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간 당권·대권 밀약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김 대표가 공천과정부터 선거총괄을 담당해 총선 승리를 이끌면서 1단계 총선승리 계획은 완수했다. 또한 김 대표는 상징적 운동권 친노인사들을 퇴출시키고 친문세력으로 주류를 교체시켜 문 전대표의 대권가도를 가볍게 만들었다. 대신 김 대표는 ‘셀프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비례대표 2번을 받아 비례로만 4선의원이란 진기록을 이뤘다. 짧은 기간에 총선승리를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원내1당의 대표로서 위상도 확고히 했다. 총선 게임만 보면 두 인사는 서로 윈윈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제 김 대표와 문 전 대표의 당면과제는 6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장악이다. 이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정권을 탈환한다면 ‘대통령 문재인-책임총리 김종인’으로 화룡점정이 될 전망이다. 대권을 넘어 그 이상을 노리는 김 대표의 ‘고희의 꿈’을 따라가봤다.
- 77세 ‘고희의 꿈’ 대권 넘어 ‘책임총리제’ 막강 권한 행사

김대표, 당권·대권 밀약설 사실상 인정
실제로 ‘당대표 합의추대론’에 대해 부정적인 인사들의 다수가 비주류거나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인사들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문 전 대표와 경선을 치러 패했던 이인영 의원이나 당대표 도전이 유력한 송영길, 정청래, 김진표 의원 등이 합의추대에 반대하고 있다. 친노·친문 주류 측의 입장은 ‘합의추대도 가능하다’지만 경쟁자가 존재하는 이상 명분이 약해 숨죽여 있을 뿐이다.
결국 ‘합의 추대’에 키를 쥔 인사는 문 전 대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인 데다 주류 측 좌장으로 문 전 대표의 의중에 따라 결정될 공산이 높다. 그러나 문 전 대표 측은 ‘원내 일은 원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흘리면서 관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대표가 직접 나섰다.
김 대표는 19일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삼고초려할 때 비례대표 2번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고,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시인했다. 사실상 문 전 대표의 대권을 위해 김 대표가 대선 때까지 당권을 맡기로 양측이 약속했다는 ‘당권·대권 밀약설’을 인정한 셈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바로 김 대표는 “내가 대표를 맡을지 생각한 바 없다. 비대위로 20대 원구성과 전대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며 “그 다음 사항은 내 몫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속내는 사실상 ‘합의추대 논란’과 더불어 ‘셀프 공천’이라고 자신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겨냥해 “문 전 대표와 이미 약속한 상황”이며 자신이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는 해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김 대표의 당권·대권 밀약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 나온 이상 문 전 대표로선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 적 없다’고 반박을 할 경우에는 대권주자로서 ‘신뢰’의 문제가 불거지게 되고 ‘인정’할 경우에는 ‘자기욕심을 위해 빅딜을 했다’는 의혹이 남기 때문이다. ‘정치9단 김 대표’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안철수·반기문 ‘죽이고’ 손학규 ‘띄우고’
김 대표의 문 전 대표를 향한 도발 배경은 당연히 총선승리가 바탕이 되고 있다. 야권 분열에 패색이 짙었던 당이 원내1당이 되는데 김 대표의 공이 분명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문 전 대표의 대망론을 발목 잡아온 친노 강경 운동권 인사도 공천과정을 통해 걸러냈다.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이해찬, 정청래 의원이다. 또한 친문 인사들에게 대거 공천을 주면서 ‘세력화’도 만들어줬다. 문 전 대표의 대권 환경은 유리하게 조성됐고 실제로 지지율도 올랐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들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문 전 대표를 웃음짓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다. 김 대표는 총선내내 안 대표를 ‘대권병에 빠진 인물’로 묘사했다. 또한 언론과 접촉할 때마다 김 대표는 국민의 당을 1988년 정주영 씨의 통일민주당에 빗대어 폄하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통민당은 31석이라는 의석을 얻었지만 그해 대선에서 정 후보가 패하면서 당이 소멸됐다. 안 대표도 정씨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김 대표는 “안철수 대표는 여권의 후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는 순간 국민의당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독설은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에게도 향했다. ‘반기문 대망론’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김 대표는 ‘반기문 불가론’을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는 19일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반 총장은 한국 실정을 모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라고 얘기하는 데 경제에 대해 조예가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손학규 고문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사인을 보내고 있다.
