늦게 대관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미술과비평은 ‘전시회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불미스런 사실을 뒤늦게 알고 미술과비평에 통보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2014년 9월 계약 전 이뤄진 대관 심의‧심사 과정이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된 걸로 파악됐다. 2014년 7월 법원의 약식기소 판결이 나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인 것을 보면 계약 전 대관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다툼까지…법원, 장 씨 손 들어줘
미술과비평이 낸 가처분소송에 법원은 6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지법 제51민사부는 “대관 계약 및 전시장 대관 규약 상 취소를 통보한 사유만으로는 예술의 전당이 대관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며 "<장국현 사진전>의 준비 및 전시를 방해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미술과비평은 많은 돈을 투자해 전시 준비를 마친 상태여서 전시회가 열리지 않으면 상당한 손해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알려진 전시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계획대로 진행할 필요성이 소명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생각은 법원의 판단과 달라 보인다. 21일 예술의 전당 미술관 앞에서 만난 시민 양윤아 씨(30‧여)는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 문제를 지켜봐왔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법원 판결에 화가 난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또 이날 1인 시위에 참가한 유별남 씨는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상식의 판단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과 상식의 판단으로 장 씨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꼭 알려야 되겠다는 마음에 생전 처음 1인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앙코르 전시회까지?
장 씨는 전시회 수익금 전액을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범어대성당에 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역신문에 따르면 5월 범어대성당 갤러리에서 앙코르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는 불법행동에서 비롯된 전시회 수익금인 데다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종교단체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또 기부금이 파이프오르간(고가의 건반 악기) 설치에 쓰일 예정이라고 알려지자 한층 비난이 거세졌다. 1인 시위에 참여했던 사진작가들은 대구대교구의 앙코르 전시회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에 21일까지 고민을 거듭하던 범어대성당 측은 기부금을 받지 않기로 22일 최종 결정했다. 다만 사진전 개최 여부는 아직 미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범어대성당 장성녕 기획실장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기부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면서 “사진전을 열지 말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당사자 장씨에 관련 입장과 사실 파악을 듣기 위해 22일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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