이미 김 대표는 2기 비대위원을 선임하면서 손학규계를 중용했다. 또한 김 대표는 총선 당시 손 전 고문을 두고 “과거에 대권주자가 되려고 했던 분인데 내년에도 대권주자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손 전고문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당내 ‘불쏘시개’로 쓰려고 한다는 혹평도 내놓고 있다.
김 전 대표가 2017년 대선판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정황은 당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무소속 이해찬 전 총리에 대한 김 대표의 견제도 크게 보면 문 전 대표 대망론에 독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높다. 공식적으로 이 전 총리에 대한 복당에 대해 김 대표는 “절차대로 하면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반면 문 전 대표는 한 발 물러나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영입할 당시 이해찬 공천배제는 양해를 받았다는 설이 무성했다.
이에 이 전 총리는 20일 낙천·낙선한 친노 강경파 인사들과 회동을 가지면서 복당을 미루는 당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참석자를 보면 강기정, 김용익, 김현, 노영민, 이목희.최민희 등 대표적인 친이해찬 인사들이다. 김 전 대표가 공천과정에서 친노 운동권 인사들에 대한 공천배제 기조를 유지한 만큼 향후 당내 갈등도 예고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이후에도 김종인 체제가 유지된다면 이 전 총리의 복당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문 밀월관계 2017년 대선시계에 맞춰
결국 ‘문재인-김종인 밀월관계’속에 김 대표의 합의추대에 관련해서도 문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김 대표 입지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친문계 인사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문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재성 의원은 “추대도 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경쟁”이라면서도 “지금 단합하면 엄청난 지지가 오고 대선도 이긴다”고 했다.
부산에서 승리한 ‘원조 친노’ 최인호 당선자도 “전당대회보다는 민생을 챙겨야 한다”며 “당의 단합을 해치는 모습을 보이면 금방 신뢰를 잃는다”고 거들었다. 사실상 ‘단합’을 강조하면서 ‘경선’보다는 합의 추대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주류 측에서는 합의추대한다고 해서 비주류의 당 지도부 입성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더민주당 전당대회는 당 대표 경선과 최고위원 선거가 분리돼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문 전 대표가 박지원, 이인영 후보에게 승리해 대표 최고위원이 됐고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은 별도로 뽑았다. 김 전 대표 단독으로 대표 최고위원선거에 나서고 최고위원은 별도로 뽑으면 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체제와 비슷한 것으로 주류 김종인 대표와 비주류 최고위원 구성의 방식이란 설명이다.
결국 ‘당권·대권 밀약설’이 현실화되는 시점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셈이다. 현 더민주당 세력분포 상 친노·친문 세력이 70석 이상 차지하고 있어 문 전 대표의 싸인이 떨어질 경우 ‘합의추대’는 무난할 전망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에겐 여전히 풀 총선 숙제가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호남 패배 시 정계 은퇴하겠다’고 약속한 광주선언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적극 옹호에 나섰다. 김 대표는 19일 언론을 통해 “당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국민의당이 문재인을 상대로 반감을 고취시켰으니 호남 민심이 지금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문재인 책임론’을 국민의당에 떠넘기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호남 방문 불가’를 외쳤던 김 대표의 문 전 대표 ‘감싸기’는 도를 넘고 있는 분위기다. 이처럼 김 대표의 ‘문재인 대망론’에 대한 애정이 점점 노골화되면서 당권·대권 밀약설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김종인 책임총리론’까지 나오는 배경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김 책임총리제’ 수렴청정?
77세인 김 대표가 대권에 직접 나서기에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이력을 보면 군부정권부터 국회의원 3번, 장관, 청와대 비서관에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수장으로 정권재창출까지 이룬 경험이 있다. 그러나 박 정권에서 ‘토사구팽’ 당하면서 미완의 꿈으로 남은 상황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2017년 대선은 그의 정치인생에 마지막 도전인 셈이다. 단순히 국회의원, 당 대표를 하기 위해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고 보기 힘든 대목이다. 이에 김 대표는 차기 유력한 대통령감으로 문 전 대표를 선택했고 본인은 책임총리제 도입을 통한 상왕정치, ‘대통령 문재인’을 통해 수렴청정을 꿈꾸고 있다는 지적이다. 77세 노장의 꿈이 이뤄질지 그 첫단추는 6월에 있을 당권 장악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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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